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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현 Oct 07. 2024

경계선

 “우리가 흑인이라서 이러는 거야, 퍼킹!”

 부엌에서 토스트 기계에 빵을 넣으려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깰까 잠시 손을 멈췄다.

 “진짜야. 우리가 흑인이고 노동자니까 이런 취급을 하는 거라고, 퍼킹.”

 쉘리는 끝나는 모든 문장에 마침표 대신 ‘퍼킹’을 붙이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욕쟁이 할머니랄까. 그녀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이었다. 린의 쌍둥이 아들, 딘과 제이크처럼. 그녀는 거칠어 보이는 만큼 유쾌했고, 목소리도 컸다. 2층 방에서도 쉘리가 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공기의 진동이 달라진 걸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제이크가 체포되었던 그날 이후로 쉘리는 거의 매일 린의 집에 왔다. 그녀는 늘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배에 손을 올리고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웃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 앉은 린은 그때만큼은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홍으로부터 뉴스를 접한 날은 오후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이크가 사람을? 그럴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세상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있니? 아니지, 그건 또 아니지. 하지만…….

 쌍둥이인 제이크와 딘은 내 동생과 동갑이었다.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매일 놀러 다니고, 가끔 서로 언성 높여 싸우다가 린에게 저지당하는 그런 보통의 아이들. 심지어 내 동생처럼 힙합을 좋아해서 벽을 통해 ‘쿵- 쿵-’ 이런 비트가 들릴 때마다 한국의 집이 연상되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특히 린과 대화할 때 멈블링(mumblimg), 우리나라 말로 웅얼웅얼하면 세계의 10대 남학생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신체적 특징을 혼자 발견한 것 같아 감탄하기도 했었다. 그들과 내가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어도 제이크가 누군가를 저격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있잖아, 그럼 그 밤에 경찰들이 내 방에 와서 찾은 것이 범행 도구인 건가? 머리털이 바짝 섰다.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린이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차라리 없어서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인가 생각했다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이미 현관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샤, 왔어? 린의 소리가 부엌에서 들렸고, 거실 문 앞에는 새벽의 방문자였던 그 남성이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피터’로, 린의 오랜 친구였다. (역시나 홍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었다) 3개월을 살면서 그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것이 신기했지만, 주말 내내 방에 틀어박혀있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납득이 되었다. 부엌에서 나온 린은 어젯밤의 일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에게는 머리를 빗질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순간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음을 알고 얼굴이 빨개졌고, ‘괜찮아’라는 말을 한 뒤 도망치듯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갔다.


 “샤, 배고파? 뭐 만들어줄까?”

 린은 부엌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걱정이 되었는지 부엌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그냥 토스트 먹으려구.”

 뭐든 만들어 달라고 해, 샤넌. 편하게 있어, 편하게! 쉘리가 다음으로 소리를 질렀고, 피터의 동조하는 소리도 들렸다. 

 편하게 있으라니. 정말 어려운 주문이군, 이라고 생각하며 재빠르게 토스트를 접시 위에 옮겨 담고 냉장고 문을 열어 잼을 꺼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접시와 컵을 들고 저 셋의 주목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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