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 반가운 얼굴로 달려갈거야
4집을 준비하던 당시 2인조인 이 밴드는요, 제주도로 보름 동안 작곡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묵었던 숙소 근처에 놀이공원이 하나 있었는데요. 술 먹고 숙취가 남은 상태에서 해장용으로 바이킹을 타곤 했죠. 거의 매일 밤 술을 먹은 탓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바이킹을 탔는데요. 각각 바이킹에 양쪽 끝에 앉은 두 사람은요 늘 주머니에 넣어둔 귤을 까먹으며 멀리 펼쳐진 제주도의 풍광을 만끽했습니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날 그날도 두 사람은 어김없이 바이킹을 탔는데요. 상쾌한 바람, 신나는 느낌은 그대로였지만 숙소로 돌아오자 왠지 쓸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바이킹이란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죠. 덕분에 그 놀이동산 바이킹 앞에는 이 밴드의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붙었다고 해요.
"바이킹에 매료된 가수 페퍼톤스, 바이킹 가요를 만들고 부르다!"
윗글은 2019-2022 부동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오프닝 1위이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듣고 있는데 그들이 만든 노래가 시작되고 해장 바이킹을 타는 이 사람들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라디오를 들은 이후로 난 사계절 내내 페퍼톤스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겨울에 해장 바이킹을 타러 가겠다는 소원 아닌 소원도 생겼다. (바이킹 뮤비 심심하면 보시길..)
페퍼톤스의 음악은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다. 떠나는 마음과 돌아오는 마음, 그 어떤 허무함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충만함을 가득히 담고 있는 음악들이다. 가끔 밤늦은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면 페퍼톤스 노래를 들으며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노래는 어디서든 힘껏 여행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은 페퍼톤스의 음악이 필요한 날이었다.
마지막 날도 어김없이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이 너무 좋아!
이번 여행에 오기 전에 계획한 게 한 가지 있다면 평소 나라면 절대 안 해봤을 것 같은 거 한 가지 해보기. 물론 패러글라이딩 같은 것도 있지만 그건 평소의 내가 아니라 죽었다 깨어나도 안 할 것 같기 때문에 액티비티 종류는 기각되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섬에 들어가기. 그냠 섬은 듣기만 해도 무서우니까..섬에 들어가기로 했다. 같이 지내는 게스트분이 가파도라는 섬을 추천해주시면서 그곳에 가면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보자마자 가고 싶어졌다. 가파도로 결정했다.
운진항까지는 버스로 시간이 꽤 걸렸다. 도착해서 급하게 티켓을 끊고 배에 올랐다. 운항 시간표를 보는데 시작부터 마지막 배를 놓친 기분이라 무서웠다. 배는 금방 섬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뱃멀미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멀미 때문에 몽롱한 기운을 가지고 섬 입구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천천히 섬 주변을 둘러싼 바다를 보고 섬 안에 있는 마을을 둘러봤다.
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왠지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찰랑거리는 물결이 어딘가 쓸쓸하기도 하고 아찔한 느낌이었다. 섬에서 살면 항상 이런 기분을 느끼려나싶어 우울해졌다가 최근에 읽은 책 하나가 떠올랐다.
"좋아한다,가 사투리로 뭐예요?" (뻔뻔하기도하지)
그가 웃으며 답했다.
"좋아하맨마씸"
섬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바람 소리를 이길 만큼 억세다고 들었다. 강력 접착제처럼 입에 딱 달라붙는 발음. 외국어로 들릴 만큼 이국적이었다. 망설임을 뒤로하고 마침내 내뱉는 청년의 고백처럼 그 말은 단단해 보였다.
섬에서 온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는데 사투리에 대한 설명이 인상깊었다. 바람을 이기는 말을 뱉어야하는 곳. 외로움이나 쓸쓸함 조차도 단어에 억세게 묶어 말을 내뱉어야하는 곳이 섬이고 제주인 것 같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섬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나도 그렇게 강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녁엔 우연 아닌 우연으로 지인을 만났다. 지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던 얘기를 하던 중 내가 물었다.
"그래서 다녀오니까 마음속에 있던 문제가 해결됐어요? 저한테는 그게 중요해요."
"아뇨. 거기 가면 기억이 안 나요. 내가 뭐 때문에 힘들었는지."
그러고 보니 나 왜 제주에 왔더라.
마지막 날 저녁, 다시 돌아본 지금까지의 제주에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질문들은 몽땅 사라지고 새로운 질문과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만 남았다.
이제 여행은 끝나간다. 어떤 마음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모든 만남과 기억들이 벌써 그리워졌다. 여행을 끝내고 싶지 않아서 글을 미루고 싶다. 겨우 여기까지 와서나 여행을 느끼는 내가 초라해지면서도 매일을 여행처럼 살고 싶다. 나는 성실하게 지난 일을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이런 나에게 제주는 현재를 선물해줬다. 이곳에서만큼은 눈앞에 있는 사람과 일상에 머무를 수 있었다.
또다시 제주에 가고 싶다.
올해 겨울엔 꼭 제주에서 바이킹을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