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몰려들고 카메라들이 쉴 새 없이 찍어대면 어떡하지? 이웃 사람들이 어제 그 경찰차는 뭐냐고 자꾸 캐물으면 어떡하지? 이 집에서마저 나가야 한다면,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어떡하지’의 공격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 망상을 끝낸 건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린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문단속을 당부했다. 마치 그것이 복선이고 전조이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와 같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만드는 예언이 아닐까. 이 집은 한 겹만 벗기면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는, 그래,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인형의 집처럼 한쪽 벽면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모든 방, 거실, 부엌, 계단,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나있는 커다란 창문들 때문에.
휴대폰 액정을 두드렸다.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의자에 걸쳐둔 후드를 쓰고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의 반투명 창으로 실루엣이 보였다. 잠금장치에 손을 두고 머뭇거리자 나의 존재를 파악한 상대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린! 안에 있어?
천천히 잠금장치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탁. 경쾌한 소리. 그리고는 문을 열어버린 것을 후회했다. 이 집에 살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백인 남성이 서 있었다. 뒤로 살짝 물러섰다. 파란색 볼캡을 쓴 그 남성도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린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젯밤 이 집에 경찰들이 몰려왔고, 그녀가 그들과 함께 나갔다는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는 잠깐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고는 현관 옆에 있는 린의 방문을 확 열었다.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새벽의 방문자는 급하게 사라졌다. 다행히 그 뿐이었다. 망상 속 인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토스트를 오물거리며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일렬로 서서 50번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았다. 똑같았다. 버스의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청난 졸음이 몰려왔다.
띵 소리와 함께 ‘퀄스퀄스 로드’라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다. 버스에서 내려 문을 여는 가게들을 지났다. 울퉁불퉁한 도로들은 여전히 나의 얇은 컨버스화에 닿았다. 서너 대의 자전거가 앞을 스쳐가고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무례한 침입자들과 공포심은 바쁜 아침 공기를 타고 날아갔고, 지난밤의 일은 까마득해졌다.
아침 수업을 듣고 라운지로 갔다. 동그란 책상에 홍과 박, 정과 림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음식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가자 정이 자신의 재킷을 의자에서 치워 자리를 만들었다.
“안녕하세요오”
카레 소스를 밥에 얹어 섞고 있는데, 홍이 내 손을 톡 건드렸다.
“야, 너 괜찮아?”
그제야 고개를 드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박은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고 있었지. 또 무슨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해맑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너, 정말, 몰라? 어제 우리 집은 쉘리가 전화받고 난리가 났는데.”
홍은 나에게 린의 집을 소개한 그 친절한 친구 다음으로 쉘리 집에 살게 된 한국인이었다. 홍의 사교적인 성격 덕에 내가 몰랐던 린의 이야기들은 늘 그를 통해서 알게 되곤 했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 앞으로 건넸다. 모바일 신문이었다.
<지역 뉴스>
10대 남학생 총기 사건. 긴급 체포.
신문에는 ‘총기’, ‘살인’, ‘체포’와는 관계없는 너무나 평화로운 집 사진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