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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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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주 Nov 17. 2022

Wonderwall


직장을 그만두고 친한 동생이랑 작당 모의하듯 낸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고, 받은 상금으로 우리는 인도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둘이 왕복 하기엔 부족한 금액이기도 했지만 인도는 돌아올 날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기에 좋은 곳일 것 같아서였다. 인도 여행을 앞두고 마침 친한 일본 친구가 한국에 와서 “나 곧 인도 갈 거야”라고 했더니, “인도에 가면 인생관이 달라진다던데”라고 했다. ‘인생관’이라는 단어를 일본어로 말해서 여러 번 되물은 후에 알아들었기에 기억이 난다. 과연 인크레더블 인디아(당시 인도 관광청 슬로건) 였던가, 한 달 반 여의 인도 여행 후 나는 평생 취미로 했던 음악을 업으로 삼아보겠노라 결심하게 되었다.


 어찌어찌 들어가게 된 서울재즈아카데미의 신입생 환영회 날, 벌써 십 년 전이라 다른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또렷이 기억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학로의 어느 지하에 있는 주점에서 막걸리 종류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의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운 마음에 흐뭇하게 듣고 있었는데 대각선 너머에 앉아있던 어떤 친구가 이러는 거다. “이거 드럼 들어가는 타이밍이 되게 특이하지 않아?” 나는 눈이 번뜩 뜨였다. 대학 시절부터 그때까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매번, 정확히, ‘드럼 들어가는 타이밍 되게 특이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누구와도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 것도 아닌 것이지만 세상은 넓고 어딘가엔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만 정작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것에 나는 의외로 익숙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처음 하게 되었다. 

실제로 <Wonderwall>의 도입부는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로 경쾌하게 시작하는데 보컬이 들어오고 몇 마디 후, 뭔가 똑 떨어지지 않는 애매한 타이밍에 스윽 들어오는데 그게 아주 매력적이다. 



어떤 생각들은 문득 피어났다가 흔적 없이 소멸하기도 한다. 어쩌다 공기 중으로 나온 것들에 공감하는 친구를 만난다면 그건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경우 없고 무례하고 이상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지만 내 말을 알아들어주는 이들과 주고받은 씨앗들이 이곳저곳을 떠돌다 마침내 발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너무 재미있지 않을까. 그게 이 답 없어 보이는 날들의 유일한 희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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