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아이스크림 케이크

by 썸머

자기 방에서 아이이름을 부른다.
- 응 대답하고 부엌 이케아 작업대 위에 있던 아이가 아빠방으로 간다. 아빠방문을 열고
- 왜?라고 묻는다.
- 아이스크림 사 와. 어(아이스크림 이름을 생각한다). 더위사냥.
- 알았어.

듣고 있던 나. 아이와 같이 있는 토요일이면 공부에서 마음이 밀려 나온다. 썰물처럼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난 상태. 밀물이 들어찬 상태가 공부에 의욕적인 상태라면 썰물은 공부에 대한 마음이 빠진 상태다.
그 상태의 난 아이스크림 사 오라는 아빠 말에 생일 케이크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라고 한 남편 말이 생각났고 바람 쐬러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줄까?
- 응
- 어떤 걸로 살까?
- 아몬드 봉봉 많은 걸로. 작은 거.

아이와 나가려고 일어섰다. 옷을 외출복으로 갈아 입어야 하는데. 일어나 걷자마자 아이가 입어만 보고 바닥에 벗어둔 옷이 보였다. 옷을 개어 넣어놓으려고 아이 옷장으로 사용 중인 철제 수납장을 열었다. 옷이 계절 구별 없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봄가을 옷과 겨울 옷이 섞여 있고, 윗도리끼리 바지끼리 구분해 한 줄씩 정리해진 게 흐트러져있다. 아빠와 아이가 옷 찾아 입히고 입으며 꺼내 입고 마구 넣고 닿아 엉망이다.
정리 안된 채 마구 넣어놓은 옷을 꺼내 개었다. 두꺼운 겨울 윗도리끼리 쌓아 한 줄로 쌓아 올리고, 봄티끼리 쌓아 다른 칸에 넣고, 바지끼리 쌓아 올리고. 그렇게 맨 아래칸을 겨울 옷칸으로 만들고 가운데 칸을 봄옷과 겨울 옷이 섞인 칸으로 했다. 젤 위칸은 여름옷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철제 수납장에 있던 겨울 내복을 꺼내어 마른 빨래를 걷어 바로 넣어 놓고 지금 입는 옷들을 넣어 놓는 거실에 있는 아이 수납장에 가져다 놓았다. 그 앞에도 뒤집어 진옷, 튀어나온 서랍장, 꺼내 바닥에 던져진 옷들이 늘어져 있었다. 바지칸에, 윗도리칸에, 내복칸에 옷들을 넣고 얇은 봄티와 바지들은 꺼내 철제 수납장의 봄칸에 넣었다.
잠시 바람 쐴 생각에 (이 생각이 먼저였고) 생일 인 아빠를 위할 겸(이 생각이 두 번째였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살 생각이었는데 나가기 전에 옷정리하며 시간을 썼다. 생각 못한 시간이었다.
초록색 롱 패딩을 입고 카드가 든 핸드폰을 챙겼다. 나갈 때면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비닐 쓰레기들이 있는지를 보고 가져나간다. 종이 박스가 있어 그 안에 재활용 쓰레기를 담고 음식물 쓰레기가 든 비닐봉지와 비닐쓰레기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까지 들고나갈 수 있었다.


잠시 바람 쐬러 나가고 싶은 마음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한 거였다. 그 말을 하고 나가기 전에 아이 옷정리를 하고 쓰레기들을 내다 버렸다. 내가 한 말은 그 일을 하기도 전에 없던 다른 일들을 끌여들였다. 거기엔 시간이 들어갔다.


아이와 31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에 옆 주공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놀이터에 있는 그네를 본 아이가

- 그네 한 번 타고 싶어. 엄마가 밀어줘. 여긴 굴리기가 (어디보다) 쉽지 않아.라고 했다.
- 그래
요즘의 나는 아이의 말에 긍정의 대답을 해주는 수용적인 엄마다.
말대로 정말 그네를 한번 타고 가자고 했다. 아이가 어린이가 됐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계속 타고 싶어 하던 아이가 이제 한번 타고 가자고 말하는 아이가 됐다. 매일 보는 아이가 커가는 순간을 이렇게 느낀다.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배스킨라빈스 31 가게가 있다. 겨울바람에 바닥에 나뭇잎이 날리는 서부사막의 삭막한 풍경 같은 모습이 매장 안 유리를 통해 보였다. 추운 날이다. 바람도 그렇고 눈에 보이는 흐릿한 허공이 그랬다.
키오스키에서 주문을 시작했다. '작은 케이크'를 생각하면서. 케이크 폴더 선택. 아몬드 봉봉이 들어 있는 걸 눈으로 스캔하며 작은 케이크를 찾아 화면을 아래로 내려갔다. 높은 가격부터 차례대로 낮은 가격 순으로 목록이 보였다. 아몬드 봉봉이 있는 건 잘 보이지 않았고 가격은 또렷이 보여 26000원 제일 낮은 가격에 쿠앤크 베이스의 아이스크림을 택했다. 쿠앤크는 집에서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 아빠 식성을 닮은 큰아이가 자주 사 먹는 맛이다. 맛있어할 맛에,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쓸 가격으로 그게 적당해 보였다. 초와 가져가는데 걸리는 시간, 스푼개수, 포장지를 선택하고 결재를 마쳤다.
매장 안에 진열된 케이크들을 구경했다. 그때 아이가 이거 사자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먹고 싶어서 고른 케이크가 괜찮아 보이고 아이뜻을 수용해 주고 싶었다. 재주문여부를 한 명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아이스크림 진열대가 있는 포스기에서 해주겠다고 했다. 먼저 주문한 걸 취소하고 새로 구입한 걸 결재해 주었다.

집에 오는 짧은 거리의 길. 탁 터진 파란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시원한 겨울바람 같은 온도가 있지는 않다. 뿌연 게 없이 맑게 개인 투명창처럼 맑은 물처럼 맑은 시원함이었다.

집에 들어서서 아이가 아빠를 불렀고 나는 아빠 생일 축하하자고 큰아이를 불렀다. 네 식구가 거실에 모였다. 초를 꽂고 싶은 작은 아이가 딱딱하게 굳은 조각 아이스크림에 초를 꽂았다. 내가 아빠에게 물었다.

- 몇 개 꽂을까?
- 두 개만 꽂아. 딱딱하잖아. 그거면 돼.라고 아빠가 말했다.

각자 먹고 싶은 맛을 하나씩 골랐다. 아빠는 아몬드 봉봉, 작은 아이는 레인보우셔벗, 큰아이는 못 보는 사이에 가져가 버려 모르겠다. 아빠는 체리쥬빌레를 하나 더 가져갔다. 작은 아이도 두 개를 먹겠다고 했다. 아빠가 녹으니까 하나먹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꺼내 먹으라고 했다.

아이가 원한 맛은 노란색 케이크였다. 나는 아빠케이크와 아이케이크를 같이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이 없어 내 건 선택 안 한 거였는데 아빠 꺼 아이 거 먹으면서 얼마만큼 먹었는지 양은 알 수 없으면서 더 많이 먹은 듯했다. 이럴 거면 한 조각을 골라서 먹는 게 좋겠다 싶어 냉동실이 넣어둔 것 중에서 한 조각을 골라왔다. 팡팡 터지는 슈팅스타였다. 한 조각 다 먹는 것엔 죄책감이 있다. 먹다 말고 넣어 두었다.

한 조각을 다 먹은 작은 아이가 하나를 더 골라먹었다. 아까 말한 노란색의 케이크이었다.
큰아이도 두 개를 먹겠다고 했었다. 남은 두 개 중 큰아이가 뭘 먹고 싶어 할지 몰라 큰아이를 불렀다. 어떤 걸 먹을 건지를 물었다. 노란색이라고 했다. 작은아이가 골라 먹고 있는 맛. 더블 치즈 맛이라고 했다.

그게 더블 치즈였구나. 동생이 먼저 꺼내 먹고 있는 걸 보고 남아 있는 것에 선 먹고 싶은 게 없었서였는지 자기가 먹고 싶은걸 동생이 먼저 먹고 있어 못 먹게 되어 화가 나서인지 안 먹겠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남은 두 개 중에서 하나는 민트 같았고 하나는 연한 보라색이었다. 그중에서 민트 맛으로 골랐다. 민트맛이 맞았다. 처음엔 화한 치약막이 조금 세게 터지고 뒤이어 초코맛이 났고 나중에는 강한 초코맛에 덮여 민트맛이 사라졌다.
예전에 처음 민트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 치약맛이라며 작은아이가 요즘 맛없는 거 먹을 때면 손으로 엄지를 아래로 내려 움직이며 자주 쓰는 표현인 '우웩 이야 우웩'이었다. 근데 오늘 먹은 민트초코는 충분히 먹을 만한 맛이었다. 한 조각은 다 먹기가 죄책감이 들어 절반쯤 먹다 그만 먹고 싶어 신랑에게 숟가락과 함께 주었다.

이거


- 민트가 처음에만 강하고 그다음엔 초코맛이 많이 나고 민트맛이 약해져. 충분히 먹을만해. 괜찮아 라고 했다.


나 신랑이 나처럼 거부감 없이 잘 먹길 바라서였는데 쓰고 보니 감정을 실어 부연설명을 길게 하며 내 느낌을 전달하려고 애쓴 거 같다. 그런 습관을 갖고 있는 거 같다.


내가 느낀 걸 다른 사람도 같이 안 느껴도 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느낌이 있다. 나는 내가 느낀 걸로 만족하면 된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에 맞춰 맛있게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꼭 나와 같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그렇게 열성적으로 알려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렇게 하는 애씀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길 바라서 인데. 그런 필요 없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게 좋다. 사람은 다르니까. 입맛은 다 다르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먹어봐' 가볍게 말하면 된다. 그다음 느끼는 건 그 사람 몫으로 두자. 좋으면 그 사람이 좋은 거고 싫으면 그 사람이 싫은 거다. 나와 다를 수 있다. 난 내가 느낀 맛이, 감정이 좋았다면 좋은 거고 그것으로 됐다. 그게 중요하다.


잠깐 바람 쐬러 나가고 싶었던 건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와 두 조각 넘게 먹은 거 같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던 생크림의 지방과 설탕 덩어리인 영양가와 먼 고열량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다. 조금은 슬프다. 칼로리 높고 살찔 것 같은 걸 먹고 난 후에는 대부분 그렇다. 항상에서 대부분으로의 변화가 생겼다. 이거 발전이다. 나만 아는. ㅎㅎ


시험 전 주말 아이와 함께 있으면 공부가 안된다는 내 생각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토요일이다. 그 덕분에 이렇게 폭풍 글쓰기를 하니 이 또한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에 맞는 그런 경우다.


오늘 첫눈을 보았고 글을 계속 쓰고 있다. 안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두 조각이나 먹었지만 그럴 수 있다고 넘겨진다. 마음이 완전 엉망인 날은 아니다. 시험 전에 이 정도의 반발감과 회피면 양호한 정도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침 5:0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