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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주 Jul 11. 2023

담백해도 괜찮아

자극적이지 않아도 좋은 것들


강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혀는 담백한 음식을 밍밍하다고 느끼기 쉽다. 디톡스 클렌징이나 단식을 하고 난 후 음식을 먹으면 그냥 양배추를 먹어도 설탕을 뿌렸나 싶게 미각이 예민해져 맛이 잘 느껴지기도 한다. 익숙함에 길들여진 감각은 각자의 기준이 되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내 취향이 아니게 된다.


예전에 케이팝스타라는 경연 프로그램에 나온 어떤 참가자를 두고 심사위원석에 있던 세 명의 프로듀서 중 두 명은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한다. 계속 잔잔하면 사람들은 지루해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의 프로듀서는 '그렇게 내내 지루하고 잔잔한 음악 하는데 콘서트만 하면 매진되는 아티스트도 있어요. 루시드폴이라고요.'라고 한마디 얹었는데 그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부터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면서 화려한 편곡과 악기 구성으로 아주 제대로 시원하게 빵빵 터뜨리는 클라이맥스가 있는 음악만이 좋은 음악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조금 불편했다. 고음을 잘 올려야 가창력이 좋다는 소리가 나오고 그런 절정에 다다를 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모든 분야에서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잔잔한 음악엔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맵고 짜고 빨갛고 자극적인 음식이 여전히 주류 외식 메뉴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음악도 하고 음식도 하지만 자극적인 것보다 담백한 게 좋다. 주류가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다 주류하면 주류가 더 이상 주류가 아닌 거 아닌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야 균형이 맞지. 틀린 건 없고 다른 것만 있을 뿐. 그리고 나도 운전하다 졸릴 때면 린킨파크 앨범을 크게 틀어놓고 속 시원함을 즐긴다. (고등학생 때 롹음악에 빠져있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기분이 처질 때면 집에서 남편이랑 익스트림이나 미스터빅 틀어놓고 헤드뱅잉도 가끔 한다. 나는 더워서 단발로 커트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남편 머리가 더 길어서 헤드뱅잉이 아주 잘 된다.


오늘도 나는 쿠킹클래스를 진행하며 초당옥수수 수프를 끓이고 천도복숭아를 사워도우 위에 올려 타르틴을 만들었다. 예전에 라면 좋아하고 바깥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싱겁다는 말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어서 음식 낼 때마다 '싱거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늘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은 클래스에 오시는 분들이 시식 후 보여주시는 진심의 미간을 보며 문득 담백한 음식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이렇게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속으로 되뇌기로 했다. 담백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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