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어택으로 인한 비출산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
나는 서른 아홉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혼주의자도 아니었고. 헤어져 있었던 기간을 제외하고도 10년 가까이 오랫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결혼의 압박 같은 걸 주는 사람도 없었고 다행스럽게도 남자친구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오랫동안 그냥 연애만 했다.
하지만 나이 마흔을 향해 달려가면서, 주위에는 내 집 마련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그 중에는 압도적으로 기혼자들이 많았다. 서울 집값은 너무 비싸고 나 혼자서는 평생 집을 사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래서 경제적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바로 옆에 적합한 인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친구라면 결혼을 해도 '불편하지 않겠다', '내 인생이 엄청나게 바뀌진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남자친구와는 마음이 잘 맞았지만, 주변에서 힘든 결혼생활의 레퍼런스를 의도치 않게 많이 수집해 놓은 나에게는 결혼 공포증이 있었으니 부정적 레퍼런스의 많은 부분들은 당사자가 아닌 가족과 관련한 문제들 이었다. T와 J 모두 왕 대문자인 나는 결혼 후에 나에게 닥칠 일들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하고, 방지할 수 있는 것은 방지하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양가 부모님께 우리는 자녀계획이 없다는 것과 명절에 각자 자신의 부모님 댁으로 가겠다는 것을 미리 공유하고 동의를 받아 오는 것. 두 번째 안은 양가 모두에게서 까였지만, 의외로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쿨하셔서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클리어하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직계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서
"뭐, 소식은 없고?"
"아, 2세 계획은 없으세요?"
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데, 특히 일하고 있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회사에서는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은 속상하지만, 업무의 공백 발생과도 상관이 있기 때문에 궁금해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네, 계획이 없어요." 라고 말하곤 하지만, 딱 봐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 사람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50대 후반 이상, 남성일 경우가 많은 듯) 의 질문에는 "아, 네. 잘 안생기네요" 라고 미안해서 더 물어볼 수 없게끔 만드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이 전략이 먹혀서 한번에 입을 다무는 상대방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상대는 바로 산부인과 선생님이었다.
여성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더라도 고정적으로 산부인과를 다니며 검진을 하는 게 좋지만 사실 단골 (?) 산부인과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도 그랬고.
나는 3년 전, 결혼을 앞두고 자궁근종 수술을 했었다. 대학병원은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친구 여러 명이 아기를 낳았던 꽤나 규모가 큰 여성 전문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그때 수술을 해 준 선생님이 너무 좋았어서 그 이후로 추적 관찰 및 기본적인 여성질환 (자궁경부암 검사 등) 검사를 위해 정기적으로 가고 있다. 나의 담당 선생님은 아마도 나이가 내 또래처럼 보이는 여성인데, 나이를 먹었지만 산부인과 지식 수준이 낮고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놀란 소라게처럼 움츠러드는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해 주었고, 태닝이 취미이니 수술자국을 최대한 비키니 라인 안 쪽으로 끊어 달라는 나의 요구에 최선을 다해 응해 주셨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래서 방심했던 걸까.
"oo 씨, 결혼 하셨다고 그랬죠."
"네, 선생님 그때 수술한게 결혼 직전 이었어요"
"아기 계획은 없어요?"
"네, 없어요. 저희는 안 낳기로 하고 결혼했어요" (필요 이상으로 너무 당당했나?)
"아...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럴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싸한 느낌)
"아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이예요, oo씨는 아직 모르겠지만 엄마가 되어보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아 네..."
"oo씨 같이 아기를 낳는 게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막상 낳아보면 희생이 아니라 축복 받았다고 느끼실 거예요."
하필 대화의 발생 장소가 산부인과 진료실이어서 '노력해도 잘 안생기네요' 같은 대답을 했다가 선생님이 검사해보자고 하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공격을 늘 부드럽고 단호하게 받아쳐 왔던 나인데, 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지? 굴욕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 자체가 나에겐 너무 불리했다. 여긴 앉기만 해도 쫄리는 곳이니까.
결국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 네... 그렇죠. 생각해 볼게요." 라는 대답을 하고서야 진료실을 나올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이미 나는 남성 친척 어른에게서 '너 같이 빨리 결혼 안하고 아기 안 낳는 여자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해'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땐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어렸기도 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전이었기 때문에 한 마디도 받아치지 못했고 그래서 두고두고 분했던 기억이다. 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대응하지 못한 어택의 상대가 생각하지도 못한 상대 (또래 여성) 였기 때문인지 한동안 기분이 참 묘했다.
내가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한 것이 왜 나쁜 결정처럼 간주되어야 할까?
아기를 낳지 않는 여성은 왜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
그들은 아기를 낳는 것이 여성의 희생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여성만 희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을까?
내가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한 이유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아기를 키우면서 지금처럼 경제 활동을 할 자신이 없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 가진 게 많지 않다. 겪어보지 않은 일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내가 불행해 질 확률은 많이 양보해서 50% 이고, 불행한 엄마가 키우는 아이가 불행할 확률은 100% 라고 생각한다. 예상할 수 있는 2인분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이기적인 거라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맞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기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내가 하지 않은 큰 결정을 한 여성들과 앞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될 아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할 생각이다. 이건 내가 불행해지지 않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미혼모 지원 단체에 힘을 보태고, 부모 없이 단체에서 자라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독립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지원하고, 내 친구들의 아기들이 자라서 쓸 지구를 위해 일회용품을 적게 쓰는 것. 그리고 내가 하지 않은 큰 결정을 한 가장 가까운 사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우리 엄마 아빠에게 잘 하는 것.
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다보니 꽤나 따뜻한 사람같네.
평소엔 인간혐오가 있다고 말하는 주제에.
제이디 차 Zadie Xa (b.1983) 의 <안내자와 짐승>, <미래의 우리들>.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여성 역사, 샤머니즘 속 페미니즘을 주 무대에 올려놓는다.
제이디 차 개인전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 @스페이스K 마곡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