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발 아래를 주목하는 이유
스스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아마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대여섯 살은 되었을 때의 기억일 것이다.
나에게도 가장 오래된 기억이 마치 현상된 필름처럼 머릿속에 몇 조각 있는데,
그중 번뜩 떠올릴 수 있는 장면 셋이 있다.
하나는 미역국을 입에 물고 넘기지 않아 엄마에게 안방으로 끌려가 매 맞은 기억이고,
하나는 놀이방(지금의 가정 어린이집)에서 창틀에 걸터앉아 놀다가 넘어지면서
밑에 있는 화초가 엉망이 되어 선생님께 꾸지람을 받은 기억이다.
이 두 가지 기억은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며,
정말 내가 스스로 기억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억은 길바닥에서 손가락을 부여잡고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동생의 모습인데,
달려가 쳐다보니 커다란 개미 한 마리가 억센 턱으로 동생의 손톱 부위를 깨물고 있었다.
내 나이 대여섯 살 때의 일이며,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만나게 된 사건이었다.
매를 맞고, 꾸지람을 들은 기억보다 내 심장이 더 쿵쾅거렸던 기억임에 틀림없다.
그 후로 나는 맨날 풀밭에 나돌아 다녔다.
동네 어른들은 나를 벌레박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학교 수업시간 이외의 시간에도 '공부'라는 걸 해야만 했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
나는 추운 계절을 제외하곤 거의 맨날 풀밭으로 등교하다시피 했다.
동네 애들을 모두 모아 풀밭에 가서 벌레들을 잡기 시작했는데,
모든 아이들이 내게 와서 벌레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그 벌레 이름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대충 지어서 답했다.
"응 그건 검은점박이메뚜기야"
해 질 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떠나지 않고 탐험을 이어간다.
거미가 허물을 벗는 장면이라든지, 사마귀가 알집을 만드는 장면을 하염없이 서서 지켜보았다.
때때로 풀밭에 벌러덩 누워 바람소리, 낮에 듣지 못한 풀벌레 소리를 들었다.
누가 알겠는가? 그곳은 나의 왕국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그 안엔 나만 알고 있는 왕국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느끼고 발견한 그것이 다름 아닌
소우주(microcosmos) 임을 깨닫게 되었다.
머리 위 우주가 아니라 발 밑에 우주가 있었다!
나라는 우주와 발 밑 우주의 만남.
그 경이로움을, 아니 경이로움의 부스러기 정도를(감히 내가 경이로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맛보았던 것이 나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나는 나보다 더 큰 존재가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임을 직감한다.
그것은 경이로움, 신비이다.
이제 나는 목회자가 되었지만 사실 나의 경이로움, 신비의 대상은
저 위 뿐 아니라 내 발 아래 존재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 발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여전히 발 아래를 주목하는 이유,
퍼머컬처를 비롯한 관련된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이유이다.
이쯤 되니 어쩌면 내 진짜 꿈은 농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