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것
주름에서부터 머리살이 보이는 것으로
나이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나이를 물어오면 생각해서 말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맥알바를 하게 되면서 나이를 의식하게 됐다. 크루룸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전신거울로 나를 보고 얼굴에서 나이 듦이 보였다.
현미식물식을 하고 있었고, 안 하던 일을 하기 시작해 일 량이 늘어났고,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지 않은 날이 생기면서 살이 빠졌다.
뱃살이 쭈굴쭈굴해진 게 보였다. 허벅지 안쪽 살도 손으로 쓸면 얇은 살가죽이 밀리는 게 보였다. 살이 빠지고 살가죽이 탄력 없이 늘어진걸 그때 처음 보았다. 이마에서 주름과 탄력 잃은 배와 허벅지 피부를 보고 나서 같이 일하는 이십 대 초반의 남자 크루의 얼굴에서 윤이 나는 게 보였다. 피부의 탱탱함이 느껴졌다. 내게서 빠져나간 젊음이 보였다.
그때부터였다 주름이 의식되기 시작한 게. 나이가 의식되기 시작한 게.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고 나이라는 단어와 나이 먹었다는 표현을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도 쓰지 않았다.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처럼 금기어 같았다. 말하면 의식하게 되고 남들도 날 나이 먹게 볼까 봐, 나도 모르게 선수진을 친 거였다.
이십 대 때 잘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굶는 다이어트, 아주 조금 먹는 다이어트를 했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에 거뭇케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있었다.
스무 살 이후 자주 다이어트를 했다. 그때마다 머리카락은 많이 빠졌고 새로 나는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잔머리로 많이 났다. 미장원에 가서 매직을 하거나 머리를 자르려고 거울 앞에 있으면 내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다. 머리 할 때 물 뿌리고 두상에 딱 붙인 머리를 한 모습이 못나보여서. 머리 여기저기 온통 빠지고서 자란 짧은 머리카락이 연한 빔송이처럼 많이 자라 있었다.
마르게 빠졌다가 원래의 체중보다 더 찌는 큰 요요만도 세, 네 차례.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겪은 요요의 수를 세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싶지 않아 대략으로 적고 넘긴다. 그것 말고도 4주 +-1,2일 주기의 생리에 따라 식욕이 널뛰기를 했다. 호르몬 변화에 따라 식욕상승과 식욕하락을 매번 겪었다. 생리 전 며칠간은 임신 막달보다 더 먹었다. 정말 호르몬에 노예다 싶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만큼.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난 의지가 너무 약하다고 나 자신을 한없이 못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건 의지를 넘어선 거였다. 호르몬의 무차별 공격 같은 것이었다. 식욕을 늘린 호르몬의 공격에 먹을 걸 계속 먹었다. 많이 먹은 후에는 살찔 걱정에 우울했다.
먹고 싶은 데 참아야 하는 자제력을 매일 발휘해야 하니 언제나 불안정했다. 먹고 싶은데 참아야 하는 건 힘든 것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 자제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될 만큼 먹고 싶은 유혹이 없는 사람 그래서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 근장 담당자 선생님 같은 분이 제일 부러운 사람이다.
일상이 살걱정이다. 일상과 동의어다. 그만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 식사 시간, 식사 사이 시간 할 것 없이 뭘 먹을지, 칼로리는 얼마인지, 살찌지 않으려면 어떤 식이요법을 지향해야 하는지, 관련 유튜브와 책을 보았다.
기본적으로 소식을 하다 알게 된 현미식물식을 해보고, 고지방저탄수화물식이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많지 않아 몇 가지 안 되는 단출한 구성으로 하면서 신체에서 이상한 반응을 느끼기도 했다. 고지방저탄수화물 식사를 지키면서도 많이 먹어서겠지만 살이 쪘다. 살찌지 않기 위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 허무했다.
아는 분과 음식점에서 흰밥에 메인 요리가 있고 밑반찬이 많은 식사를 했다. 간과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자제하던 게 해제 됐다. 집에서도 일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름 방학과 함께 밥과 김치, 간이 되고 설탕이 첨가된 반찬을 먹는 일반식사로 돌아섰다. 편하게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는 식사를 하고 있다.
살은 쪘다. 허리살이 늘어나 배가 볼록하고 두툼해졌다. 허리를 조이는 바지와 치마는 불편해 올여름에는 허리가 편안한 원피스를 자주 입었다. 그러면서 살에 둔감하고 편해졌다. 살이 찌는지 모르며 편하게 식사를 이어 갈 수 있었던 거 같다.
개학을 앞둔 지금. 방학 후 살이 찐 모습을 보이는 게 자신 없긴 하다. 그러면서도 이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어 큰 문제 될 건 없다. 배고프면 먹고 또 맛있게 먹으면서 16시간의 간헐적 단식을 지키고 있다. 살이 찐 나를 편안한 나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살문제로만 생각하고 바라보던 협소한 시각을 바꾸려고 한다. 건강하면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식사시간을 즐기는 안정된 식습관으로 변화를 가질 생각이다.
먹는 종류와 양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갖지 않으려 한다. 이제껏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허용과 제한의 틀이 확고했던 거 같다. 지나치게 구분되게 생각해 왔다는 걸 먹는 것에 제한을 푼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 생각의 틀을 깨려고 한다. 필요 이상 제한된 식이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더불어 먹는 행위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깨닫고 있다. 과도기이다. 먹는 행위를 즐기며 알맞은 살과의 접합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살에 관해서는 여기까지.
그다음으로 눈에 뜨이는 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중 장년층의 여성분들이다. 오늘 아침 작은 아이 유치원 등원길에서도 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학교와 주택가 사이의 조용한 길에서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시던 오, 육십 대의 여성분의 머리카락이 휑할 만큼 듬성듬성 있었다. 그래서 둥근 두상 전체가 훤히 다 보였다. 보는 게 실례임에도 어쩌지 못했다.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스치듯 보았다. 그분은 이제 그런 자기를 보는 것에도 덤덤해지신 거 같아 보였다. 아무런 반응 없이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셨다. 빠진 머리카락에 익숙해진 분이셨다. 그대로의 자기가 자연스러운 분이셨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한 움큼은 예사로 빠지던 머리카락.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충분한 식사를 하고 잘 먹으면서 유지하던 시기에도 머리를 감을 때면 물 빠지는 구멍이 막힐 만큼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집 거실, 방, 부엌 바닥 어디에나 머리카락이 항상 많이 떨어져 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훔치면 계속 계속 머리카락이 한 개 두 개씩 빠졌다. 너무 많이 빠져 요즘에는 여자들도 대머리가 많다는데. 걱정해 왔다. 나중에 더 빠지면 가발을 써야 할까도 고민해 봤다. 미장원에서 머리 할 때 원장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머리를 묶으면 머리숱이 많이 작다. 그래서 걱정이 멈추지 않는다. 올해부터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머리숱이 적어 두상의 살색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여성분들이 내 눈에 잘 들어온다. 미래의 나에 대한 걱정을 갖고 멍한 눈빛으로 그들을 본다.
오늘 아침에 그 모습이 내 눈에 띄는 것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글감이라 생각하고 출근하고 제목부터 적어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오후 일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쉬는 시간. 기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