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과 성숙 사이, 33살 나의 이야기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나만의 솔직한 자기소개서
"저는 경험주의자입니다"
항상 누군가가 자기소개를 시키면 했던 말이다. 경험주의란 경험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철학적 용어인데, 나는 이 단어를 내 입맛에 맞춘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많은 경험을 하기를 즐기는 사람” 이러한 맥락의 뜻으로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왜 자신을 경험주의자라 칭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줏대 없이 이것 저것 충동적으로 결정해 실행했던 일이 많은데, 그런 경험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넣고 싶은, 공통분모를 찾고 싶었던 나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준 단어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것도 확실하다. 가끔 나는 지금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SNS가 발달한 현재,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큰 노력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솔직히 반갑지만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쓸데 없는 정보가 머릿속에 너무 많이 들어와 오히려 나만의 주관이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나는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 다니는 것 보다 지나가다 관심이 가는, 한번 더 눈길이 가는 가게에 들어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인증샷을 남기는 것 보다 내 눈에 많은 풍경과 추억을 담는 것을 더 사랑한다. 아직도 나는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보았던 석양을 사진을 통해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을 통해 회상한다. 당연히 사진도 많이 찍지만 거의 찾아 보지 않는다. 가끔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변경하는데 쓰일 뿐. 사진찍기는 그저 여행을 왔으니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했던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다. 오늘도 난 맛집에서 음식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다. "어차피 찾아보지도 않을텐데"
또 가끔 가전제품 매장에 방문해 QLED니 뭐니 하는 고사양의 최신 TV를 구경할 때가 있다. 그런 TV는 보통 해외의 유명한 관광지나 화려한 장소를 띄우며 밝고 선명한 모니터의 장점을 내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런 화면을 볼 때 마다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내 눈으로 보는 것 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완벽한 구성을 추구하는 걸 <하이퍼리얼리즘>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하이퍼리얼리즘은 내 눈에서 보는 것보다 더한 현실감을 추구하는 사회적 낯설음이다. 묘한 이질감은 거기서 왔을 터다. 내 눈에서 보는 것보다 더 현실같은, 그래서 비현실에 가까운 결과물.
이렇듯 내가 나를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이런 저런 경험을 좋아하지만 아날로그가 좋은, 아직도 사회에 반항할 거리가 많은 꿈 많은 30대’이다.
30대가 되면 사회에 순응하고 성숙해져 하고 싶은 게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저 꿈 많던 20대의 패기였다고 생각하고 말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20대 때보다 지금 더 하고싶은 게 많아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이 세계에서 내가 하고 싶은,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져 하루 8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내가 설계한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 비록 그 길이 탄탄하지 않은 비포장길이라 하더라도.
이상 나의 자기소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