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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un 10. 2018

실패할 이유는 너무 많고, 성공의 이유는 단 하나다

발담그고 본 스타트업 민낯 그리고 나의 민낯


언제나 망했던 순간은 복잡하고, 어렵고, 외롭고, 일이 잘될 때는 상황이 늘 심플했다. 좌절하고 실패할 만한 이유는 정말 수백 수천가지지만,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한두 가지로 꼽는다.


나는 이틀 전에 감정적으로 바닥을 쳤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만큼 울적하고 무기력했고, 이런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비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내 마음이 지금 왜 이렇게 힘든가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나를 기운 빠지게 했던 순간들


1. 첫 번째 MVP가 실패했을 때, 우리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다는 걸 확인했을 때
2. 피봇을 했는데, 역시 이 아이템도 썩 매력적이지 않잖아? 지레 겁먹어서 또다시 피봇을 하게 됐을 때
3. 이번에는 좀체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타협하듯 유행하듯 괜찮아 보이는 아이템을 잡았다가 역시 이건 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피봇을 했을 때,
4. 그즈음 새로 으쌰으쌰하자고 팀원을 새로 영입했고, 새로 들어온 팀원이 리더가 되면서, 서로 관계와 역할이 애매하게 재정리되었을 때,
5. 쉼 없이 다시 새로운 아이템을 향해 또 와다다다 달려갔는데 바로 그 즈음에 뭔가, 문득, 어쩐지 모든 게 의미없어 보이고 이게 다 뭔가 싶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고민했을 때,
6. 이런 모습을 보고, 팀원들이 나를 오또케 생각하겠어 자기 검열하며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낄 때,
7.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내가 염려한 대로 평가하며 뒷담화한 얘기를 들었을 때
8. 맘대로 지껄여라 싶었지만, 그게 또 되게 신경 쓰이는 거다... 앗 뭐야 나, 결국에 남 얘기나 신경 쓰는 인간이라니 스스로 한심해할 때,
9. 그래도 우리 한 팀이니까 용기 내어 내 상태를 털어놓았는데, 이게 마치 내 입으로 나 지금 한심할 만큼 작아져서 힘이 없어요, 라고 셀프 인증하는 것 같아 깊은 패배감이 들었을 때,
10. 집에 오는 길에 '어쩌다 이렇게 지쳤지? 왜 여기까지 오게 됐지?'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걷잡을 수 없이 슬픈 기분에 빠져들었을 때,  


이 모든 순간이 누적되어 나는 바닥을 쳤다.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슬프고 비극적이고, 망할 것 같은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지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엉 눈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정말 울고 싶은 심정으로 고개를 처박고는 잠들어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 거지? 여기가 정말 슬럼프의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

.

그게 다다. 그래,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는데, 푹 자고 나서 아침에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나보니, 까짓거 뭐. 또 한 번 망할 수도 있지. 다시 해보면 되잖아! 맘대로 해! 될 대로 되라구! 라는 마음이 들면서, 어제 했던 수많은 이유를 소거해버렸다. 그 한마디로... 아, 어제 새벽까지 우울한 이유 따위 리스트로 적지 말고, 전화기 붙들고 소연소연 하소연따위 하지 말고 잠이나 잘 것을.....





발담그고 본

스타트업 실체는


자, 이제 머리도 책상도 비우고 심플하게 생각해보자.



모든 문제가 잠이나 푹자고 일어나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복잡하고 외롭고 어려운 데에는 실패의 이유가 있고, 더 나은 답은 심플한 데에 있다는 거. 앞으로도 머리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한 순간이 오면, 잠을 자든, 그곳을 잠깐 떠나든, 휴가를 쓰든 어떻게 해서든 생각과 감정을 끊고 심플한 상태를 만들려고 애써볼 생각이다. 왜냐면, 앞으로도 멘붕은 또다시 찾아올 거시니까.


나는 몇 번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름의 겪을 일을 다 겪어봤고, 뭐든 이겨낼 수 있는 내성과 대처능력을 장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일이라는게,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베팅하듯 팀을 꾸리고, 내가 할 일거리도 스스로 구하고, 일이 되는 방법도 알아서 찾아야 하다보니,  나 스스로도 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아, 내가 이런 걸 어려워하는 구나. 내가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하는 구나. 나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구나. 무엇보다 나도 멘붕에 빠지는 인간이구나 .. (나 나름 회사에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단단히 단련됐다고... 자만했다.) 나는 가끔 멘붕에 빠지지만 그래도 금새 바닥 짚고 올라오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사실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초반에는 정말 꿈과 기대에만 부풀어 있었다. 혁신적이고! 새롭고! 수평적이고! 재미있고!는 개뿔. 정말 그것은 멀리서 본 스타트업의 풍경일 뿐. 막상 발을 담그고 보니... 여긴 뭐 룰도 없고, 있으나 마나한 원칙에, 이러다 망하지 싶은 일만 하는 것 같고, 역할도 없고 되는대로 일하고, 의견 충돌 나면 사람 막 나가고 들고...


결국 모든 건 사람의 문제였다. 나를 비롯해 여기 모인 사람들이 혁신적이고 새롭지가 못하니까. 기존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채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예전 같은 방식으로 일하려고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일단 어쨌든 시작했으니까, 애초의 목표는 실패하는 일을 실패하지 않는 것이고, 실패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에 (여기에 관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에 상세하게 기록해두었다.) 최소한 나부터 일하는 방식을 한번 혁신해보자는 마음으로 조금 더 가보려고 한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들, 내가 싫은 것들을 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다른 방식을 제시해 볼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지금 이 회사에 고용된 게 아니라, 창업자니까. 결국 그 나물의 그 밥이구나! 밥상을 걷어차지 말고, 더 나은 밥과 더 나은 반찬을 내가 한번 마련해 보는 방법으로, 새마음으로 돌아가 일해보자고, 주말에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토닥토닥) 그럼에도 분노와 멘붕이 쓰나미로 몰려 오겠지만...(어, 그럴거야) 적어도 어제처럼 혼자 복잡한 생각으로 비틀거리다 잠들진 않을 테다!!... 않겠지?!


자, 나의 심플한 지령.

다시 멘붕에 빠지면, 이 글을 읽어볼 것---




# 똑같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 중요한 문제일수록 쉽고 단순하고 가볍게

# 물론 말이 쉽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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