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잠이 들었다. 절대로 ‘딱’ 소리를 내며 닫힐 것 같지 않은, 엇나간 채로 닫힌 문틈 사이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린이 돌아왔구나. 옆으로 돌아누워 잠에 다시 빠져들려고 한 찰나,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린이 이렇게 무례하게? 의아한 마음으로 살짝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거대한 남성과 무섭게 생긴 검은 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을 켰다. 눈이 부셨고 침대에서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뒤로 더 많은 남자들이 그와 똑같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방 밖에 있던 어떤 남성이 소리를 치며 말했고, 아래층에서는 무어라 대답하는 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실례한다, 미안하다, 혹은 유감이다 이런 설명도 없이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서 내려와 서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워 있기도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었다.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휴지통, 책상, 책상에 딸린 서랍장, 라디에이터, 옷장, 침대 옆의 작은 테이블까지 개 두 마리를 끌고 다니며 냄새를 맡게 했다. 그 모든 것들은 침대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검은 상어들에게 둘러싸인 흰 조각배에 올라탄 기분이었달까.
이렇게까지 잘못한 일이었나 싶었다. 무섭게 생긴 개가 두 마리나 필요하고 경찰이 다섯 명이나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내가 벌인 일이 그렇게나 무거운 범죄인 건가. 순간 제인이 떠올랐다. 이 도시에 와서 머물렀던 첫 집의 주인인 제인 말이다.
제인은 방글라데시에서 이 도시로 이주해 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였고(제인은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 사이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처럼 보이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그들의 집은 우범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내가 어느 방면에 산다고 얘기했을 때 이야기를 듣던 그 도시 사람들이 살짝 눈썹을 찡그릴 정도였다. 비가 오면 집 앞에 놓인 돌은 잠기기가 일쑤였지만, 제인은 뼛속 깊은 성실함으로 매일 집을 쓸고 닦았다. 그녀의 반듯함과 청결에 대한 강박은 나에게까지 강요되었는데, 집에 도착해 큰 캐리어를 간신히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불쑥 <이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라고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꼬부랑 글씨체가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어린 아들이 깰 수도 있으니 저녁 9시 이전에 집으로 들어올 것. 샤워는 10분 이내로 끝마칠 것. 욕조 바닥으로 물이 튀지 않도록 할 것. 아침 일찍 알람 소리가 계속 울리지 않도록 할 것. 등등등. 아마도 나 이전의, 또 이전의, 그 이전의 학생들. 이 집을 거친 수많은 학생들로부터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한 문장, 한 문장으로 적힌 듯했다. 내가 집을 나온 이후에는 ‘너무 많은 신발을 가지고 꺼내 놓지 말 것!’이라는 규칙이 추가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규칙 속에서도 제인에게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나를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라는 착각까지 했는데, 그녀의 어린 아들이 겪고 있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내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나는 각종 ‘한국산’ 마스크 팩을 보유하고 있었고, ‘한국산’ 화장품을 올려놓고 다녔으며, ‘한국산’ 김과 고추장을 갖고 있었다. 그 집도 역시나 절대로 ‘딱’ 소리를 내며 닫힐 것 같지 않은 문이 있는 방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제인이 가끔 몰래 들어와 마스크 팩을 가져갔고 나의 화장품을 썼으며 김을 먹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온화한 미소로 신문물을 전파하는 것처럼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녀의 진짜 방글라데시 이름도 몰랐으면서. 어리석은 우월감이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안경을 집어 썼다. 미리 말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앞머리는 뒤로 까뒤집어지고 얼굴은 번들번들, 입술은 허여멀건한 채로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사람. 조금만 미리 정중하게 요청을 하였더라면 인생 최초의 심문 장면을 이렇게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1층으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이 도시에서 내 방을 빼앗으려는 자,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