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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un 07. 2020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가 없어요

011.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잖아요

 


“정말 글 쓸 시간이 없네.”


  요 며칠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이 미뤄지고 있다는 걸 감지한 순간, 습관적으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그렇게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어제 한 강사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글쓰기 업무와 강의, 여러 가지 일을 능숙하게 진행하고 있는 프로 프리랜서였다. 가장 궁금한 것은 시간관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세요? 저는 해야 할 일을 하다보면, 하고 싶은 걸 할 시간이 없어서...’라고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거기서 멈췄다.


  정말 시간이 없었나?

  맨날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시간이 없나? 


  내 하루를 가만히 돌아봤을 때 ‘시간이 없다’는 말은 정확한 말 같지 않았다.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꼭 보고싶은 웹툰을 틈틈이 보고, 밥 먹을 때마다 넷플릭스는 챙겨보고(이런 일에 결코 죄책감 갖지 않지만), 각종 납부서를 들고 요금을 납부하고, 떨어진 식재료를 주문하고, 미루긴 하지만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어쩌면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자꾸만 다른 일에 시간을 뺏기고 있다고 하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해서, 시간이 없다는 그 말은 빼두고, 어떻게 시간관리를 하면 좋을지 물었다. 해야 할 수많은 일을 아무리 순서와 중요도에 따라 나열해도, 마감이 코앞인 일이 생기면 모든 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나의 하루를 잠식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글 쓰는 일이란, 투입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언제나 시간에 쫓겼다.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하려면 우선, 이 시간을 잘 다뤄야 할 것 같은데, 이거 어떻게 관리하나요?라고 물었는데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속가능하게 글 쓰기 위해서는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pedrokummel,  unsplash



‘나를 돌보는 시간’이라는 말이 딱 마음에 꽂혔다. 일정 짜는 방법 같은 얘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글쓰기가 나를 괴롭게 하지 않으려면,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 혹은 하루의 일정 시간이라도 글에 매여있는 시간에서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라는 얘기였다. 


  내가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하루 종일 글을 붙잡고 있었는데도 끝이 나지 않은 채 밤을 맞을 때다. 물론 지루해서 딴짓도 조금 하고, 이런 저런 방법을 생각하다가 헤매기도 한, 과정의 시간이지만, 하루라는 시간에 맞바꿔 흡족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굉장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나를 지치게 한다. 


  강사님의 말은, 그런 나를 돌보라는 말 같이 들렸다. 평상시 같으면 ‘돌보라니’ 이런 추상적인 말이 어디있나, 싶었을텐데, 정말 돌봄이 필요한 때라 그런지, 밤낮없이 끝없이 긴 마감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늘 머릿속에 이런 저런 글감이 어지럽게 떠다니는 요즘, 잠깐은 모든 회로를 끊고 ‘돌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나를 챙길 건 나밖에 없으니까


  돌봄은 쉼과는 다르다. 그저 하던 일을 그만 하세요,가 아니라,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살펴봐주고, 마음과 몸이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내게 베풀어 주라는 말이다. 그래, 돌봄이 필요해. 프리랜서는 지쳤을 때, 알아봐주고 ‘커피 한잔 하자’고 다가오는 동료도 없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맛있는 거라도 먹고 오자고 권하는 팀장도 없고, 나에겐 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에게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었다. 나에게 없는 것은 에너지였다. 글을 쓸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글을 쓸 에너지가 없었던 거다. 실제로 일을 하는 에너지가 50이라고 했을 때, 나는 일하면서 50을 쓴다. 그리고 10은 글을 쓰기 위해 눕고 싶은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데 10을 쓰고,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집중시키는데 20은 쓴다. 


그리고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 그때도 일을 끊지 못하고, 나머지 10의 에너지를 써서 ‘내가 오늘 뭘 했나, 이래도 되는 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을 걱정 및 자괴감에 빠지는 데에 귀한 에너지를 쓴다. 그러니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나에게 남는 에너지는 10 뿐이다. 이걸로는 다시 원래 자리로 눕는 일 밖에는 하지 못한다.  


  진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일의 관여도를 낮추고, 틈을 만들어, 숨쉴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빨리 시작해, 지금 해야돼! 마감 앞에서 들들 볶지 말고, 차라리 마음을 돌보고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루틴을 만드는 편이 좋겠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구나


@franciscomoreno, unsplash



 문득, 며칠 전에 만난 음악가가 떠올랐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미팅을 하는 자리였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새 프로젝트가 잘 진행됐으면 하는 마음에 설렘 반,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공연히 실소를 방긋방긋 날리고 있는데, 바이올리니스트는 무슨 말을 해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말을 해도 웃지 않았고,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싶게 리액션이 적었다. 그녀가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너무 작고 말이 짧아 한껏 귀를 기울여야 했다. 뭐지. 무관심 한건가? 사회성이 없는 사람인건가. 그래서 음악을 하는 건가?


그렇게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번쩍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구나.

어쩌면 그래서 음악을 할 수 있는 건지도 몰라.


  순전히 내 추측일 뿐이지만, 그녀는 이 오리엔테이션 미팅에서 최소한의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미팅에서 그녀의 역할은 크게 없다. 그녀는 이후에 연주를 하거나 연주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자기 할일을 해야 할 뿐이다. 그러니 저관여된 이 미팅에서 굳이 에너지를 써서 분위기를 맞추거나, 웃기지도 않는데 웃거나, 쓸데없는 말로 회의를 늘어뜨릴 필요가 없었다. 


아마 그녀는 음악이 아닌 다른 업무도 이렇게 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에너지를 단단히 모아서 음악을 할 때, 본질적인 자기 일을 할 때 쏟아붓는 게 아닐까. 


  온갖 잡다한 일에 에너지를 쓰고는 비로소 글을 써야할 때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에 부치는 나와는 달리 말이다. 그런 거구나. 결국 에너지를 관리해야 하는 거다. 모든 일에 100을 쏟을 필요는 없다. 지속가능한 글쓰기, 건강한 프리랜서 생활을 위하여, 요즘의 나에게는 '에너지'가 중요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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