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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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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주 Jun 18. 2021

퇴사 10년차의 여름

인생의 여름, 지금을 기록하기

한 사람의 일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봄은 몇 살까지 일까. 가을은 몇 살부터 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연두색 여린 잎으로 태어나 쨍한 여름을 거치며 성장하고, 두꺼워진 나뭇가지에 울긋불긋 멋스러움이 열리는 시기를 지나면 자연스레 떨어진 낙엽들을 초연히 바라보는 겨울나무가 되겠지. 나도 그렇게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아가겠지.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니 계절을 나눈다 해도 각자 기준 나이가 다르겠지만 나의 봄은 스물다섯 살 까지였던 것 같다. 땅을 뚫고 나온 줄기는 아직 이리저리 흔들리긴 했지만 꽃도 피우고 좋은 날들이었다. 스물여섯부터 시작된 여름은 현재 진행형으로 뜨거운 태양 아래 열정을 보글보글 끓이며 진한 초록이 되어가는 중이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가을은 쉰부터 라고 생각해본다. 주변에 오십 대 분들을 보면 일단 너무 젊고, 어떤 분야든 멋진 모습으로 인정받고 계신 분들 중에 오십 대가 많은 듯하다. 겨울은, 음... 진짜 인생은 칠십부터?라고 누가 그러던데. 거기까진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


스물여섯에 졸업과 취업을 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2년 신나게 다니고 퇴사를 했다. 그때 동기들 대부분은 그 회사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거나 같은 분야의 다른 기업에서, 한 마디로 모두 잘 나가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곳이 유일한 직장생활 경험이 되었는데 다니는 동안 너무 재밌게 다녀서 다들 왜 그만두려 하냐며 만류했었다. 퇴사 면담을 네댓 번 했는데 처음엔 파트장님이 얘 이러다 말겠지 했던 것 같고 실장님은 너무 바쁘셔서 형식적이었지만, 모두들 한 번 흔들릴 때 되었으니 잡아주자 하는 모양새였다.


이직이냐, 대학원 가냐, 모든 질문에 '아니요'라며 딱히 계획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니까 얼마나 철부지처럼 보였을까. 당시 나의 속마음은 이랬다. 가만히 있다 보면 이 회사를 쭉 다닐 것 같아 조금 두려웠다. 지금 봐도 어처구니없는 퇴사 사유지만 진심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여기 계속 있다 보면 움직이기 힘들 것 같다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그룹장님과 파트장님이 함께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특히 기억난다. "네가 그 사원증 걸고 다니면 여기 가리봉동에선 잘 나가는 거지만 그거 떼면 아무것도 아니다" 대략 이런 말씀이었는데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한편으론 "음? 난 아닌데요? 사원증 없어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인정받아야 더 멋진 거 아닌가?" 가진 건 패기뿐이던 때라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나중에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했다.


초여름이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지는 건 찰나 같기 때문일까.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그 시절은 막 시작한 청춘의 초여름 같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지옥은 아니었지만 야생의 정글에서 곧 열 번째 여름을 맞는다. 여름 안의 여름들이랄까. 퇴사 후 첫여름은 인도에서 배낭여행을 했고 두 번째 여름은 제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을 했다. 백화점에서 오십만 원짜리 코트를 일시불로 긁어보기도 했던 지난날이여 안녕, 통장에 삼십만 원이 없어서 깨진 휴대폰을 들고 수리센터 앞에서 콧물을 질질 짜보기도 하였다. 좋아하는 일에 뒤 안 보고 뛰어들어 불태워봤지만 거긴 더 정글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던 음악을 평생 처음 돈 내고 공부하면서 틈틈이 프리랜서로 일했는데 일하고 급여를 못 받기도 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양아치도 많았다. 뭐 하나 녹록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더 이상 그 일이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배들의 말을 비껴가고 싶었는데, 싫어지고 말고를 떠나 직업이라면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속적인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미친 듯이 계속하면 언젠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돈도 벌게 될 줄 알았다.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살아있는 나 자신을 보며 (천재 뮤지션들은 서른 전에 요절한 경우가 많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어쩌면 조금 더 했으면 그런 날이 왔을 수도 있으려나. 음악은 할머니 될 때까지 평생 하겠노라, 입버릇처럼 하던 말인데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큰 성공을 거두진 못 해도 길게 즐기고 싶어 졌다.


최근엔 멕시코에서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다 코로나로 잠시(!) 귀국한 거였는데 아직 못 가고 있고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요약해 놓으니 내가 썼지만 이쯤 되면 일이 안 풀리는 거 아닌가 소리 나오게 생겼는데 놀랍게도(?)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이 없다. 또 지난날을 하루하루 살펴보면 꽤나 행복했다. 코로나 앞에 강제 실직, 강제 귀국 당해보고 뼈아프게 깨달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세상 물정에 밝지 않은 인간이었다. 바닥을 쳐야 그 바닥을 차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더니 지금이 차고 올라가는 때인가 보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생의 흐름에 몸을 맡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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