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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ul 04. 2018

내 마음 나도 모를때 필요한 ‘가만한 시간’

일상의 중심을 회복하는 시간 

월든과 레이디버드와 플로리다프로젝트


슬럼프를 겪고 있던 6월에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책을 읽거나, 혼자 영화를 봤다. 그러던 때때로 기분이 나아진 순간이 있었는데, <월든>을 읽다가 어떤 구절을 만났을 때다.


“내가 만나는 젊은이와 마을 사람들의 불행은 농장, 집, 창고, 가축 그리고 농기구들을 상속받은 데서 온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일단 얻으면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차라리 광막한 초원에서 태어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럤더라면 자신이 힘들여 가꾸어야 할 땅을 보다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이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는가? 왜 한 팩의 먼지만 먹어도 될 것을 그들은 60에이커나 되는 흙을 먹어야 하는가? 왜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가? 그들은 이런 모든 소유물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어렵사리 한 평생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또 이런 구절도 있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 보지도 못하고 있다.”




영화 <레이디버드>에서도 기분이 맑어지는 장면이 있었다. 레이디버드는 좋아하는 남자친구 카일과 파티 갈 생각에 엄청나게 들떠있다. 카일이 성의없이 데리러온 차에도 기대를 잔뜩한 얼굴로 탄다. 그런데 남친 왈? “귀찮은데 그냥 아는 형네 집에 가서 놀까? 너도 괜찮지?”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원치 않는 선택지를 내미는 순간이 있다. 사실 그 순간 거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상대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레이디버드도 “으응” 처음에는 마뜩찮게 대답하지만, 이윽고 다시 외친다. “나 여기 내려줘!” 레이디 버드는 여자 친구네 집으로 뛰어가 함께 쌍쌍파티에 참석한다. 그래, 그거지!


또 보고나면 엄청나게 울적해질 거라고 사람들이 경고했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았고, 나아지고 싶어서 애를 쓸수록 곤경에 처하는 무니와 엄마 헬리를 보았을 때, 우울해지기는커녕 주인공 헬 리가 너무 납득이 되고, 공감이 갔다.



"뒤돌아보지 말고, 당장 차에서 내려"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나 책을 보며 어떤 구절을 짚으며, 비로소 내 마음을 짚어볼 수 있었다. 결국 1854년 출간된 <월든>을 통해서는 무려 백년전, 노동에 관해 나와 비슷한 의구심을 품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만났다.


 그는 자기만의 실험을 했고, 그 실험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너무나 큰 확신으로 차 있었다. ‘그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나 역시 내 삶을 두고 이런 실험을 하고 있는 거야.’ 월든의 문장을 읽으며 마음의 확신을 얻었을 때 비로소 나는 안심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의 엄마 핼리 역시 ‘어떻게든 내 방식대로 살아보고 싶은데, 도무지 삶이 나아지지가 않네. 그지같은 내 삶은 감당할 테니까 날 제발 좀 길들이려고 하지 마!!’라고 외치는 데서 오는 후련함이 있었다. 조금 쓸쓸하긴 했지만, 삐뚤빼뚤해도 자기만의 삶의 방식, 육아의 방식이 있는 헬리의 굳센 안간힘이 나에게 묘한 위로를 주었다.


<레이디버드>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었다. 제 이름도 스스로 짓고, 사랑도 스스로 선택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틀린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순간에, 내 선택이니까 무조건 책임질 생각일랑 하지 말고, “당장 차에서 내려!”라고 등짝을 후려친 영화였다.


살면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선택들을 고심 끝에 내리지만, 어쩌면 그 다음 선택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선택해서 탄 이 차에 계속 있을 것인가. 재빨리 내려버릴 것인가. 이 결과는 너무 다른 것일 테니까. 그러니까 이제까지 내가 결정한 일 따위를 되돌아보며 맞나 아닌가 되새김질 하지 말고, 이 다음번에 주어진 선택지를 가장 맑은 정신으로 노려보자. 나에게 <레이디버드>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그 순간에는 정말 무심히 보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그때 본 그 영화가, 그 책 한 구절이 이렇게 가만히 말을 걸 때가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끊임없이 이해받아야 할까? 누군가에게, 심지어 몇백년 전 쓴 책 한 구절에라도 이렇게 공감 받고 위로 받아야 하는 것일까? 왜 내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다는 믿음이 생긴 후에야 마음이 놓아지는 것일까? 이런 마음들을 이렇게 긴 글로 풀어내고 누군가 “나도 그래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었을 때 비로소 웃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풀릴 마음이라면 왜 가라앉는 걸까? 가라앉기 전에 미리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6월에 한 일 중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 군산에 다녀왔다.


갑자기 마음이 동해 버스 티켓을 끊고 바로 내려갔다. 마음 먹고 바로 떠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군산에 꼭 머물러보고 싶은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쯤? 이탈리아 곳곳을 맛있는 피자를 먹겠다고 돌아다니던 그 시절에 이용한 이래로 간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여럿이 쓰는 욕실이 불편했고, 밤 시간을 알아서 활용할 수 없다는 게 불편했고, 간이 침대가 너무 배겼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한 일본 가옥 형태의 게스트하우스는 어째서일까. 뭔가 거기 묵으면 머얼리 여행 온 것처럼 설레고 편안한 기분이 들것만 같았다. 혼자 떠나도 정말 신날 것 같았다.


첫눈에 반해버렸던 게스트하우스 소설여행 ⓒ스밀라


군산에 도착한 첫날. 그래도 군산까지 왔으니까, 관광지를 좀 둘러볼까.하고 군산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릴법한 군산 역사박물관, 군산 미술관, 마리서점, 일본식 가옥 등등을 쉴새없이 거닐었다. 무덤덤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이성당에서 밀크쉐이크를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잘 정돈된 숙소와 카페는 생각만큼 너무 예뻤다. 마침 그 날 8인실 게스트하우스에 나 외에 단 한명의 손님만 예약되어 있다고해서, 마음편하게 널찍하게 공간을 누리고 왔다. 역시나 등은 조금 배겼지만,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층 침대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D


조식을 먹으면서 다른 손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 역시 야근에 빡쳐 급 연차를 쓰고,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분은 군산 뿐 아니라 일주일정도 시간을 두고 위에서부터 쭉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날엔 순천으로 떠난다고 했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면서도, 군산 기찻길에서 교복까지 빌려 입고 셀카를 찍을 만큼 혼행 내공이 만만찮은 분이랄까!


즐겁게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분이 남은 여행을 잘 마치라며, 폴라포를 선물로 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가방을 뒤적이다가 초콜릿이 있길래 나도 건네주고 헤어졌다. 언제나 혼자 여행을 떠나도 결코 혼자가 되지 않는다. 여행하는 곳에는 언제나 또 다른 여행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건 내 여행 지론이다. 군산에서도 그랬다.


둘째날. 이날은 관광지 따위 염두에 두지 않고, 꼭 가고 싶은 곳 한 곳에 가보기로 했다. 월명공원 너머에 있다는 숲에 가기로 했다. 사실 어제도 숲을 찾아 월명공원을 찾았지만, 채만식 문학비도 찾지 못했고, 숲도 못찾았다. 오늘은 반대쪽 길로 올라가 찾을 때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월명 터널에서 산쪽으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는 길이 참 걷기 좋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너머에 항구가 내려다보인다. 근사한 풍경은 아니지만 정겹다. 호수가 있는 방향으로 한참 걷가보니 편백나무 삼림욕장이 나왔다. 여기다! 게다가 누워서 산을 올려다볼 수 있도록 작은 나무 침대가 군데군데 있다. 널찍하게 떨어져 있어 온전히 삼림욕을 즐기기 그만이다.



나의 가만했던 시간을 공유합니다 :)



꺅. 너무 황홀했다. 일단 가방을 깔고 누워 나무가 울창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 소리가 들리고, 얼굴에 바람이 뭍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다가, 앉아 있다가, 책도 읽다가 진짜 너무나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아,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좋았다. 호수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래도 좋았다. 결국...! 그렇게 종일 시간을 거기서 보내고 서울로 올라갈 시간이 되어 부랴부랴 터미널로 이동했다. 여기저기 들렀던 첫날보다, 가만히 좋아하는 순간을 음미했던 둘째 날이 훨씬 좋았다. 그 여행 다녀온 이후로 몸도 마음도 훨씬 개운해진 걸 느꼈다.






나는 이렇게 가만한 시간을 보냈다. 내 하루하루에 적당히 사색할 시간이 필요하고, 내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여행하는 시간이 필요하구나. 알게 되었다. 이게 슬럼프를 극복하는 정답이에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 이렇게 풀어나갈 수 있구나,하는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갖게 됐다.


그러고도 또 삐죽삐죽해져서 바람 빠진 노래방 인형처럼 침대에 쓰러지는 날이 있을 거다. 마음이란 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울적할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작은 것에 휘둘리지 않는 커다란 중심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 소로의 실험처럼, 레이디버드의 꿈처럼, 헬리에게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무니처럼. 군산의 숲처럼.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고, 덕질 할 만한 어떤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신앙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지. 크고 단단한 어떤 것이 생겨서 일상의 사소한 것쯤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그러니까 나의 중심을 찾아 세워보는 7월을 보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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