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친 것들에 대하여
상은 받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금박 테두리로 장식된 상장을 주며 담임 선생님은 내 글이 교지에 실린다고 했다.
양성평등의 의미를 고취하고자 시행된 글짓기 대회에는 전교생이 참가했다. 앞에서부터 전달된 원고지를 받았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십팔년 인생의 분노를 휘갈겨 썼다. 태어난 날 금천동 할머니가 조치원 할머니에게 ‘여자애라 죄송하다’며 사과한 사건으로 시작해 남동생의 잘못을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꾸중을 들었던 사건까지 낱낱이 고발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이렇게 억울한 일이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그런 글을 썼는지도 기억이 안 날 때가 되어서야 이 상장이 손에 쥐어졌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만 상장을 보여 주었다. 엄마는 그 소식을 비밀 일기장이라도 돌려보듯 이모와 외삼촌에게만 알렸다. 아빠라면 이렇게 반응했을 테니. ....글로 대학 갈 수 있냐? 공부에 전념하도록.
금천동 할머니는 무릎 위에 교지를 올려놓고는 오뚜기처럼 몸을 흔들며 읽어 내려갔다. 할머니,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 몰러. 인. 데. 그. 가. 할머니는 한 글자씩 짚었다. 내가 읽어줄까? 할머니로부터 교지를 건네받고 읽어갔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팩 소리를 질렀다. 그 이야기를 왜 또 해! 잊어먹지도 않고 또 하고, 또 하고. 아이고. 그 집안에 손자를 낳아 줘야 하는데 못 낳고 딸을 낳으니까 사과하는 게 맞지. 우리의 지루한 싸움이 또 시작될 참이었다. 아주 그냥, 너도 이 씨(氏) 피가 섞였어, 섞였어!
그녀는 외가와 친가를 구별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할머니, 외할머니라는 호칭을 버렸다. 그랬던 그녀는 내가 수학 성적이 안 나와서 애를 먹거나 속 좁고 인색하게 굴면 이 씨 피는 못 속인다며 딱 잘라 선을 그었다. 근데, 할머니도 이 씨잖아. 큰일 날 소리를 하네. 너랑 나랑 같어?! 이것이 금천동 할머니만의 유전자 지도였다.
내가 결국 감기에 졌다. 그즈음 병원에 입원한 조치원 할머니가 쓴 일기였다. 그 지독한 감기의 이름은 담낭암이었다. 가망이 없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금천동 할머니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고, 그날 금천동 할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머니와 함께 누워 그녀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는 나랑 오래오래 살아야 해.”
“싫어. 나도 가. 다 가고 나만 남았어.”
금천동 할머니는 절친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두 할머니는 죽이 잘 맞았다. 사람들은 사돈끼리 사이가 좋은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내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조치원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우리 손자, 손녀들이 용의 꼬리가 될지언정 뱀의 머리가 되게 해주시고, 늘 생활하는데 강건하게 하소서. 아멘. 금천동 할머니는, 우리 아이들 밥 좀 팍팍 먹게 해주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하지만 그녀들의 기도가 무엇이든, 믿는 신이 누구든, 그들의 간절함이 내 동생을 살렸다. 동생은 하나밖에 없는 손자였지만,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는지 ‘몸이 약한 장손’의 법칙은 우리 집에도 적용되었다. 경기를 일으킬 때마다 그의 떨리는 몸을 그들이 끌어안았다. 매일 한 사람은 조치원에서, 한 사람은 금천동에서 우리 집을 향했다.
동생이 건강한 어린이가 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시장도, 노래방도, 여행도 함께 갔다. 두 사람이 말도 없이 사라진 날도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왔다며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던 그들을 아빠가 모시고 왔다.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싶은 봄날의 주말 자습이었다. 엄마가 학교에 왔다. 조치원 할머니가 나를 꼭 만나야겠다고 하셨단다. 사촌 언니들도 아니고, 내 동생도 아닌, 나를.
할머니의 손을 잡고 뻘쭘하게 서 있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준 적이 언제였던가. 유진이 이름을 뭐라고 바꿨다고 했냐, 둘째야. 소현이요, 어머니. 소현이. 소현이. 할머니는 내 이름을 여러 번 되뇌셨다. 이름에 쓰이는 받침은 가운데 글자에 들어가는 게 좋다고 하더라. 종수 봐라. 얼마나 좋은 이름이냐.
차라리 자습이 나을 뻔했다. 지금 동생 이름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들으러 이곳에 서 있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나머지 손녀들 이름에는 받침이 다 마지막 글자에 들어가는데요, 할머니이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더 이상의 할 말이 없어 그녀의 손을 놓으려 했다. 할머니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얘, 아가야. 내가 너를 품 안에서 키우지 못해 네가 나에게 안기지를 못하는 것 같더라. 집에 가도 너는 다가오지를 않았어. 사람들이 남동생 낳게 해준 누나라고 특히 더 예뻐한다고 할까 봐 눈치가 보였지. 그러니, 이 할머니를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힘없이 이어진 그녀와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저는 역시 이 씨 피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