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리 좀 와보세요."
수학과외를 막 마친 이안이가 태블릿을 들고 소파에 나를 앉힌다. 아, 이 상황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걸 교사인 나에게 가르치겠다는... 귀찮기도 하고 좋기도 한 나는 '뭔데 또?' 하며 억지로 끌려온 듯 심드렁하게 앉는다.
"엄마, 0으로 어떤 숫자를 나눌 수 없죠?"
"응"
"왜 나눌 수 없어요?"(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오늘 과외 때 그걸 배웠나 보다.)
"몰라. 왜?"
아이는 태블릿의 메모장을 켜고 준비한 설명을 시작한다. 근데 그 설명 방식이...
"자, 1 나누기 1분의 1은 뭐예요?"
"1"
"그럼, 1 나누기 10분의 1은요?"
"10"
"1 나누기 100분의 1은요?"
슬슬 짜증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냥 니가 하고 싶은 말을 해. 한숨 한번 크게 쉬고,
"100"
"그럼 1000분의 1은요?"
아이는 자기가 내 과외선생이라도 된냥 아주 적극적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 나는 더 말리기 전에 반격을 준비한다.
"야, 내가 1분의 1부터 세 번이나 가르쳐줬잖아. 그럼 다음 문제는 니가 스스로 풀어야지. 왜 자꾸 나한테 가르쳐 달래? 자, 여기서 규칙을 딱딱 찾아봐. 1, 10, 100. 그 담에 뭐겠어?"
살 길을 찾아 공수를 전환한 나를 보고 이안이가 어이없는 듯 쳐다본다. 그래도 다행히 질문공세는 다소 멈췄다.
"엄마, 계속 이렇게 나가면 10의 n승 분의 1이고 그건 0으로 수렴하잖아요. 그럼 답은 10의 n승인데 이건 무한대로 가잖아요. 거기서 10의 n승에 -가 붙으면 어쩌고 저쩌고..."(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다. 뭐라 뭐라 했는데 기억은 안 나고 하여간 0으로 1을 나눌 수 없다는 소리다.)
"그래서 0은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 걔는 처음부터 내가 안될 줄 알았어. 인성이 별로더라고."
"맞죠? 학폭 터질 때 알아봤어요."
"그러니까. 인성이 그렇게 중요하다 이안아."
0의 성질을 이야기하다가 난데없이 0의 인성논란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처음에는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던 이안이가 이제는 제법 받아칠 줄 안다.
"우리 가족은 다 이상해."
자기도 0의 학폭문제를 거론했으면서 마지막에 선 긋고 발 빼는 것 좀 보소. 니가 제일 이상하거든?
이안이는 뭐든 새롭게 안 지식이 있으면 누구에게든 알려 주고 싶어 한다. 상대방이 관심이 있든 없든 그건 '알바노(내 알 바 아님, 이안이가 주로 쓰는 말)'다. 그래서 나는 이안이가 교사가 되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배워서 남 주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교사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안이는 음악, 미술, 체육 등 다방면에 얇고 폭넓게 관심 있고 잘한다.(아, 미술은 좋아만 한다.) 내가 선생이어서가 아니라 이 아이는 딱 초등교사 체질이다.
"이안아, 교대 어때?"
"몰라요."
"초등교사 돼서 체육도 실컷 하고 방학 때 여행도 다니고 해. 대신 절대로 승진은 하지 마."
"왜요?"
"몇 년 교장 하자고 긴 세월 거기에 매여 있지 말고 즐겁게 교사하다가 정년 되기 전에 퇴직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거지. 어때?"
"몰라요."
좀처럼 알겠다고 넘어오는 법이 없었다. 난 욕심이 아니라 진짜 이 아이의 적성을 보고 추천한 건데 말이지.
그러던 내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안아, 너는 교사가 안 되는 게 좋겠다. 절대로 학교에는 발을 들여놓지 마."
평소와 다른 태도에 아이가 의외라는 듯 쳐다본다.
"왜요?"
"학교는 있을만한 곳이 못돼."
"..."
내가 이렇게 생각이 변한 것은 서이초 사건이 있기 직전부터다. 온 국민이 알게 된 건 이 일 때문이지만 이미 교사들은 무너진 교권과 붕괴되어 가는 교실 속에서 살얼음을 걷는 듯한 위기감을 다 같이 느끼고 있었다. 인근의 학교에서도 1학년 아이의 거짓말로 인해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얼마간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무혐의로 결론 났어도 학교에 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간다 해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이와 남은 수업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 봐요. 나한테 함부로 하면 큰일 나요' 라며 아이는 교사를 대하지 않을까. 끔찍하다. 1학년이 교사를 힘으로 위협할 줄 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는 매년 아동학대예방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보고 듣는다. 이게 학대예방교육인지 겁주기 교육인지 그 본질을 잃어버린 아동학대예방교육. 실제로 아동학대는 집에서 더 일어나는 일이건만 우리는 잠재적 학대예정자가 되었고 아동학대예방 교육은 실태가 이러니 알아서 조심들 하라는 우려 섞인 경고로 끝난다. 예전에는 그래도 나만 잘하면, 학부모들과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도를 넘어서서 폭탄 피하기 게임 같은 것이 되었다. 걸리면 죽는 거다. 그까짓 거 목숨보다 중요하냐, 그냥 그만 두면 되지라고 하지만 직장을 관두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가 있는 법이다. 직장이 목숨 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감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목숨보다 중요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비슷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내 아들이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올려졌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의 잘못에도 법정에 설 수 있는 사회가 교직 사회다. 체육시간에 여학생 몸에 스쳤다고 성범죄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남선생님을 보았고 좀 지나긴 했지만 학부모에게 시달려 고등학생 딸 둘을 두고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의 장례식에도 다녀왔었다. 말 한마디 실수로 불명예스럽게 떠나는 선생님도 보았다. 공교롭게도 사건의 중심에 있던 아이들이 다음 해에 다 내 반이 되어 나는 시한폭탄을 안은 것처럼 1년을 조심하며 지냈었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신물이 나 조용한 시골에 박혀 남은 교사생활을 그래도 보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지내보고 싶었다. 그러나 동막골 같이 구석에 자리 잡은 시골학교에서도 날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부들부들 떨면서 지낸다. 모든 일에 불만족을 표하며 뭐든 걸려 봐라 하는 식으로 학교를 지켜보는 학부모들이 여기도 있다.
내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장은 이런 곳이 아니다. 아이들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 아들이 자신이 가진 이 재능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에 보내고 싶었다.
"이안아, 너는 가르치는 것 좋아하니까 그냥 학원 강사하는 게 어때? 일타까지는 아니어도 이타, 삼타만 되어도 학교보다는 낫지 않을까?"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학원이라고 해서 느슨 느슨하겠나, 여기도 또 다른 전쟁터요, 치열한 삶의 현장 아닌가. 하지만 최소한 학원 강사가 법정에 설 일은 잘 없으니까. 진짜 나쁜 맘먹고 나쁜 짓 하지 않고서는 변호사 만날 일이 많지 않으니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인정받을 가능성이 많으니까. 쓸데없는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나는 도치맘으로서 어깃장 한번 놔 본다.
"학교 너, 진짜 좋은 선생 하나 잃은 줄 알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