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행복독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여름 Jan 12. 2022

양심의 무게

2019년. 우리 가족은 쉼을 찾아 제주에서 넉달살이를 했다.


남편은 사업을 잠시 맡겼고 나는 휴직을 했다. 아이들은 차로 10분 거리의 바닷가 작은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작은 학교라지만 한 반에 학생수가 20명씩 되는 우리에게는 큰 학교였다. 새로운 환경에 저마다 조금씩 적응해 가던 4월의 어느 날,

 

이안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매일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리기 시작했다. A4 종이를 꺼내서 유튜브를 보고 꽤 열심히 만들어서는 마당에 나가서 날려댔다. 전에도 종이비행기에 꽂힌 적이 있었는데 시골에 사니까 언제든 밖에 나가서 날릴 수도 있구나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두 장의 상장을 내게 내밀었다.


과학탐구대회 발명아이디어부문 금상(1위)

종이비행기 멀리날리기부문 동상(3위)


오잉? 이게 뭐여? 분명히 우리 아들 이름이었다. (이레는 미술부문에서 1등을 받아왔다.)


(아래는 잠시 거북할 수 있음)

아, 지금 과학의 달 행사기간이구나. 그래서 매일 잘 때까지 종이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날려댔던 거구나. 기특한 녀석, 손재주 없는 대신 노력으로 커버를 하다니... 그나저나 남의 학교 잠깐 다니러 와서 상을 이렇게 쓸어와 버리면 다른 애들한테 미안해서 어째... 이 학교 선생님들은 전학생 상관없이 상을 주는 아주 공정한 선생님이신가 보구나. 이안이는 과학고 쪽으로 보내야 하나? 이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랑하지?


저절로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듯 간사하다. 순위 경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은 다 거짓부렁이었다.

혼자서 몰래 김칫국을 사발째 마시고 있는데 이안이가 이상한 말을 했다.


"엄마,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를 했는데 우리 반 애는 내가 만들어 준 비행기로 2등 했어요."


이건 무슨 소린가! 2등을 뺏긴 거야? 이 순진한 녀석이 친구에게 당한 거 아니야? 화가 솟구쳤다.


"아니, 이안아. 이건 대회잖아. 대회는 공정해야 되는데 네가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준 것 자체가 부정행위야. 수능에서 시험지 보여 주는 거랑 똑같다고."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 애가 자기는 참가하지 않을 거니까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아, 그런 거야?... 이 사실을 선생님께 말했어?"


"아니요."


"그 애한테는 말했어?"


"네. 그냥 '야, 이거 내가 만든 거잖아.' 그렇게만 했어요."


이상 아이를 다그칠 상황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게 일어난 일이고 이안이는 남의 잘못을 당장 달려가 일러 주는 그런 성정이 못 되었다.


"괜찮아, 이안아. 엄마에게는 네가 2등이야. 그 애도 처음부터 그럴 마음은 없었을 거야. 잘못했으면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선생님께 바로 말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것 같아."


그렇게 끝내고 지나가는 듯했다. 2등에 대한 미련도 더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마음의 불편함이 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양심의 무게.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그 아이가 겪을지도 모르는 양심의 무겟값이었다. 나는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오래가는지 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가 애써 묻고 있었던 내 양심의 형벌을 떠올리게 했다.


고입 준비로 한창이던 중3 어느 날,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도 우리는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학교에 남아 있었다.

작은 시골 중학교라 입시를 앞두고 있다 해도 자율학습 분위기는 그다지 진지하지 못했다.

당번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여러 번 경고하고 갔음에도 그 경고에 신경 쓰는 것은 나 밖에 없는 듯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수다보다 침묵을 택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다 뒤에 앉은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쳤다. '맞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도의 짧은 말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문을 확 여시며 고함을 치셨다.


"전부 운동장 집합!"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선생님들은 심심하면 단체 기합을 주셨는데 나는 기합 받는다는 소리만 들려도 오금이 저리고 힘이 다 빠졌다. 친구들아, 기합 받을 일 좀 안 하면 안 되겠니?


운동장에 아이들이 양팔 간격으로 모여 섰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공포가 나를 감쌌다. '엎드려뻗쳐'(정식 명칭이 뭘까?)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안 떠든 사람들은 일어나서 가도 좋다!"


순간 내 몸이 말릴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졌다.


'야, 너 떠들었잖아.' / '한마디 밖에 안 했어.' / '그것도 떠든 거지.' / '한마디 했다고 벌 받는 건 억울하지.' / '한마디라도 했으면 떠든 거야.' / '아니야' / '맞아'


내적 갈등은 그 이후에 맹렬히 일어났다. 그러든가 말든가 공포에 쪼그라든 마음은 내 몸을 일으켜 집으로 향하게 했다. 뒤통수가 묵직하고 내 몸이 사라질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날 기합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무겁고 오래 양심의 형벌을 받아야 했다.


졸업을 하고도 동창회에 나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다 그날을 기억할 것만 같았다. '너도 그때 떠들었잖아'라고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나자 그날 일은 지나치게 양심이 비대해졌던 사춘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을 뿐이지 아무도 만큼 그날을 기억하지 않을 거야 라는 대담함이 생겼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동창회에 나갔다. 최대한 초연하게, 최대한 어른인 척.


"야, 야. 너네 혹시 그때 기억하냐? 우리 자율학습 하다가 떠들어가지고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기합 줬잖아. 그때 안 떠든 애들은 집에 가라고 했는데 누가 갔더라?"


미치겠네.

이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9년을 같이 지낸 아이들이다. 9년 동안 그 많은 기억들 중에 생각나는 게 그것밖에 없니?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긴가?


어떻게 모임을 마치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최대한 그날이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내 모습만 또렷이 남을 뿐이다.


나는 이안이가 접어준 종이비행기로 생각지도 못하게 2등상을 받았던 그 아이가 나와 같은 양심의 무게에 눌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선명하게 이름이 기록된 상장을 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떼어내도 찌꺼기가 남는 껌자국처럼 양심의 자국을 달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후 이안이는 전학을 다시 와 버렸고 그 아이는 영원히 미안하다는 말도, 이럴 줄 몰랐다는 변명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래.. 그대로 그렇게 너도 잊어버려라.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비행기를 들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날려 보라고 했을 거고 네가 바로잡을 용기를 내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 버렸을 거야. 우리는 널 원망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아. 그러니 너도 제발 잊어버려라. 그리고 너를 용서해라. 이제는 나도 그럴게.


나는 그때보다 더 양심적인 사람은 아니다. 수없이 양심을 속이고 감추고 밀당을 계속하며 살았다. 하지만 양심은 작은 불씨 같아서 긴장하고 지켜볼 때는 힘이 약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얼마나 무서운 힘으로 나를 휘어 감아 버릴지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무서운 놈.. 나에게 도움이 될진 몰라도 내 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부터 불을 뿜은 흔하디 흔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