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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Jun 26. 2019

턱수염과 콧수염은 다르다

장애라는 이름

글을 쓰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산을 오르는 사람, 보드를 타는 사람, 요가를 하는 사람. 이들이 모이면 어떤 대화를 나눌까.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추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푹 빠진 재즈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중 산을 달리는 20대 후반의 남성에게 “허구한 날 산을 왜 그렇게 달려요?”라고 묻는다면 “별 이유 없어요. 재밌잖아요.”라고 웃어넘긴다. 산을 오르는 20대 후반 남성이 장애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단하다. 당신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너와 나의 의사소통은 ‘너와 나는 다르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글 읽기라는 취미를 너에게 공유하고 싶고, 너의 취미인 달리기에 대해 궁금하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예외다. 그들의 장애를 알아채면, 시각장애인 A 씨를 만났을 때와 B 씨를 만났을 때 별 다르게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장애’에 과도하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제주대학교 장애학생 지원센터에서 근로 장학생을 한 지 1 년 남짓이 되었다. 이곳은 재학 중인 장애 학생이 도움이 필요하면 손 내밀어 잡아주는 곳이다. 근로학생들은 장애 학생들과 수업을 듣거나, 점심 식사를 돕거나, 20분 걸리는 먼 거리를 함께 걸어 주기도 한다.


장애학생들과 교정을 다니다 보면 이 친구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흐릿한 무언가 끼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민지(가명)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민지는 ‘시각 장애인’으로 유형화된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민지는 장애인이고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 도와주어야 하는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가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녀를 떠올릴 때 단순히 ‘아, 그 전산통계학과 민지?’가 아닌 ‘아, 그 시각장애 학생?’이라고. 장애는 민지의 이름이 되고 전부가 되어버린다. 민지는 시각장애인 민지'가 아닌 단순히 '민지'가 될 수는 없을까.



내면의 우주를 찾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인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인격체를 먼저 보지 않는다. 장애에 집중한다. 마음속으로 자꾸만 그들의 능력을 시험한다. 그가 산을 타는 것에, 요가를 능숙하게 하는 것에,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에 놀란다.


나와 너는 다르 듯, 장애인도 모두 다른 인격체를 갖고 있다. 장애가 같다고 같은 사람이 아니다. 장애는 장애인의 일부일 뿐, 그들의 성격, 특성은 모두 다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시각 장애인,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시각 장애인, 집에서 점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시각 장애인 등. 그들은 각자 완벽히 다른 환경에 살고 있으며 매일 먹는 음식도 다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내면에 펼쳐 있는 우주와 별을 찾아보길 바란다. 그 사람이 K-POP을 좋아하는지, 얼그레이 티를 즐겨 마시는지, 매운 것을 즐겨 먹는지에 관해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햇살 따가운 여름이 좋은지, 눈 쌓인 겨울이 좋은지 시시콜콜한 취향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들의 세상은 다채로워질 것이고, 당신 역시 새로운 우주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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