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보러 올래요?

편집증 시대의 연애(23)

by 류미

사귄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우린 순결한 상태였다. 엄밀히 말해 골목에서 키스했으니 완전히 순결하진 않지만, 여튼 결정적으로는 순결했다.


어른의 연애는 속도감이 생명이다.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면 내 친구 라희처럼 상대방의 성적 부족함(?)을 경험해도 무르기 어렵다. 시간이 쌓여 감정이 깊어지면 상황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정이 쌓이면 성적으로 불만족해도 헤어지기 쉽지 않다. 그냥 '나는 플라토닉한 관계에 만족할래~‘ 하면서 반쪽짜리 사랑으로 만족해야 한다. 아니면 굳게 결심하고 이렇게 말하거나.


'너의 남성성이 부족하니, 헤어지자.'


그러나 이렇게 잔인한 말을 어찌 하겠는가. 따라서 사소한 트집을 잡아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는 헤어짐을 해야만 한다. 이 또한 사귄 지 얼마 안 되면 상처가 크지 않지만, 오래 만난 사이일수록 상처가 오래 남는다. 그러므로 빨리빨리 확인하고 빨리빨리 해결해야 한다.


디데이는 바로 오늘이었다. 엄마가 1박 2일로 친구들이랑 여행을 간, 바로 오늘.


경기 남부 주민 제비꽃은 내 요청에 홍은동으로 왔다. 마을버스를 타고,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버스로 갈아타서 1시간 반 넘게 걸렸다. 좀 미안하긴 해도, 이따 전에 없던 즐거운 시간으로 보상받을 거니 괜찮겠지?


오늘도 제비꽃은 싱글벙글이었다.


"류미 씨! 일주일 동안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그새 더 예뻐졌네요?"


제비꽃이 내 어깨를 감싸며 볼에 뽀뽀했다. 쪽.


"에이 맨날 듣기 좋은 소리만 하구. 제비꽃도 잘생겼어요."


예의상 한 말에 제비꽃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후훗. 조금 이따 더 즐겁게 웃게 될 거야.


우리는 집 근처 우동 가게로 갔다. 날씨도 춥고, 거사를 앞두었으니 뜨끈한 국물로 배를 든든히 채워야지. 다 먹고 집으로 유인하는 거다.


"류미 씨, 뭐 시킬래요?"


빨리 먹고 집으로 데려갈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메뉴판을 대충 보고 아무 우동을 짚었다. 제비꽃은 고심해서 고르더니 카운터에 가서 주문했다.


음식이 금방 나왔다. 엥? 이게 뭐야. 우동이랑 국물이 왜 따로야? 게다가 국물은... 차가웠다.


"저기요. 여기 와보세요."


저쪽에 있던 점원과 제비꽃이 동시에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점원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우동 국물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아니, 날이 이렇게 추운데 국물을 이렇게 가져오면 어떡해요?"


"아... 고객님, 붓카케 우동은 냉우동이에요. 면에 찬 국물을 조금씩 부어서 드시면 돼요. 메뉴판에 상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데 못 보셨나 봐요."


붓카케 우동이 뭔지 몰랐던 데다 진상 느낌마저 풍겨서 부끄러웠다. 제비꽃이 나를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오늘은 특히 분위기 잘 잡아야 하는데. 나는 머쓱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제비꽃도 마주 보고 웃었다.


제비꽃이 시킨 우동은 진하고 투명한 갈색 국물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면은 국물 밑에 푹 담겨 하얗고 매끈했다. 내가 원했던 게 저런 평범한 우동이다. 왜 내겐 우동의 평범함마저 허락되지 않는 거니.


"류미 씨 이거 먹어요."


자기 우동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나 보다. 제비꽃이 자기 우동 그릇을 내 앞으로 밀고 붓카케 우동을 가져갔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이거 그냥 먹을게요."


나는 다시 붓카케 우동을 내 쪽으로 가져왔다.


"괜찮아요. 나 원래 냉우동 좋아해요. 류미 씨 따뜻한 우동 먹어요."


미안했지만, 사실 저 김이 솔솔 나는 따끈한 우동이 탐났다. 나는 내키진 않지만 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우동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그럼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한 젓가락 먹었는데, 크으.. 국물이 끝내줘요. 역시 겨울엔 따뜻한 우동이 최고야. 제비꽃은 이미 붓카케 우동을 반 이상 해치웠다. 나를 배려해서 가져갔다기엔 너무 잘 먹는데? 배려심도 있긴 하겠지만, 원래 뭐든 안 가리고 많이, 빠르게, 잘 먹는 사람이 아닐까. 그는 어느새 국물까지 쭉 들이키고 젓가락을 놓았다.


그럼 시작해볼까.


"제비꽃, 우리집에 고양이 보러 갈래요?"


"류미 씨 고양이 키워요?"


물론 안 키운다. 이제 '라면 먹고 갈래?' 시대는 지났다. 바야흐로 '고양이 보러 올래?'의 시대인 것이다.


"몰랐어요? 우리집에 얼마나 귀여운 고양이가 있는데요."


"말 안 해서 몰랐어요. 그런데 가도 돼요? 어머니 계신 거 아니에요?"


"엄마는 아줌마들이랑 놀러가셨어요. 1박 2일로."


'1박 2일'을 강조했는데 표정에 변화가 1도 없었다. 눈이 음흉하게 빛나지도 않았다. '고양이 보러 올래'와 '1박 2일간 집이 비어요'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조선시대에서 오셨어요? (참고로 남녀상열지사 조선시대에도 남녀 간에 일어날 일은 기가 막히게 일어났다는 사실)


제비꽃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류미 씨, 우동 천천히 먹고 있어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제비꽃은 15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우동을 국물까지 싹 먹고 멀뚱히 앉아 있었다. 변비인가?


마침내 제비꽃이 가게 문을 열고 돌아왔다.


"류미 씨, 다 먹었어요? 이제 가요."


나는 제비꽃의 손을 이끌고 집으로 걸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다세대 주택. 우리는 맨 위층에 살았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 뒤를 보니 제비꽃은 안 따라오고 계단 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정말 들어가도 돼요?"


"그럼요. 괜찮아요. 고양이가 놀랄지도 모르니 살짝 들어와요."


제비꽃이 계단을 하나하나 느리게 올라왔다. 경계하는 모습이 꼭 고양이 같네. 그는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목을 길게 빼서 안을 들여다봤다.


"아이, 괜찮다니까. 빨리 들어와요."


제비꽃을 잡아끌었다. 제비꽃, 드디어 류미 집 입성. 그는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놓고 들어왔다.


"손 좀 씻을게요."


제비꽃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나는 방으로 와서 침대를 정돈했다. 아침에 청소를 했는데 침대에 미처 못 치운 코 푼 휴지랑 양말이 쑤셔 박혀 있었다. 서둘러 빼내서 쓰레기통이랑 빨래통에 넣고,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점검했다. 방의 청소 상태, 냄새 상태, 그리고 오늘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품 준비 상태.


"고양이는 어디 있어요?"


"아 깜짝이야!"


제비꽃이 방문 앞에 뻘쭘하게 서 있었다.


"아... 미안해요."


"괜찮아요. 제가 뭐 좀 하느라고."


"그런데 고양이는 어디 있어요?"


제비꽃의 눈에 의아한 눈빛이 감돌고 있었다.


"보여줄게요. 눈 감고 속으로 하나 둘 셋 세고 눈 떠 봐요."


제비꽃이 눈을 감았다가 3초 후 눈을 떴다.


"야옹~ 내가 바로 제비꽃의 고양이예요!"


나는 그의 코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귀여운 척을 했다. 야옹! 귀엽고 애교 있는 웃음을 지으며 기대했다. 그의 표정이 환한 미소로 바뀌길.


그런데 제비꽃의 얼굴이 굳어졌다.


"류미 씨, 저한테 거짓말한 거예요?"


"아니... 거짓말이 아니라 농담이죠."


"고양이는 없나요?"


"제가 고양이라니까요."


"...류미 씨 말고요. 진짜 고양이는 없는 거죠."


아 왜 이렇게 벽창호야. '내가 당신의 고양이~' 하면 귀엽다고 하면 되지 진짜 고양이는 왜 따져.


"저... 고양이 알레르기 있어요. 고양이랑 같은 공간에 있으면 눈이 퉁퉁 붓고 콧물 나고 두통까지 생겨요. 그래서 아까 급하게 약국 가서 약 사 온 거예요. 약국이 멀리 있어서 한참 뛰어가서 샀어요.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아 변비가 아니라 약 찾으러 다닌 거구나. 나야 사정을 몰랐지. 근데 사람이 너무 정색을 하네. 농담인 거 알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도 되잖아? 억울했다. 이건 마치 "라면 먹고 갈래?" 하며 집으로 불러들인 썸남이 "라면 어딨어? 라면도 없으면서 왜 불렀어!"라고 화 내는 상황이잖아.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류미 씨, 미안해요. 아까 약 산다고 뛰어다닌 제 모습이 바보 같아서 그랬어요."


제비꽃은 이제 울적해져 있었다.


"고양이 알레르기 있다고 얘기하면 되잖아요."


"처음 류미 씨 집에 가는 건데 그런 얘기 하기 싫었어요. 뭔가 초 치는 느낌이잖아요. 나는 류미 씨를 조금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요. 솔직히 말할게요. 나는 둘만 있고 싶었어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고양이는 쉬운 핑계였구요."


솔직히 말한다고 해서 '너의 성기능이 멀쩡한지 확인하고 싶었다'라고까지 솔직하지는 않았다. 그러고서 가만 보니, 분위기가 아직 나쁘지 않았다.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듯했다.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침대로 향했다. 그를 침대에 앉히고 볼을 만졌다. 그가 가만히 있었다. 그의 눈빛이 누그러들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그대로 입술에 키스했다. 지난번 첫키스 이후 종종 키스를 했지만, 여기는 둘만의 공간이니 더 과감하고 끈적하게 다가갔다.


키스는 모든 거사의 첫 번째 단계. 조금 무르익었다 싶어 제비꽃의 어깨를 밀어 침대에 눕혔다. 입술은 떼지 않았다. 눈을 살짝 떠보니 그가 눈을 감고 집중해 있었다.


수위가 순조롭게 올라가고 있었다.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얼굴, 다음에는 어깨, 등, 허리까지 내려왔다. 허리까지 내려온 손이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조금만 더 아래로, 조금만 더 앞으로 손을 뻗으면 내가 원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언제까지 여기서 멈춰 있어야 하지. 빨리 확인하고 싶은데.


그때, 제비꽃이 흥분한 듯 몸을 더 세게 밀착시켰다. 입술에도 힘이 들어갔다. 옳지 지금이다. 나는 분위기에 취한 척, 손을 앞쪽 아래로 옮겨 더듬었다. 바지를 입고 있는데 정도면...


"류미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제비꽃이 화들짝 놀라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손으로 그곳을 막고 있었다.


"갑자기 만지면 어떡해요."


"네? 안 돼요?"


"아니 그건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짜증이 났다. 그럼 뭐 만진다고 얘기하고 손을 뻗어야 하나? 진짜 고지식하고 답답하네. 속이 터졌다. 그럼 언제쯤 만질 수 있는데요? 1년 있다가?


"궁금해서 그랬어요!"


"뭐가요?"


"제비꽃 거기가 큰지."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밝히는 여자가 되기는 싫었다. 내가 남자를 밝혀서 쉽게 흥분해서 거기를 만지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피지컬적 조건을 확인하고 싶은 냉철한 사람임을 알리고 싶었다.


제비꽃이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거 크기까지 봐요?"


그가 몸을 굴려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아니 무슨 그거 크기까지 봐요... 진짜... 류미 씨는 왜 이렇게 조건이 많아요."


그가 진 빠진다는 듯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사실은 내 친구 라희가 남자친구 그게 너무 작아서 헤어졌다고 하길래, 혹시나 해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그러는 게 어딨어요. 그냥 만지는 게 아니라 더듬으면서 확인하더만."


"그게 티가 났어요?"


"당연하죠. 그럼 오늘 그거 확인하려고 데려온 거예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네요."


제비꽃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너무 충격받았나? 아니면... 내가 의심한 대로 자신이 없어서? 혹시 그런 거야?


갑자기 제비꽃이 몸을 휙 굴려 내 몸 위로 올라왔다. 강렬한 눈빛인데, 화가 난 건지 뭔지 분간이 안 갔다.


"그럼 오늘 보여주면 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제비꽃은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자신의 남성성을 보여주었다. 장장 2시간에 걸쳐.


드디어, 제비꽃을 검증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만큼 - 아쉽게도 그 이상은 아니지만 - 딱 내가 원하는 만큼 괜찮았다.


합격.


***야한 묘사는 필력이 딸려서 생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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