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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un 18. 2020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오늘 행복할 수 있을까?

012. 드라마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동수야. 나... 곧 죽어.”

“알어.”

“그래서 나한테 잘해준 거야?”

“잘해준 게 아니라 좋아한 거야. 미수야. 내가 너 잘 보내줄게. 대신 가기 전까지 나랑 놀다가라. 응?”


- 드라마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 중







삶이 견딜만 하니 

죽음을 견딜 수 없어졌다


올해 너무나 흥미롭게 본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가 신인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얘기에, 그 신인작가의 입봉 단막극이 있다기에, 김은향 작가의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을 찾아봤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시한부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라 대충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을 다룬 드라마겠거니 했는데, 이거 정말 보물같은 드라마였다.드라마를 보고 이렇게 울었던 적이 있던가. 정말 보는 내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늘 미수에게 상처를 줬다. 교수를 준비하는 박사생 장미수는 뇌종양 말기로 시한부를 선고받는다. 미련 없는 세상, 미수는 무덤덤한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러다 우연히 미수의 아파트 창문을 닦고 있는 옛 친구 박동수를 만난다.


고등학교 시절, 동수는 미수에게 반했다고 내내 쫓아다니던 남학생이었는데, 어느날 학교에서 사라졌다. 알고 보니 동수 역시 오래 앓던 병이 있어 한동안 병원신세를 졌고, 건강을 회복하고는 아파트 도색 일을 하고 있었다.


다시 미수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동수. 삶의 미련하나 없이 뒷일을 준비하던 미수는 동수의 진심을 알고 어렵게 마음을 연다. 그런데 동수와 가깝게 지낼수록, 사는 게 행복하다고 느껴질수록 미수는 더 슬프고 견딜 수 없어진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죽음이 더 이상 덤덤하게 견딜 수 없어진다.




깨닫고 발견하고 

애착이 생기고


미수는 동수와 함께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을 한다.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한밤에 별을 보고, 전에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삶의 이치를 새롭게 깨닫는다. 새롭게 발견한다. 그때야 비로소 미수는 삶에 애착이 생기고, 행복을 느낀다.


미수는 그 전까지 대단히 불행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소위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가 되기 위해 성실히 학교생활을 했고, 참아야 할 일을 참으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가족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에서는 어떤 삶의 깨달음도, 발견도, 애착도 없었다. 사실 이건 대단히 불행한 게 아니라 그냥 보통의 삶이다.나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동수라는 계기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 안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삶을 새롭게 경험한다. 단순히 갑자기 여행을 떠나는 것, 무모한 짓을 하는 것만이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일상은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면, 일상도 상하고 만다.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면 고이고 만다. 계기를 만들고, 변화를 맞닥뜨려야만, 새로운 흐름이 생긴다. 물론 그 계기가 부디 나에게도 가까운 사람에게도 죽음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만날 때가 있다


가끔 나를 한참 기다렸던 것 같은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어떤 소설이 그렇고, 어떤 드라마가 그렇다. 딱 필요한 시간에 다가와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들. 오늘 내게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 그랬다.


나는 최근에 어려운 일을 겪고 있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정말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그런 일이 닥쳤고,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소송을 시작했다. 금방 끝나지도 않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소송을 진행하면서, 나는 이게 끝나기 전까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순간이 생겨도 잠깐, 다시금 돈 문제가 불안과 분노로 슬금슬금 차올랐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겪는 어려움을 다시 돌아봤다. 전세금 말고도 올 봄에 내 마음을 괴롭히는 어려운 일이 많았다. 나는 이 일들이 고난, 어려움, 불운, 재수 없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도 회고하지 않았는데, 이 일은 분명히 나의 평온한 일상에 돌부리가 되어 물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계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불운한 일이 생겨서 하루하루의 숨이 편치가 않고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생겼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여러 가지 회의감도 생긴다. 마치 미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을 때처럼 말이다.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행복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나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불운하고, 재수 없는 것이고 고난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동수처럼 다른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물길이 바뀌었으므로,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엄청 울었다. 물론 미수가 죽는 게 슬프고, 동수의 마음이 애잔해서 울었다. 으으, 잊지 못할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이정은 배우와 서이숙 배우, 경수진, 최우식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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