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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Jun 30. 2018

슬럼프, 내 마음 스스로 달래기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 최소한의 에너지가 예의다

아, 늪이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6월 중순까지 지독한 시간을 겪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에 관한 실험을 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나에게 일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통해 탐구해보고 싶었다.


나에게 적정한 일의 시간, 적정한 일의 장소, 적정한 관계. 이전 회사생활에서 겪었던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름 1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


는데. 이거야 원. 제대로 실험을 해볼만한 기회가 주어져야 말이지. 특히 6월은 그야말로 실패의 “끝없는” 연속이었다. 계획했던 일도, 뭐라도 시작했던 일도 잘 되지 않았다. 기회가 필요한 일은 좀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스타트업도 요란하게 덜컹거리기만 할 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냥 내가 여기까지인가, 내 바닥이 이쯤인가. 끊임없이 부정적인 거울로 스스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나날이었달까. 기꺼이 실패하겠다고 외쳤지만, 실패 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뭘 제대로 해야, 실패라도 하지.


이전에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지점 - 이 정도면 바닥을 찍고 곧 회복할 수 있을 거야,싶은 지점-이 훨씬 깊어졌고, 늪에 빠진 양 허우적 대던 6월의 어느날. 절친한 친구 A를 만났다.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왜냐. 그날 내가 늪에 빠진 상태가 대단히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 밖에 꺼내면 실감나는 말들


우리는 저녁을 먹고 한 행사에 참가하려고 만났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이런 저런 속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철길을 끼고 좁은 길을 걸었고, 해질 녘의 하늘은 붉은색을 거두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 이름 석자로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려고 하는데 요즘 도무지 안돼. 어려운 일인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뭣도 안될줄 몰랐어.”


“그럼 다시 태어나면 되지.”  

A는 나를 보지도 않은채 툭 말을 던졌다. 잠시 얼얼했다. 진지하게 꺼낸 말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꺼낸 말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가볍게 농담으로 받을 만큼 가볍게 얘기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게다가 저런 말을 글로는 많이 써도, 입말로는 거의 안하는 사람인데. 나름 용기내어 속마음을 말한 건데, 말한 걸 곧바로 후회했다.


그러니까 A 역시 반복된 슬럼프에 대단히 지쳐 있는 상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말. 사소한 그 한마디가 굉장히 아프게 다가왔다. 이어지는 두어번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지쳐있는 A에게 내 이런 저런 고민따위, 투정따위가 도무지 그 무게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서일까.  A는 평소와 달리 얼토당토 않는 가벼운 대꾸로 넘겼다.


“너랑 나랑 이런 얘길 하고 있으니까, 되게 비참하게 느껴지네.”


그 상황을 정리한 그녀의 말이

되게, 슬펐다.


아마, 아무 생각없이, 평소같이 내뱉은 말들이었을텐데. 그날 내 기분과 내 상태도 그녀의 비참을 여유있게 받아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날의 대화가 유독 슬프고 불편하게 느껴졌겠지. 말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게, 입 밖에 꺼내면 정말 실감이 난다. ‘비참’, 그날 밤 그 기분을 실감했다.


정말 비참해지는 것 같았다.


아, 서로 이렇게 여유도 에너지도 없을 때 만나는 건 조금도 힘이 되지 않는다. 한없이 슬퍼진다.

이런 나의 마음도 솔직하게 전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정도까지 곤경을 겪지 않고 있었다면, 네 말들을 좀더 공감하고 이해해줬을텐데.

내 상태가 좋지 않아서, 너의 어떤 말들이 순순히 마음에 닿지가 않고 삐뚤빼뚤해. 그게 아쉽고 미안해.”


그녀 역시 그렇게 말했다.아쉽고 미안하다고.

내심, "우리 맥주한잔 하고 갈까?" 라고 그녀가 말해주길 바랬지만, 나 역시 그러지 않았고, 그녀도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헤어졌다. 그리고 아, 당분간 우리 연락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혼자 가만한 시간


어쩌면 내 성격- 뭔가 지쳐있는 사람에게 당연히 내가 힘을 줘야지,하는 강박(?)이 있는 내 성격상, 그러지 못해 공연히 더 제풀에 슬퍼진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날 그 쓸쓸한 대화에 건조한 마음이 바스락바스락 조각나던 소리가 마음에 인상적으로 남았다.  


A는 내가 고달플 때 가장 먼저 전화해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여서 더 그랬겠지. 우리가 번갈아 서로 힘이 있었을 때는, 서로의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것만 같은 친구였는데 말이다.


6월, 계속해서 좌절하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이후에는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음악을 들었다. 영화를 보았다.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스스로 달랬다.


정말 지쳤을 때는, 바깥에서 에너지를 구하지 말고

오히려 혼자 가만한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은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이건 친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소중한 친구를 만날 땐, 나 역시 일말의 에너지와 여유를 구비해서 만나야겠다.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열려면 나부터 그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


그날의 기억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이 다음번엔 내가 보냈던 '혼자 가만한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정말 그 가만한 시간 덕분에 바닥에서 비로소 발을 떼고 이렇게 뭐라도 쓸 수 있게 됐다.


6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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