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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현 Oct 09. 2024

친구들

 엄마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더더욱. 엄마, 나 여기 집주인 아들이 사람을 죽였대. 그래서 분위기가 어수선해. 뭐? 그 집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 이라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아, 그게 내가 그것도 말을 안 했는데 말이야. 사실 내가 집을 옮겼거든.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불면증을 그녀에게까지 전염시킬 수는 없었다.


 원래 인생의 모든 진실은 가족이 가장 늦게 알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쉽고 안전한 길을 피해 간다. 그래서 뜻밖의 일을 겪게 되기도 하지만. 대신 친구들에게는 이 위급한 사실을 바로 털어놓았다. 린에게 쉘리와 피터가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이야기를 듣더니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유형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야, 그 집에서 당장 나와. 한국에 있는 유학원에서는 뭐래? 아니, 그걸 왜 아직도 말을 안 했어. 내일이라도 연락해서 다른 집 구해달라고 말해. 거기에 있는 센터에도 말하고. 평소에 수상한 점은 없었어? 혹시 모르니까 방에서 없어진 물건 있나 살펴봐. 뭘 그런 사람들이 아니야. 그 사람들도 진짜 어이없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아무 조치도 안 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하면 다야? 또 얼버무리지 말고 똑바로 가서 말해, 알았어? 거기서는 네가 너를 지켜야 하는 거야.


유형 Ⅱ. 너의 하늘이 무너졌다고?


 어떡해 진짜? 많이 놀랐지. 경찰들도 막 들어오고 얼마나 무서워. 부모님께는 얘기했어? 아, 그치. 걱정하시겠지. 그 이후에 다른 일들은 없었어? 다시 찾아온다거나. 나였어도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을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럼 이제 그 집에서 나와야 하나? 저번에 방 구하는 것도 엄청 어려웠다며. 그래도…… 다른 집을 알아보는 게 어 때?



유형 Ⅲ.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니.


 이 마지막 유형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일방적으로 연락을 해서 이렇게 말했다. 거기가 총기 소지가 가능해? 우와, 넌 운도 지지리 없다.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학원에 있는 담당 관리자를 찾아갔다. 방을 구한다구요? 네,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을까요? 흠. 반려동물이 있는 가정은 꺼려한다고 체크하셨네요? 네, 제가 동물들을 무서워해서요. 담당자는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여기는 대부분 동물을 키우는데요? 그렇다면 제인과 린만 '특별하게' 동물과 함께 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럼 종교가 있나요? 아니요, 저는 종교가 없어요.

 그녀는 ‘흠’ 하더니 입술을 삐쭉했다. 방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 동물과 종교가 그렇게 중요한 조건일 줄 몰랐다. 한참 모니터를 보더니 레지던스는 어떠냐고 물었다. 레지던스는, 얼마 정도인데요? 그녀는 서류를 뽑아 주었다. 종이를 받아 들고 영국인들이 집을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씁쓸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관리자는 물었다.


 "그런데 왜 집을 나오려고 하나요? 무슨 불편한 점이라도 있나요? 다른 학생들이 참고해야 하니까요."

 "불편한 건 없어요. 그냥 다른 동네에 살아보고 싶어서요."


 거짓말을 했다. 그들의 소개 없이 들어간 집이라 찔린 것도 있었지만, 린이 내가 떠난 뒤로 과연 다른 학생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이 방세가 너무 중요할 텐데.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동된 그녀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 그건 주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말을 고르고 고르는 사람이었다. 특히 윗사람을 대할 때는 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문장들이 조합되었다가 생략되었다가 난리가 났다. 게다가 영어로 하려니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을 늘 놓치기 일쑤였다. 나에게는 ‘예의’였는데, 그들에겐 '부끄럽고 내성적'인 샤넌일 뿐이었다. 

 린, 직업이 뭐야? 이 말은 세탁기를 가득 채운 세탁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튀어나왔다. 물어봐놓고도 너무나 놀라 입술을 막았다. 빨래를 바구니에 담던 린은 웃었다. 내 직업? 간병하는 일을 해. 간병, 무슨 뜻인지 알지? (린은 여기서 동작으로도 설명했다) 그래서 샤가 아침에 나갈 때 나는 자고 있고 그러잖아. 린은 무거운 바구니를 들고 유유히 뒷마당으로 나갔다.

 린의 집에 들어올 때는 이런 가격으로 학생을 받을 수 있다니, 그녀는 분명 봉사 정신이 투철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나를 내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다는 건 어쩌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지면, 그래, 그때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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