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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Aug 29. 2023

화산에 대처하는 경험자의 자세

화산이 터졌다.

멀리 도망가는 것이 최선책이지만 그럴 수 없다. 그저 담요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폭발이 가라앉을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 만이 살 길이다. 섣불리 화산을 끄려고 물을 붓거나 분화구를 막으려 했다가는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고맙게도 큰아들은 중 2병을 중 2에 앓아 주었다. 앓다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본편이 중 2인 것이지 중 1은 예고편, 중 3인 지금도 끝나지 않고 쿠키영상이 아직 남았다고 봐야 한다. 사춘기는 그야말로 활화산, 팔딱팔딱 거리는 생화산이었다.


맹렬하게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던 화산 폭발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불똥을 맞은 나와 둘째아들은 나름의 생존전략이 생겼다. 그게 바로 담요 뒤집어 쓰고 버티기다. 도망가도 안된다. 따라 다니면서 불을 뿜는다.     

사춘기는 하루에도 몇 개의 인격을 가진다. 아침에 보는 아들과 저녁에 보는 아들이 같은 아들이 아니다. 자기 안의 한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 세워지기를 반복하면서 우라늄 원자가 깨질 때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처럼 무서운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이 사춘기를 전문용어로 Gr(지r)이라고 부른다.      


비가 와서 제법 쌀쌀했던 지난 5월의 어느 날, 한동안 잠잠하던 화산이 다시 ‘크르릉’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시아권 스포츠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평온한 주말 오후, 우리 동네서 열리는 국제 대회니 구경이나 해보자며 온 가족이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럭저럭 잘 보고 있는데 맞은 편 관중석에 중국인 응원단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빨간 국기를 흔들며 대학 때 과별 체육대회 응원하듯이 구호 맞춰가며 응원하고 있었다. 국제대회긴 대횐가 보다 하며 경기 반 응원 반 구경하고 있는데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좀 지나자 싸움이라기 보다 큰아들이 일방적으로 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열을 받았는지 동생을 그냥 잡아 먹을 듯이, 혹은 징그러운 벌레 밟아 죽이듯이 짖누르고 있었다.


화가 난 이유는 단순했다. 작은아들이 중국 응원단 보고 “천안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천안문이 유튜브에서 중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도 큰아들 때문에 알았다. 언제는 자기도 낄낄대면서 해놓고는 동생이 그 표현 써서 중국인 비하발언 했다고 열폭한 것이다. 참 정의의 사도 나셨네. 갑자기 인류애가 넘치신다. 참으로 Gr현상이 아닐 수 없다.     


폭발을 감지하고 작은아들과 나는 담요를 뒤집어 썼는데 미처 대비를 못한 것은 남편이었다. Gr 반응을 감히 대화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불이 동생에서 아빠로 옮겨 붙었다. 아빠와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폭발이 일어날 땐 당연히 이성이나 예의 따위는 없다.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를 어딘가에 다 쏟아내기 전에는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는다. 억지로 끄려고 했다가는 분노가 농축되어 더 크게 터질 수도 있다.     


남편이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아들과 전쟁을 벌일 때마다 그는 현장에 없었다. 그가 한 일은 불 다 꺼지고 상처만 남은 아내와 아들을 보듬고 좋게 좋게 중재하는 일이었다. 귀로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경기장 아래서 코치만 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파이터로 링 위에 올라간 것이다.

     

아들은 아들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분노와 상처를 안은 채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왔다. 그리고 사흘 동안 냉전이 시작되었다.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이 몇 단계의 감정 변화를 겪듯 남편은 분노, 실망, 자책, 후회 등 정확한 순서는 기억나지 않는데 암튼 전쟁 후 마음 폭풍에 시달렸다.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뭐도 해주고 뭐도 해주고...’

‘친구 같은 아빠 흥, 다 필요 없네.’

‘우리가 애를 잘못 키운 것 아닐까?’

‘지금이라도 매를 들어야 하나?’

‘저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우리 아들 잘못 크는 거 아니야?’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남편은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나랑 아무리 싸워도 이틀 이상 간 적이 없다. 그런 남편이 사흘 동안 아들과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다. 중간에서 나와 작은아들만 이쪽 저쪽 눈치 보느라 바빴다. 웃긴 건 막상 처음 싸웠던 형과 동생은 아무 일 없는 듯 잘 지낸다는 것이다. 내가 살짝 살짝 아들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종용해도 아들은 별 반응을 안 했다. 이런 건 남편이 잘하는데 나는 누구 화해 시키는데는 참 젬병이다.      

일요일에 그런 일이 있고 수요일 저녁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금 간 유리 같은 집에서 버틸 수가 없어서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모래 씹는 것 같이 침울한 저녁 식탁에서 나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돌파해 보기로 했다.     

“이안 아빠, 이안이가 미안하대.”     

내 말에 가족 세 명이 다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는다. 큰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강하게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됐다.      

“맞지? 이안아.”

“...”

“설마 이안이가 그랬으려고.”     

남편은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되물었다. 하, 그냥 좀 넘어가지 뭘 또 캐물어? 어떡하지? 여전히 큰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빠 성격 닮은 큰애도 사흘 간의 냉전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놈의 자존심이 선뜻 숙이고 엎드리기 싫게 했을 것이다. 엄마라면 엄마가 먼저 손 내밀거나 아빠가 자연스럽게 다리를 만들어 주었을 텐데 역할이 바뀌니 아빠는 냉정하고 엄마는 너무 어설프다.

      

“이레야, 진짜 형이 미안하다고 했어?”     


예상치 못한 변수다. 관전하던 둘째에게 이 사건의 키가 맡겨졌다. 망했다. 둘째는 눈치가 있어도 없는 척 하는 애다. 게다가 그동안 당한게 있는데 형 편을 들어줄 리가 없다.

      

“네. 형아가 엄청 미안하다던데요!”     


종료.      


둘째의 지혜롭고 센스있고 훈훈하고 아름다운 거짓말로 길고 긴 아빠와 아들 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그 날 이후, 몇 달간 아니 지금까지 쭈욱 화산은 다시 폭발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빈도수는 뜸해지고 주기도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휴식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이안 엄마, 이안이 사춘기가 이제 지나간 것 같지?”

“쉿, 그런 말 하지 마. 가던 사춘기 다시 돌아와.”

“그런게 어딨어?”

“있어. 무조건 말조심 해.”      


남편은 그 난리를 참 빨리도 잊었다.      


사춘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와 아들이 단 둘이 바다 여행 다니고 자녀와 대화 많이 하고 뭐 그런다고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큰 불화나 방황 없이 지나간다고 사춘기를 잘 보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아이는 더 자라기 위해 먼저 자신의 제일 밑바닥까지 한번 다녀와야 한다. 가장 못되고 이기적이고 분노로 가득한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미련 없이 안녕 하고 돌아나와야 한다.     


나도 중학교때 끊임없이 터지는 폭탄을 안고 살았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안심하고 폭발할 수가 없었다. 밖에서 터지는 폭탄 때문에 내부의 폭발은 서러운 눈물과 함께 삼켜야 했다. 하지만 불발탄은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지금도 가끔 별일 아닌 곳에서 터지고 만다. 별일 아닌데 참아지지 않는 분노, 난 이것이 내 온순한 사춘기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딱 맞는 표현이다. 그래도 아들놈을 꽃으로 비유하기는 어색하고 굳이 표현하자면 거칠게 굴러가는 돌이라고나 할까.

단단하지 않은 돌은 부딪칠수록 금이 가지만 단단한 돌은 구르고 부딪칠수록 모난 것이 깎여 나간다. 아이가 단단하지 않아도 부모가 단단하게 붙들고 있어야 아이가 마음껏 굴러간다.      


나는 아들이 가장 안전한 가정에서 마음껏 터지길 바란다. 어차피 가족이란게 예쁘고 좋은 것만 공유할 수는 없다. 가장 못나고 지저분한 것을 공유하는 것도 가족이다. 큰 폭발이 있고 나면 아들도 우리도 서로 조심하게 된다. 그땐 심각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 나는 여러번 웃음이 났다. 남편이 겪었던 절망과 좌절감을 나도 여러번 느꼈지만 아무것도 상처로 남지 않았다. 가장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이지만 가장 회복력이 좋은 것도 가족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후배맘들에게 하면 다들 걱정을 하거나 자신의 아이는 좀 더 순하게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보인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아들의 행태를 보면 이놈이 인간 되겠나 걱정할 수 있지만 자칫 부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있다. 초딩때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봐도 인사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놈이 이제는 알아서 인사를 한다. 사회 문제로 나와 토론을 벌일 때도 있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인 욕도 한다. 아이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책가방도 슬쩍 나한테 넘기던 녀석이 내 손에 든 무거운 짐을 아무 말 없이 낚아채기도 한다. 코 닦아 주고 밥 먹여 주던 아이는 사라지고 어느새 나의 든든한 동반자가 떡 하니 나타난 것이다.     

 

사춘기. 예고도 없이 아이와 어른을 오가는 시기. 하는 짓은 어린앤데 머리는 어른인 척 하는 시기. 다 할 수 있다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혼돈의 시기.      

나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들의 자는 얼굴에, 집을 나서는 뒤통수에, 게임에 빠져 있는 바쁜 손가락 위에, 어느새 닳아 있는 운동화 위에, 훌렁 벗어 놓은 땀에 절은 티셔츠 위에 파이팅을 외친다. 잘 싸우고 진짜 네 모습을 잘 찾아서 와.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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