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ew 11:28
길을 가고 있었어.
나는 큰 짐을 보자기에 싸서 등에 메고 있었는데 사실 그 짐을 언제부터 들고 다녔는지는 기억을 못해. 그 안에 어떤 짐이 들었는지도 알지 못해. 왜냐하면 짐을 내려서 들여다본 적이 없거든. 사실은 겁이 나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 무거워서 짐을 내리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또 때로는 너무 익숙해서 내가 짐을 지고 있는지 깜빡 잊을 때도 있다니까.
친구를 만났어.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그의 짐은 너무 가벼워 보이는 거야. 우리는 악수를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어. 그는 친절했고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어. 나는 점점 그가 내 짐을 좀 덜어줄까 기대하게 되었지. 이 정도 가까워졌으니 이제 내 짐을 좀 들어달라고 해도 되겠지? 내가 슬며시 짐을 내미려는데 그가 먼저 내 짐 위에 자기 짐을 훅 얹었어. 그러고는 내 등의 짐이 더 가벼워 보이니 자신의 짐을 좀 덜어 달라는 거야. 네 짐이 더 무겁다고? 잠시 당황하는 사이 그는 휙 하고 돌아서 가고 있었어. 화가 나서 노려보았지. 그런데 뭐지? 저 사람 등에도 그가 내게 준 만큼의 짐이 더 실려 있는 거야!
슬픈 마음을 안고 나는 또 길을 갔어.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체념하기로 했어. 그러다 이번엔 누구보다 큰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을 봤어. 그의 짐이 얼마나 큰지 반은 등에 메고 반은 바닥에 늘어진 채로 힘겹게 걷고 있는 거야. 짐이 무거워서인지 그는 무척 화가 나 보였어. 그는 자기 곁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계속 화를 내며 짐을 던지고 있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짐을 던질수록 그의 짐도 계속 늘어났어. 그는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는 듯 점점 더 멀리 있는 사람에게까지 힘껏 자기 짐을 던졌어. 그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옆을 지나가야 했어. 웃으며 다가가면 화를 덜 내지 않을까? 나는 그의 앞에 비굴해지는 나를 보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지없이 나에게도 짐을 던졌어. 나에게 던질수록 자신의 짐도 늘어난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내가 만만했는지 그는 쉴 새 없이 짐을 던졌고 나는 너무 괴롭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그만하라고 말을 했다가 그가 더 기분 나빠할까 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도망쳤어.
너무 화가 났어.
그에게, 아니 세상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지. 사람들은 약한 자에게 더욱 잔인했어. 빈틈만 보이면 아무라도 와서 짐을 던졌어. 나는 당하기만 하는 내가 싫었어. 어떤 이는 이런 나를 착하다고 칭찬했어. 아니야, 나는 착한 게 아니라 마음이 약할 뿐인 거야. 나도 사실은 내 짐 모두 누구에게든 던져 버리고 싶어. 이기적으로 살고 싶다고. 나는 그럴 배짱도 이렇다 할 능력도 없는 내가 원망스러웠지. 이리저리 치이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어. 처음에는 앉아서 울기만 했지. 우는 것만으로도 짐이 조금 가벼워진 듯했어. 그러다 나는 다시 일어나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에게 용기를 주기로 했어.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내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거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독해지기로 했어.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만의 길을 가기로 다짐했지. 밖으로 나와 일부러 큰 도로로 들어섰어. 큰길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어. 내가 잠시 쉬는 동안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던 거야. 모두들 나보다 멋지고 훌륭해 보였어. 그들은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이 매우 빠르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어. 내가 잠시 주저앉은 사이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하고 변한 만큼 난 더 뒤처져버린 거야. 세상은 여전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어. 그들은 오직 앞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고 있었고 틈틈이 멈춰 선 자들에게 가차 없이 짐을 던지고 있었어. 나는 조급한 마음에 이제라도 열심히 그들을 뒤따라가고 싶었지만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어서 어떤 사람을 따라가야 할지 몰랐어. 큰길은 점점 더 사람들이 섞여서 숨이 막히기 시작했고 서로 어깨를 부딪치다 걸음이 엉클어지기 시작했어.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밀치면서 길을 내기도 했어. 주춤거리는 사람, 체구가 작은 사람들이 먼저 길 밖으로 밀려났어. 나는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어디로든 빨리 달려가야 이 길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 같았어.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결국 누군가와 부딪혀 그 자리에 넘어지고 말았어. 내가 넘어지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피해 가거나 그냥 밟고 지나가기도 해. 단지 잠깐 넘어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화를 내. 어떤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픈 충고를 쏟아 내. 그들이 던진 짐들이 나에게 넘어와 쌓이기 시작해. 큰 짐, 작은 짐, 딱딱한 짐, 가시같이 날카로운 짐... 넘어진 나를 향해 마구 던져. 아파요... 힘겨워요... 무거워요... 밤마다 신음소리를 내도 언제나 듣는 것은 나 자신뿐이야. 나는 부끄러움과 분노와 모멸감으로 점점 더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해. 언제나 그랬듯 부서진 하루를 가만히 끌어안고 잠이 들어. 때로는 나도 힘껏 짐을 던지고 싶었지만 내 짐이 더 늘어날까 봐 그럴 용기도 없어. 예전처럼 또다시 울어도 봤지. 힘들고 지친 밤이 계속되었어.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 나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 났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바보처럼 살다가 처량하게 죽을 수는 없어. 나도 한 번쯤은 나만 생각하며 독하게 살아봐야겠어.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당한 만큼만 해 주면 돼. 당한 만큼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어.
사람들이 많은 큰길을 벗어나 살짝 한적한 곳으로 갔어. 바위 뒤에 숨어 희생양을 고르기 시작했지. 딱 봐도 힘이 약하고 체격이 작아 나에게 대항 못 할 놈을 노렸지. 숨을 죽이고 조금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어. 눈치채고 도망가면 안 되니까 멀리서 볼 때 친절한 미소도 살짝 지어 보였어. 그가 다가오고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어. 마음은 먹었는데 짐을 잡은 팔이 덜덜 떨렸어. 눈을 감고 내게 짐을 던지고 멸시하며 비웃던 놈들을 기억했어. 그리고 휙 정확하게 목표물의 등에 내 짐을 내리꽂았어. 그 순간 내 등에도 짐이 하나 쿵 얹히는 걸 느꼈어. 짐 무게에 잠시 다리가 휘청거렸어. 내가 좀 센 걸 던졌나 봐. 괜찮아. 하다 보면 무뎌질 거야. 내 짐을 맞은 그는 역시 반항을 못 하고 놀라서 달아났어. 내가 첫 표적을 잘 골랐군. 나는 더 무거워진 내 짐을 잊을 만한 쾌감을 느꼈어.
나는 한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어.
처음보다는 마음먹기가 더 쉬웠어. 바로 그때 내게 처음 짐을 던진 한때 친구라던 놈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어. 짐이 없어 보였던 그놈은 어느새 내 짐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있었어.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도 집어던졌겠지. 나는 처음보다 더 긴장을 했어. 그놈이 반격을 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적당한 장소에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한 발 한 발 그가 가까이 오기 시작하자 나는 잠시 머뭇거렸어. 그와 나누었던 짧지만 좋았던 순간이 생각난 거야. 조금은 슬펐어. 하지만 내가 머뭇거리면 그가 또 먼저 짐을 날릴지 몰라. 나는 그가 내게 짐을 던졌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약해진 마음을 다잡았어. 그리고 있는 힘껏 내 짐을 그를 향해 던졌어. 바로 그 순간, 그가 나를 알아봤어. 뭐지? 저 표정은? 반가운? 그리운? 미안한? 내가 잘못 본 건가? 하는 순간 그가 윽 하며 한쪽 무릎을 굽혔어.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미 내 팔에서는 큰 짐 하나가 반동을 받아 그의 어깨 위로 쿵 하고 던져진 후였지. 그는 반격하지 않았어. 그저 고개를 숙이고 구부린 채 그대로 정지해 있었어. 우는 것 같기도 했어. 짐이 무거워서 우는지 나의 급습에 분해서 우는지 알 수는 없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어. 분해서 우는 게 아닌 건 맞아. 나를 노려보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눈물만 훔치고 있었던 거지. 마음이 아팠어. 새로 얹힌 내 짐보다 마음이 더 무겁다는 것을 처음 느꼈어. 모르긴 해도 내가 던진 것보다 더 큰 짐이 내 등에 얹힌 것 같아.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어. 괜찮냐고 물어볼까? 미안하다고 해볼까? 쭈뼛쭈뼛하고 있는데 천천히 그가 일어섰어. 여전히 고개는 바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들고 눈이 마주칠까 봐 나는 후다닥 일어나서 도망을 갔어. 도망을 가? 내가? 왜? 나는 받은 대로 돌려주었을 뿐인데? 사과는 그 녀석이 먼저 해야지. 내가 그때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알아? 마음이 아팠다고... 그 녀석도 지금 마음이 아파서 우는 걸까?
이건 억울한 일이다. 나는 아직도 돌려주어야 할 짐들이 많다. 내가 더 많은 짐으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받은 것은 꼭 돌려주어야 한다. 벌써 마음이 약해진 거야? 바보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까지 당하고 산 거잖아. 또 그렇게 살 거야? 후회와 연민은 여유로운 자들이나 하는 것이야. 삶이 고픈 자들에게 성찰이란 그저 빈 식탁 위 쓸모 없는 수저세트일 뿐이라고.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그 길로 다시 갔어.
나는 이제 당하기만 하던 예전의 내가 아니야.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강해져야 했고 타인의 아픔에 무뎌져야 했어. 이번에는 다시 모르는 사람을 노리기로 하자.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아. 나를 모르던 사람들이 나에게 툭툭 짐을 던져놓고 가던 때를 기억해. 그래,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그래도 막상 아무나 고르려니 뭔가 석연치가 않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어. 아무래도 맞을 만한 놈한테 던지면 내 짐이 좀 더 가벼운 걸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