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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꾸러기 덴스 Feb 12. 2019

당신의 오늘을 즐겨라

당신의 욕망에 대한 변명

  *사진출처: 캠핑카(pixabay 무료 이미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필요에 따른 욕구를 가지며 그 욕구는 언어를 통해 타자에게 요구하여 그 욕구가

충족되지만 이런 요구는 지속적으로 무제한적으로 확대된다. 이 무제한적 요구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으며 이 요구와 욕구의 차이가 인간의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욕망을 갈구한다. 욕망없는 인간은 곧 죽음이다.

 결국 나의 욕망의 시작은 언어를 통한 타인의 욕망에서 시작되니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망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인정 욕망은 채워지지 않은 결핍과 같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그 속에서 오히려 자아가 상실되는 자아 소외현상이 발생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 오늘날 인간이다. 현대 소비시대의 인간의 모습이다.

물론 그는 인정 욕망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여 인간 본연의 존재 욕망에(스피노자는 코나투스라고 설명함*) 충실하여 나의 삶을 회복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언어적(구조적) 동물이라 인정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날 순 없다. 그렇기에 이 인정 욕망의 옷을, 화장을 지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언어를 구조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한 아기 때부터 마치 거울같이 타인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 왔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학습되어 내재된 욕망이다. 무한대로 증식되는 이 인정 욕망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오늘날 인간은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채(본인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그리스 카파토스 섬 카페(pixabay 무료 이미지)

우리가 실제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영역을 들여다보자.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게임을 하면서 핸드폰을 하는 현실. 이 현실은 기억으로만 전해지고 오직 현재화된다. 실재는 계속해서 사라지면서 차이와 반복을 지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계는 항상 상징계나 상상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오직 현재, 지금, 여기서만 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처럼 '한 말'과 '하는 말'은 다르다고 하는 것과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사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니체가 말한 카르페 디엠은 이러한 실재계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직 이 시간, 여기에서만 이 사건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다시는 이것이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일상이 반복되는 실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조그만 차이에서 완전히 다른 차이로 실재는 구성된다.  같은 공간이라도 1분 전의 공기나 세포로 보면 내가 아니다. 현재는 우리 머릿속이나 언어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재는 멈추지 않기에.


이 멈추지 않는 현재에서 인정욕망과 자아욕망사이의 발란스를 찾는 당신에게, 속삭여 보자.


자, 오늘부터 "자신의 걸음으로 자신의 보폭으로 자신의 속도로 걸어보자" 타인의 시선은 의식하지 말고.

영원한 현재를 사는 인간인데 뭐가 아쉽고 두렵겠나. 지금 당신의 존재를 느끼면서 이 순간을 음미하고 즐기자.

그리고 당신은 거울 속의 비친 당신보다 훨씬 매력적임을 잊지 말자

조금 발란스가 안맞으며 뭐 어때.


진정한 당신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위하여 오늘도

'당신만의 오늘'을 즐겨라.






코나투스(Conatus) 개념은 스피노자 철학 체계의 구성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존재 보존을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고 있다. 코나투스(Conatus)는 살고자 하는 욕구 내지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자신을 표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것이고,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능력이 속하는데 이를 가리켜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른다. 코나투스(Conatus)는 자기 능력이 미치는 한에서 최대한 자기 존재를 확장시키는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에티카(Ethica)>에서 "각각의 사물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한에서 자신의 존재 안에 남아 있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의 그 어떤 사물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러한 노력은 곧 사물의 본질이자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코나투스(Conatus) 없이는 어떠한 사물도 존재하거나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개체들이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 또는 노력을 일컬어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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