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현 Oct 02. 2024

거실에서

 계단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기 때문에 한 밤 중이 아니라 대낮 같았다. 문득 새벽 2시에 이 집을 이렇게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보았다. 린은 계단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금발 머리가 부스스했다. 1층으로 내려가자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거실로 들어가 장미가 수놓아진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건너편에는 미쉐린 캐릭터를 닮은 형사가 앉아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는 린과 내가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았다. 보기 드물게 화창했던 날이었고 불안하고 어색해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은 웃음을 띠고 있는 나에게 린은 계속해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권유했다. 이틀 뒤에 이 집으로 이사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녀는 ‘너를 위해 2층 방을 깨끗하게 비워뒀어’라고 답했다.

 당시에 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제인이 방세를 더 올리고 어린 아들의 방을 치운 뒤 다른 학생을 한 명 더 들였다.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과 더 불편해진 환경에 대해 ‘이 집에서 나가줘’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방 한 칸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우연히 친구의 친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 집의 주인에게 내가 들어가겠다고 연락을 해두었다. 제인에게 정중히 말했다. 나,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그녀가 알았다고 했다.

 슬프게도 도시에서의 약속은 쉽게 구겨져버리는 전단지 같은 것이었다. 옮기려던 그 집의 주인이 이사 며칠 전 날 통보했다. 우리 조카가 여기로 온다고 하네? 미안하지만 우리 집은 안 될 것 같아. 이번에는 빌듯이 제인에게 말했다. 저기, 내가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될까? 그녀가 말했다. 오우, 유감이야. 그렇지만 안 돼. 이미 다른 학생을 구했거든.

 다른 유학생들이 이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해’라고 말은 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때 그 많은 무리에, 키의 절반 정도인 트렁크를 끌고 도시의 거리를 전전하는 나를 상상하며 가엾게 여긴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찌나 고민을 깊게 했던지 간밤에 그가 내쉰 한숨 소리에 그의 집주인이었던 쉘리가 그 연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격정적인 마음은 쉘리에게 넘어가 마침내 그녀의 친구 린에게 도착했던 것이다.


 미쉐린 형사가 질문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죠?”

 “한국이요.”

 “노스 올 사우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재치 있다고 판단했는지 미쉐린이 눈썹을 씰룩이며 웃었다. 그의 배가 부풀었다가 내려왔다. 내 옆에 앉은 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피부가 거칠게 일어났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린은 아직도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기 공부하러 온 건가요?”

 “네.”

 질문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왜 공증된 기관의 소개 없이 집을 얻게 되었냐고, 왜 수수료를 내지 않고 집을 구했냐고,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집주인에게 돈을 지불해 세금을 내지 않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볼까 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제이크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샤는 아무것도 몰라요.”

 린이 대신 대답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쉴 뻔했다. 미쉐린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어나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가 부엌에 몰려있는 그 검은 무리들에게 가버린 뒤, 다시 린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을 봤을 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경찰관들이 차례로 나가고 린과 현관문 앞에 섰다. 그녀는 문단속을 한 뒤 자라고 말했다. 내 어깨를 가볍게 쓸어준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문을 잠그고 계단으로 올려가려다 거실로 눈길을 돌렸다. 소파와 러그의 무늬 그리고 선반의 먼지들까지 너무나 모든 것들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거실의 등을 껐다.     

이전 01화 이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