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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담요 Aug 11. 2024

애착인형의 이름이 부끄러웠던 순간

<뒤에 올 여성들에게>

나에게는 애착인형이 있다. 이름은 김사기. 사기에게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고, 거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디지털 크리에이터 Sagi KIM. 우리 집과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사기의 세계관 속에서 나는 사기의 엄마이고 남편은 사기의 아빠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내 애착인형의 성을 내 성인 CHOI 가 아닌, 남편의 성인 KIM 으로 붙였다. 개인 계정보다 사기 계정을 열심히 업로드하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왜 토끼 이름이 김사기예요?"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순간 당혹스러워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사람은 이름이 '사기'인지 물었던 거였지만, 나는 혼자 '왜 성이 김이지?' 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하게 된 것. 가부장제에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인 내가 아무 생각없이 소유인 토끼 인형에게 남편의 성을 붙였다는 사실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 뒤로 사기의 성을 바꿔볼까 생각도 했지만 최사기보다는 김사기가 익숙해져버려 사기는 아직도 김사기인 채로 살고 있다. 


우리 아빠는 최씨, 엄마는 김씨, 나와 내 여동생은 최씨이다. 우리 집에서 성이 다른 사람은 엄마 뿐이다. 어릴 적 엄마는 가끔 아빠와 우리에게 화가 날 때 "최씨들끼리 알아서 해!" 라고 말하곤 했다. 혼자 성이 다른 엄마가 외로워 보였다기 보단 혼자 우월한 척하며 우리를 손절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였지만, 어릴 때는 엄마만 왜 성이 다른지, 우리는 왜 아빠와 성이 같은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국은 결혼을 해도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지만 많은 서양권 국가들은 부부동성제도를 따른다. 그래서 가족이라면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성을 가진다. 부부동성제도란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는 혼인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아내의 성 (maiden name) 이 결혼 후 남편의 성 (married name) 으로 바뀌는 것이 관습이며, 남성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경우나 여성의 집안이 더 권력이 있는 등 현실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남성이 여성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영미권 기혼여성의 경우 영국은 90%, 미국은 70%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결혼을 했다고 성을 바꾸다니! 그러면 결혼하기 전에 남자친구의 성이 내 이름이랑 잘 어울리는지도 확인해야 하는 걸까. 이름이 태희인 여자는 변씨 남자와는 아무리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해도 결혼하긴 정말 싫을 것 같은데. 한국보다 더 선진국이고 여성 인권이 상대적으로 높아보이는 영미권 국가에서 왜 여자들이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을까? 어쩌면 가부장제 끝판왕으로 보이는 한국이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여자들의 인권을 좀 더 존중하고 있었던 것일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한국은 역사적으로 드물게 부부동성을 채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라라고 한다.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내가 남편을 따라 성씨를 바꾸었다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과거 여성 독립 운동가나 교육을 받았던 신여성들이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부 남편의 성을 따랐던 경우는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부부별성이 유난히 엄격히 지켜지는 이유는 혈통을 중요시하다보니 여성 측의 혈통을 상징하는 성씨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응? 혈통이라면 한국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주로 매칭하는 단어 아니야? 아이러니하게도 혈통의 중요성 때문에 과거 한국 여성은 결혼을 해도 남편의 성을 따르진 않지만, 동시에 아무리 신분이 높은 여성이어도 (왕후의 경우에도) 사서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OO씨 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반대로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한다는 부부동성이 뿌리박힌 서양에서는 귀족이었다면 여성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부부동성에 비해 부부별성이 선진적인 풍습이라고 보는 것은 딱히 또 진실이 아닌 셈이다. 한국은 부인보다는 처가 가문 소속 남성들 자체의 권위를 존중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배경이야 어떻든 간에 그나마 한국이 부부동성제가 아닌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아니었다면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김씨가 되었겠지. 성이 바뀐다는 것,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내가 과거 40년 동안 만들어 온 히스토리 주인의 라벨이 바뀌는 거니까. 


남성의 세계로 간주되었던 경제학계에서 고군분투하며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사상 최초의 여성교수가 되었고, '여성과 노동' 이라는 강좌를 처음으로 개설했던 페미니즘 경제학의 선구자 마이라 스트로버는 첫 번째 남편이자 두 자녀의 아버지인 샘과 이혼 후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제이와 두 번째 결혼을 앞두고 이름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스트로버' 라는 전 남편의 성 대신 제이의 성인 '잭맨'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결혼식 전에 의논한 것 가운데 내가 이름을 바꿔야 할까 하는 문제가 있었다. 제이의 남동생 부부는 이름을 바꾸라고 열심히 설득했지만,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는 이혼한 뒤에 처음 닥친 문데인데, 그때 몇몇 친구가 마이라 스트로버라는 이름을 그만 쓰고 마이라 호펜버그로 돌아가라고 얘기했다. 나는 전남편 대신 아버지 성을 쓰는 게 왜 페미니스트다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럼 네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인 셰러를 써. 아니면 외할머니의 결혼 전 성인 그린버그를 쓰든지."
친구들은 말했다. 
"그것도 남자들의 성이야. 하나는 할아버지 성이고, 다른 하나는 증조할아버지 성이지. 여기서 우리가 이길 방법은 없어." 

마이라 스트로버 <뒤에 올 여성들에게> 331-332쪽


마이라 스트로버는 결국 자신의 직업에서 더 알려진 이름, 뭘 더 하고 유지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이혼한 전남편의 성인 스트로버를 그대로 계속 쓰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이모는 그에게 몇년 동안 마이라 잭맨 (제이의 성) 이름으로 생일 축하 수표를 보낸다.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성인 '메르켈' 도 이혼한 전남편의 성이다. 1998년에 결혼해 현재까지 함께 살고 있는 현재 남편의 성이 아닌 5년이라는 짧은 결혼생활후 1982년에 이혼한 전 남편의 성을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은 그 사이에 그가 이룬 박사로서의 연구 커리어 때문이라고 한다. (논문에는 연구자의 이름이 반드시 기재되어야 하므로 학계에서 학자의 이름은 일종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찾아보다가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기분이 든 것은 처음이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남자들의 성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 슬프게도 전지구적으로 이렇게 세팅이 된 이상 세계가 한번 리셋되기 전에는 이 싸움에서 이길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역사적 데이터를 모두 포기하고 지금부터 우리 모두 성을 다 없애고 후천적으로 붙인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고 기록하자고 할 순 없으니.

 하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부부동성제도를 법제화 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다보니 500년 후에는 일본인 모두가 사토상이 된다하는 기사를 읽었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지구 역사의 엔딩을 보는 것 같다. 




샹탈 조페 Chantal Joffe (b. 1969) 의 <Self Portrait with Esme>. 미국에서 태어나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샹탈 조페는 모델, 포르노 여배우, 어머니와 아이들, 문학작품 속 여성들을 중립적인 시선으로 담으며, 2004년 딸 에스메가 태어나자 '모성', '10대' 에 주목한 작업들을 해왔다. 거친 주제와 강렬한 색채, 풍부한 표현력은 그의 시그니쳐 스타일이다. @내셔널 갤러리 런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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