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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꾸러기 덴스 Nov 12. 2018

인공지능 저널리즘은 있다? 없다?

저널리즘 풍년 시대의 단상; Who's Next


저널리즘이란 말이 홍수같이 느껴지는 요즘 오히려 이 단어를 쓰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단상은 왜 들까요.


저널리즘 풍년 시대 , 저널리즘은 있다? 없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 몇 가지를 기억해 두자. 마침 이번 주가 수능이라 시험에 나올지 혹시 모르니 말이다.

일단 요즘 가장 핫한 단어인  4차 산업혁명, 그리고 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저, 쌀인 데이터, 

그리고 많이 쌓으면 빅데이터 그리고 빅데이터를 각자에 맞게 필터링하는 알고리즘, 

그 알고리즘으로 러닝머신으로 뽑아내는 로봇.  모두 과정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느냐의 차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저널리즘을 붙이면 근사하다.

데이터 저널리즘, 알고리즘 저널리즘, 로봇 저널리즘. 모두 뉴스 기사를 생산해 낸다는 점이 

동일하기에 저널리즘을 붙였다.  내용을 좀 더 들어가 보면 물론 확연한 특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숫자가 가지는 함축적 힘을 보여준다. 이는 때로는 어떠한 

수려한 문장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질 때가 있다.  


대한민국이 10년 이상 독보적으로 OECD에서 1위를 하는 종목이 있다. 

자살률 1위. 2016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률(자살률)은 한국은 25.8명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 11.6명이다. 그런데 현재는 자살률 2위가 되었다.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가  올 5월부터 OECD 회원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뉴스웨이

현재 대한민국 인구를 줄여 간단하게 5천만 명이라고 하자. 그럼 연간 25.8명 X 500=  12,900명.

해마다 12,900명이 자살을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연간 출생아 수는 대략 35만 명이다. 즉 태어난 인구의

30분의 1, 하루 36명이 자살로 사망하는 것이다.  

실로 상상하기 무서운 엄청난 숫자이다.

(이 숫자를 보고 있으면 저출산 문제도 중요하지만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당장 필요해 보인다.)


데이터 저널리즘의 주목적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데이터의 시각화이다. 

그러나 때로는 싱글 숫자만으로도 모든 스토리를 압도할 수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의 창시자 겸 전 가디언 에디터인 사이먼 로저스 (Simon Rogers)의 이 말이

데이터 저널리즘을 가장 잘 축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Data journalism is not graphics and visualisations.

It's about telling the story in the best way possible.”

“Sometimes that will be a visualisation or a map.

But sometimes it's a news story.

Sometimes, just publishing the number is enough.”

그래픽이나 비주얼이 필요 없이 단순히 숫자 자체로도 충분하다.




 '알고리즘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한 

 것으로 캐리 커쳐에 불과하다.' 

그럼 데이터를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 보자. 

 데이터의 산, 빅데이터 중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혹은 관심 있는 데이터를 정리해 보자. 

그 데이터의 연속성을 보면 다음의 숫자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즉, 알고리즘은 다음 예측 패턴 공식을 만드는 것이다

이 예측은 정답이 아닌 확률적으로 높은 것을 의미한다. (예측이 정답이면 세상이 너무 재미없지 않겠나). 

요즘 플랫폼 비즈니스, 온라인 마케팅은 모두 알고리즘을 통해 이 예측력, 확률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확률에 따라 서열화, 랭킹이 매겨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알고리즘에 맞게 최적화된 뉴스가 좋은 뉴스인가? 혹은 좋은 기사인가?

다행스럽게 좋은 기사에 대한 정답은 없다. 좋은 기사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알고리즘을 만드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자가 게임의 룰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은 길로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만약 알고리즘이 스스로 게임의 룰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저널리즘을 보자.

단순히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지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고리즘은 확률이다. 즉 우열이 생긴다. 우열의 기준표 역할을 인간이 하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다.  드라마, 영화, 음악은  자신의 목소리(색상)를 듣는 채널이다. 이에 반해 뉴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채널이다.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채널이다. 

내비게이션은 직선 길, 같은 길을 안내해준다. 여기까지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인공지능이 우열의 기준표를 대신한다면,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는다면  그리고 정해진 조작의 길이 아닌 다양한 길을 함께 한다면 우리는 그때에도 로봇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저널리즘이란 단어가 앞으로 계속 유효한 용어로 남아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다.


                                                 * 수능생 여러분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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