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

결국 맞이할 끝

by Shine


치열하게 이직을 준비했던 2025년이 지나갔다. 이직은 하지 못했다. 2026년에도 월-금 9-6 생활이 반복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라고 묻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의 내포가 광활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큰 단어보다는 즐거움, 기쁨, 보람, 환희, 희열, 재미, 짜릿함, 따뜻함, 유쾌함, 포근함, 편안함 같은 구체적인 단어로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내 경험과 감정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 감정의 결을 더 섬세하게 나누어 간직하고 싶다. 나의 행복은 이런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감정이 조화롭게 섞여 있는 덩어리에 가깝다. 솜사탕에 넣는 색소에 따라 달라지는 솜사탕의 색깔처럼 어떤 감정이 바탕이 되었는지에 따라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가진 솜사탕 같은 행복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작고 초라해진 순간에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야’라고 조용히 읊조린다. 인생과 행복에 대해 너무 시니컬해졌나 싶을 때에는 박혜진 작가의 「이제 그것을 보았어」의 인트로를 읽는다.


“아무려나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은 끝에 대한 선입견만 키운다. 애당초 인생이 행복과 불행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행복한 결말과 슬픈 결말 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 행복과 슬픔 사이 그 어딘가에 멈춰 선 수많은 엔딩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현재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에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애당초 인생의 모든 일은 행복과 불행이라는 두 가지 객관식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일에도 다양한 면이 있기에 행복과 불행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단될 수 없다. 실패나 불행이라고 여겼던 일도 돌이켜보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의 마지막 문장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문장으로 끝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좋음과 나쁨의 이분법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 배우고, 실천하고, 경험하고, 공유하고, 이해하고, 향유하는 대상이며 가지각색의 의미를 가진 순간들의 연속이다.


개인적으로 꼽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뒷표지에 있는 문장이다. 인트로에서 인생이 좋음과 나쁨으로 단순하게 정의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면 뒷표지에서는 마지막과 끝에 대해서 말한다.


“마지막 문장은 끝까지 읽은 사람만 그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광활한 세계다. 작품을 정직하게 완주한 사람만이 마지막 한 마디의 무게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그 점이 인생을 닮았다.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마지막이라는 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끝은 ‘와버린’게 아니다. 그들은 끝을 맞이한다.”


“출발할 땐 상상하지 못했던 이 도착지가 마음에 든다.”


2026년에는 회피하지 않고 살기로 결심했다. 어떤 문제든 흐린 눈으로 덮어두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뚜벅뚜벅 걷다가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정직하게 가다 보면 끝을 맞이하겠지. 올해의 끝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만 어떤 길을 가며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는 모른다. 나의 선택과 운과 우연이 날줄과 씨줄처럼 엮여서 만들어낼 그림이 궁금해진다. 어떤 엔딩이 되었든 그 엔딩은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 좋음과 나쁨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나만의 언어로 정의되는 엔딩일 것이다. 2026년의 마지막 날에 서 있는 자리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근사한 곳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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