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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an 27. 2024

완전히 무기력하고 의욕조차 없는, 그런 날도 있다

여기까지가 내 일상이다. 여기까지가 나다.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게, 마음이 깊숙이 꺼질때가 있다. 바닥이 닿지 않을 만큼 하염없이 무너져내리고 아찔해질만큼 막막한 기분이 든다.


겉으로 보면 외향적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어울려 있을 때면 늘 텐션이 높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이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 드물고, 자주 집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일하지만, 가끔씩은 이유없이 가라앉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이건 너무 치명적인 약점 아닌가. 미국 주식같이 흔들리더라도 잔잔한 우상향을 그렸으면 싶지만, 한국 주식처럼 예고없이 폭락해버린다. 누군들 흔들리지 않겠냐마는,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들은 흔들리는 일상 속에도 제몫을 꿋꿋이 해내고 있지만, 나만 한순간 모든 게 멈춰버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에 휩싸일 때면, 내 삶에 내 스스로가 아마추어가 된 기분이 든다.


이럴 때 나는 너무 불안해진다. 회사라면 억지로라도 일했을 텐데, 남들은 그렇게 무너지는 날에도 오늘의 할일을 마치는데. 프리랜서인 나는 나 말고는 아무도 살펴보지 않는 작업실에서 혼자 무너져있는 기분이다. 나는 오늘의 할일을 밀고 나갈 힘이 없다. 좌절감이 든다. 이 마음을 털어놓을 동료조차 없다.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나다.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겉으로는 성실해보이고 믿음직스러워보이겠지만, 사실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게 나다. 내일은 또 괜찮아질지 모르지만 또 어느 날엔가 이런 기분이 찾아올 테고 그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오늘은 해야할 일조차 다이어리에 쓰지 못했고, 마감이 코앞인데도 일을 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더 크라운> 시즌 3과 4를 봤다.


<더크라운>시즌4, 출구없이 답답하고 외로운 시간 속에 놓인 다이애나에게 감정이입하며...


이럴 땐 어떻게 헤엄쳐 나와야되지? 다른 사람은 나처럼 갑자기 멈춰서는 순간이 없나? 의욕이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의욕이 0으로 곤두박질 쳐버리는 날, 혹은 그런 순간. 인터넷에 몇몇 키워드로 검색을 해봐도 나를 일으켜줄만한 이야기는 찾지 못했다. 완벽주의도 아니고, 우울감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다. 총체적인 무기력.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버린 기분. 어쩔 수 없다. 발버둥 칠 수록 빠져든다. 힘을 빼고 발 디딜만한 기회를 찾아보는 수밖에.


뭘 하려고 하지 않고 일단 이 상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치 처음 오늘 하루를 사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으로 사는 게 처음인 것처럼 하나하나 나에게 신중하게 물어본다. ‘드라마를 계속 보고 싶어? 이것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씻어볼까? 따뜻한 찜질팩을 안고 있는 건 어때? 이 기분도 결국 지나갈거야. 나중에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할 수 있게 기록해두는 건 어때?’ 이렇게 하나하나 나를 달래고 얼래서 여기까지 왔다. '대체 왜 나는...'이라든지 '어째서 나는...' 같은 생각이 들때마다 재빨리 차단하는 일도 중요하다.


잠시 거리를 두고 나의 ‘견딜수 없는 암담한’ 이 시간을 바라본다. 모든 서사 구조에 나오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닥쳤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이런 밤이 있다는 걸 나에게 설득시키고, 어떤 이야기나 그렇듯 언제 그랬냐는 듯 새벽이 온다고, 너도 그걸 알지 않느냐고 조용히 일러준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서 뭔가 대단히 망친 것 같지만, 하루 이틀쯤, 아니 일주일쯤 쉬어 간다고 해서 내 일상에 뭐 대단히 망칠 만한 것도 없다. 벗어던지지 못할 무력감이라면, 매번 마주칠 때마다 호들갑떨고 좌절하지 말고 이 감정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고 싶다. 며칠 전 우연히 본 영상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습관은 개인이 세계에 맞서는 방식"이라고 하던데, 나에게는 그게 일기 쓰는 행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올해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이 기분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좀더 구비하고 싶다. 그래서 다음번에 또 이 감정이 찾아왔을 때, 그때는 좀더 능숙하게 다루고 싶다. 오늘처럼 마음 동동 굴리며 초조해하지 않고, 차라리 마음 편히 쉬면서 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지.


또 어느 날엔가 '이럴 땐 어떻게 헤엄쳐나와야되지?'하며 막막해하고 있을 나를 위해 기록한다. 괜찮다. 괜찮아진다. 이거봐, 걱정 할 것도, 망할 것도 없다. 오늘은 그냥 이런 밤이야. 누구나 겪는 그런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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