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 내려놓듯, 책임감도 내려놓을 거야
“고객님의 물건을 고객님 문앞에 안전하게 배송하였습니다”
언제 봐도 반가운 택배문자건만, 이날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우리 집’ 앞에 택배를 두었다고, 택배 아저씨가 사진까지 보내주었는데, 사진 속에 현관문이 왠지 낯설다. 맙소사. 우리집 문이 아니다?! 마음이 덜컹했다. 문자 속에 담긴 ‘우리 집’ 주소를 확인했다. 마포구 00동?? 무려 이전 이전에 살던 원룸집 주소다. 앞이 캄캄하다. 짧은 순간 어젯밤 일이 번뜩 떠오른다.
그러니까 내가 애정해마지않는 오이오 녹차. 여름이면 진한 오이오차에 얼음을 타먹는 게 나의 낙이라 두 달에 한번 정도 오이오차 24개가 담긴 박스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곤 한다. 어젯밤에도 갑자기 진하고 시원한 녹차가 생각나 컴퓨터를 켰다. 평소에는 네이버 쇼핑을 이용했는데, 쿠팡이 더 저렴하게, 내일까지 총알배송을 해준다는 거 아님? 마침 쿠팡 아이디와 비번이 자동 저장되어 있어서, 바로 결제하고 얼음 띄운 녹차 마실 생각에 기분 좋게 잠들었더랬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쿠팡을 사용하지 않은 게 무려 어언...... 도대체 몇 년 전인가. 2년씩 계약하고 살았으니, 4년 전쯤 마포구 원룸 살 때, 쿠팡을 이용하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마침 어제 결제를 한 것이다. 주소지가 바뀌어져 있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금 지금 집에 산지 1년이 넘었으므로, 주소를 따로... 하, 미처 확인을 못했다. 아침에 분명히 마포구 어디어디로 배송된다는 문자를 받았는데도 무심코 넘겼다. 아침에 이 사단을 막을 방법이 있었음에도 내가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일단 마포구 옛날 집에 내 오이오차가 배송되어 있다는 건 알았다. (아마 사진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엉뚱한데 배송된줄도 까맣게 몰랐겠지, 흑흑. 나란 사람.) 다행히(?) 내 근무지가 마포이므로 내가 가서 가져오면 되는데,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 집 앞에 배송된 것이 240미리 패트병 스물 네 개가 들은 박스 하나라는 것. 하... 어제 장마였던 거 다들 아시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비에 쫄닥 젖어버리는 그런 날씨에, 마포구 홍대 너머 엄청 높은 곳에 있는 원룸단지에 가서 물이 가득 담긴 박스 하나를... 어쩌란 말이죠?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막을 수도 있었지만, 막지 못하고 저질러 버린 뻘짓도 속상했지만, 내가 저지른 일을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였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마침, 아침부터 성질을 주고받아 사이가 틀어진 남동생에게 차 한번만 빌려도~ 하고 굽신굽신 부탁을 하게 생겼다. (물론 자존심을 내려놓고 굽신굽신 부탁했다. 하지만 뭐 자기 되는 시간이 어쩌구저쩌구, 절충을 시도하다가 그만 다시 화가 나버려서... OTL)
하아... 내 똥을 내가 치울 수 없는 무력감과 슬픔이여. 결국 고민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 둘이 함께 가서 그 물건을 들고, 잠시 보관할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해왔다. 정말 감사했다.
이 얘기를 들은 내 친구는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라고 말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너무너무 속상해. 1)왜냐하면 재작년에도 한번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데서 오는 자책감. (작년에도 옛날 집으로 배송을 시켰더랬죠...) 2) 내 문제를 남에게 부탁해서 해결해야하는 번거로움에서 오는 좌절감.
심지어 우여곡절 끝에 우리 집에 녹차가 무사히 당도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 알 수 없는 스트레스와 자책감은 과연 레알 정말 저 두 가지 이유 때문일까?
나는 남들에 비해 책임감 따위 등에 메고 다니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러니까, 나는 남 눈치 보지 않는 사람이니까. 내 하고 싶은 일 하고, 내 삶에 관한 선택은 언제나 스스로 해왔으니까. 부모님이나 친구 등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책임감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
했었는데.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곱씹어 보니. 나는 너무나 과도하게 나 자신에 관한 책임감을 등에 매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하...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책임감이라는 키워드를 대입해보니, 내 모든 의식의 근저에는 그 감정이 너무나 단단하게 붙어있었다.
무엇에 대한 책임감? 나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여도 상관없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한심해보여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이.
내 등에 있었다. 정말로.
내가 스스로 늦잠 자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도,
매일 게으름을 피우다가 할 일을 미루는 것도,
남들의 실수엔 태연하면서도 내 실수에 필요 이상의 타격을 받는 것도
죄다 쓸모없는 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에 녹차 배송 사건을 통해 등뒤에 잠복해 있던 책임감이 제 본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반복된 실수+ 책임질 수 없는 일 = 이라는 점이 내 책임감의 도화선을 건드린 셈이다.
내 스스로 나에게 끊임없이 ‘훌륭해’ ‘한심해’ 평가를 해대고 있는 걸까. 남에게 폐가되는 부탁을 꺼리는 것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아니라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약한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은 싫었던 건 아닐까. 이건 자존심하고는 조금은 맥이 다른 감정인 것 같다. 돌이켜보니 되게 피곤하게 살았구나. 나. (토닥토닥)
나에게 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이 책임감을 떨쳐버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어떤 일들에 내가 스트레스 받고, 의욕을 상실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 나도 모르게 나의 책임감이 작동하여 반응하는 거겠지. 남에게 푸는 것도 아니고, 내 안에서 광광되는 일이니, 번아웃되거나 우울해지거나 의욕을 잃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내 등 뒤에 책임감을 가만히 바라본다. 요즈음에 생긴 습관이다. 마음속에 확 이는 여러가지 감정들. 화르르 스쳐지나가는 분노. 낙심. 슬픔 같은 걸 인지하면, 일단 뒷덜미부터 낚아채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보통 아무생각 없이 들여다보지만, 보다보면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름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책임감 같은 경우 오래 내 등 뒤에 붙어있었을 테니까, ‘이제 책임감 따위 벗어버려야지!’라고 다짐한다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잘 안다. 내일 다시 나의 책임감이 발동하여, 쓸데없는 일에 광광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 이런 나의 일부분. 알아도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라는 것까지 아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일단 나의 그 부분을 가만히 바라본다.
망해도 괜찮은데. (슬프긴 하겠지만..)
좀 모자라도 괜찮은데. (누군들 항상 완벽하겠냐구)
실수해도 괜찮은데. (같은 실수, 세번은 하지 말자ㅠ)
남이 내 마음을 잘 몰라줘도, 뭐... 괜찮은데. (어떻게 모든 걸 이해하겠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은데. (살아봐서 잘 알잖아? 하하...)
왜냐하면 언제나 생각 이외의 일들이 벌어지니까.
내 걱정과 상상의 나래보다, 삶의 가능성이 언제나 훨씬 컸으니까.
나 이제 그 정도는 알잖아.
이렇게 말을 뱉어놓고,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 제일 큰 문제가 뭐지?"
일부러라도 매일 집을 나설 때, 귀가할 때 나에게 한번씩 말해줘야겠다. 입밖에 내뱉은 말은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부디 책가방 벗듯 오늘의 책임감을 내려놓으시라!”고.
# 책임감이라니. 나랑 진짜 안어울리는 말 같은데.
# 그런데도 있더라. 책임감. (소오름)
# 필요없을 땐, 훌렁훌렁 벗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