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에서 기획팀 김차장과 이과장이 속닥속닥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정수기에서 텀블러에 물을 받는 척하며 몰래 얘기를 엿들었다.
"그 팀에서 아주 골칫거린가봐. 완전 또라이라는데? 전 회사에서도 유명했대. 이번엔 팀장이 가만 있지 않을 거라는..."
김차장이 나를 보고 하던 말을 멈춘다. 왜 말을 하다 말지?
나를 보고 흠칫 놀란 거 같았는데...
골칫거리라 했지 방금.
전 회사라고 했지 방금.
저건 내 얘기가 분명하다.
일전에 동기에게서 들었다.
그리고 우리 팀 10년차 과장한테도 들었다.
이 회사에는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실제로 정말 말도 안되는 불륜 소문이 얼마 전에 있었다.
그런 소문에 관둔 이도 여럿이다.
내가 알기로만 여럿이니 실제로는 더욱 많을 거라 생각한다.
물을 뜬 다음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 자리로 왔다.
탕비실에서 마주친 김차장과 박과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둘 다 기획팀 소속으로 유부남들이며, 기획 상무의 직속 라인이었다. 상무 라인이란 이른바 이 회사에서 출세가 보장된 라인을 뜻했다.
김차장 그 사람은 눈만 웃고 입은 웃질 않는다. 아무리 마스크를 썼다 해도 입꼬리만 삐쭉 내려가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박과장은 특히 더 기분 나쁜 표정이다. 머리숱이 많이 없고 눈은 매섭다. 마스크 아래에는 몽고반점 같은 큰 점이 볼에 있다. 그의 싸늘한 눈빛이 떠오르며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나를 모함해 관두게 하려는 게 분명하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모함이 시작된 것은 2월부터였다.
지금이 4월이니 두 달 전부터다.
시작으로는 우리 팀장의 고함이 있었다.
“네가 봤을 때 자간 장평이 맞아 이게?”
“네 자간…장평… 맞습니다.”
“맞기는 뭐가 맞아!! 네 눈에는 이게 똑같아 보이니? 다시 고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