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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름 May 30. 2023

n년차 직장인의 광인일기 (3)


인사팀 정과장은 웃으면서 말한다.

"커피 마셨어요? 커피 마시려는데, 카페 가는 건 어때요?"

 

‘역시 이 사람…뭔가 알고 있다.’

그는 절대로 본질을 바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정과장을 따라 1층 카페로 갔다. 정과장은 내가 그렇게 괜찮다고 했는데도 커피를 기어코 하나 더 가져왔다. 정과장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를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뗐다.

 

“이 회사의 조직문화는 잘못 흘러가고 있습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판독할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밋밋한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경력직 신규 입사자는 그들에게 그저 오락거리일 뿐입니다.”

 

정과장의 표정은 온화하다.

“김대리님. 그건 그렇고 요즘 어떠세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질문했다.

“저희 회사 온 지 이제 3년차신데, 일이나 사람이나 뭐…큰 문제없으시죠?”

 

‘아니 방금 조직의 문제를 이렇게 친절히 나열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나에 대해서 물어 본다고?’

 

나는 순간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다시한번 친절히 설명해보기로 한다.

 

“정과장님. 해녀도 바다에서 익사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평생을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가 익사하는 경우는요. 숨이 차 물 위로 올라가려 하는 순간, 아주 크고 좋은 전복이나 성게 따위가 보이는 경우입니다. 저것만 따고 올라가자 하며 숨을 참는 그 십초 남짓한 시간이 뇌의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어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정과장의 눈은 미동도 없다. 그저 후루룩 커피만 마실 뿐이다.

 

“회사도 그런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안되는 줄 알지만,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하면서 눈 앞에 있는 마지막 타이밍을 놓쳐 버리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나의 행동을 수정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죽음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정과장은 손목 시계를 힐끔 쳐다본다.

 

그 순간 테이블 옆으로 영업팀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쳐다보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기분 나쁜 눈빛이다. 그 일당들 중 하나겠지.


“저를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인사팀과 면담하는 사람 처음 봐요?”


인사팀 정과장이 재빠르게 내 말을 끊었다.


“김대리님. 커피 드시고 흥분을 좀 가라 앉히시고요. 김대리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별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안심하세요.”


정과장에게 눈을 돌리는 순간 영업팀 사람들은 내 말을 무시하고 쌩하니 가버렸다.

 

내가 다시 말을 하려 하자 정과장은 노골적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가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나는 결국 다시 혼자가 되었다.


뚜껑이 열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쳐다보았다.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 간직했던 사직서를 꺼냈다. 사직서를 찢고 또 찢어 아직 뜨거운 아메리카노 속으로 그대로 넣었다. 사직서는 커피 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제 숨이 찬다고 나는.”

 





루쉰 <광인일기>

중국의 소설가 루쉰이 1918년 5월 <신청년>을 통해 발표한 소설이다.

피해 망상 환자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소설로, 주인공은 주위 모든 사람이 인육을 하여, 결국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 생각한다. 루쉰은 이를 통해 중국의 낡은 제도, 가족제도와 유교사상의 위선,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다.

 

루쉰의 광인일기에 착안,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직장 생활 속 ‘광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직장에서는 혹시나 나를 뒤에서 욕하진 않을까 두려워하고 점점 주눅들어가는, 스스로 고립 속으로 들어가는 ‘광인’과 없는 말을 지어내고 여러가지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그리고 그들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광인’이 공존한다. 모든 직장인들이 매일 감내하는 직장 생활 속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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