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폭풍이 나나를 세차게 흔들고 지나갔다. 나나의 가족들에게는 먹고 일하고 편안히 자는 일조차 버거웠고 그런 고단한 삶들은 서로를 버티지 못해 짜증으로 이어졌다. 부모님의 다툼으로 전쟁 같은 날들이 일상이 되었고 모두가 탈출을 꿈꾸는 포로들처럼 마음이 밖으로만 떠돌았다. 나나는 일기를 쓰다 중단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매일이 비슷하게 흐를 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나는 모든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에 지쳐 살벌한 말을 쏟아내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친구의 열 마디 핀잔에 한 마디도 받아치지 못하고 집까지 울고 돌아오는 자신이 바보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나는 살던 곳으로부터 벗어났다. 그곳에서 나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자신의 방에 홀로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여러 옷을 껴입고 방문을 나와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그러나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자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고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 없는 무채색 인간이 보였다. 나나는 그런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 친구들에게 아무 말이나 걸었고 헤프게 웃었고 요란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그 방법은 꽤 효과가 있어서 나나는 어느새 친구들의 중심에 있었다. 친구들은 나나의 조금은 깊고 독특한 생각들에 매료되었고 나나는 그에 맞춰 자신을 겹겹이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가는 바람을 잡는 일일 뿐인 것을 나나는 너무도 빨리 깨달아 버렸다. 나나가 아파서 이틀이나 학교에 결석하는 동안 누구도 나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자취방에 홀로 누워 외롭게 병과 싸우는 동안에도 친구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며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나나가 없는 사이 나나가 주도하던 축제 이벤트도 다른 것으로 모두 바뀌어 있었다. 나나는 자신의 존재가 그 작은 공간에서조차 먼지처럼 가볍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나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누구라도 자신을 볼 수 있는 곳에 서고 싶었다. 하나가 사라지면 완성될 수 없는 퍼즐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가난이 자신을 막지 못했노라고, 실패의 조건들을 성공으로 바꾸어 버렸노라고, 나에게도 이 세상에 태어난 당당한 이유가 있었노라고 모두에게 외치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나가 붙잡을 수 있는 세상의 동아줄은 대학 밖에 없었다. 나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의 문을 열기 위해.
비슷한 성적의 친구가 나나가 지원한 대학의 같은 과에 합격을 했다. 나나는 결국 마지막 동아줄을 잡지 못했다. 동화 속 주인공은 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나는 무너졌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의미 없이 태어나 의미 없이 살아가는 운명이 자신에게 정해진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똑, 똑”
벌써 며칠째 그는 지치지도 않고 매일 나를 찾아온다. 나는 문을 열고 싶지 않다. 아무도 내 방에 들이고 싶지 않다. 원래 난 이렇게 세상의 그림자로 태어났을 뿐이었다. 그림자는 절대 빛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만든 신을 저주했고 나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꿈꾸게 한 삶의 순간들을 원망했다.
“똑, 똑”
다시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문도 열지 않는 날 끝까지 기다리다 슬며시 열린 문틈 사이로 빛처럼 들어와 내 방을 가득 채웠다. 어쩌면 나는 숨바꼭질하듯 세상에서 꽁꽁 숨어버리면서도 누구라도 나를 찾아내 주길 간절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오자 날카롭게 나를 베고 찌르던 얼음칼이 그의 온기에 뚝뚝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밤새 울었다. 절망이 나를 스친 그 밤과 다른 울음이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알았지만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혼자라고 느낀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기대지 않았다. 세상을 미워하고 하늘을 원망할 때 그는 나의 모진 말들을 다 받아 주었지만 나는 미안하지 않았다. 실패라고 느낀 순간에, 이제 끝났다고 포기한 순간에 그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가 목숨 바쳐 사랑한 주인공의 주인공이었다.
달은 태양빛을 받아 빛난다. 차갑고 못생긴 돌덩이였던 달이 그의 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그 빛은 누군가의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고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제 나는 다른 꿈을 꾼다. 그의 달이 되고 싶은 달콤한 꿈을.
*지금껏 달이달꿈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책으로 모아볼까 합니다. 책 끊고 드라마 끊고 오직 책 한 권 완성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쓰는 일만 했습니다. 이제 책이 완성되고 나면 들러 주신 이웃님들의 공간으로 방문해 열심히 읽고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