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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Sep 20. 2018

이륙과 착륙 사이에서

87번의 비행은 나에게 이별이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는 날, 아빠는 줄곧 나를 지하철역까지 태워 주셨다. 짐이 많아 버스를 타기에는 무리가 있는 탓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4번 출구 앞에 캐리어를 내렸다. 캐리어 손잡이를 당기는 나에게 만원 짜리 지폐 두어 개를 건네며 말한다. "든든하게 먹고 다녀라."


그렇게 나는 자주 혼자가 되었다.



이륙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곳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의 긁힌 자극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 오래된 원근법의 교훈은 전부터 잘 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있을 만큼 이것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다. – 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


67번. 2년간 제주행과 김포행을 반복한 횟수다. 김포공항에서 가족들의 아쉬움과, 제주공항에서 남자 친구의 슬픔을 함께 했다. 공항 보안 검색대에 들어갈 때가 되면 그들을 등졌다. 짧으면 3일, 대개는 일주일, 길면 두 달. 정상적인 연애는 물론,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불가능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있음을 갈망하고, 좋은 친구를 곁에 두지 못함이 아쉬웠다.




떠나는 비행기에 앉아 생각한다. 조금만 더 진심을 전할 걸. 보고 싶었다는 할머니의 말에 어색한 웃음 대신 나도 그리웠다고 말할 걸. 주말에 산에 가자는 부모님의 말에 흔쾌히 다녀올 걸. 공항에 데려다 준 남자 친구에게 잘 지내라는 인사보다 무슨 말이라도 더 할 걸. 언제나 후회로 가득한 하늘이다.



착륙


50분의 비행 후, 이륙할 때와 상반된 창밖의 풍경을 보며 착륙한다. 게이트 밖에 서울 혹은 제주가 있다. 8년의 밤을 보낸 침대가 있는 서울에, 마음을 달래 주던 이호태우 해변이 있는 제주에 도착했다. 가족에게, 남자 친구에게 다시 최선을 다 할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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