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삼십오만원. 초등학교 5-6학년 영어캠프 보조교사 10일 급여다. 세상에 이런 알바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혼이 탈탈 털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다. 투명한 안경알을 잃어버린 아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아이, 욕하며 싸우는 아이, 소외받는 아이, 고가의 패딩을 잃어버린 아이. 거짓말이 아니라 밤마다 천장을 보며 도망치고 싶었다. 아이들은 98명, 보조교사는 8명, 원어민 선생님 8명이 영어 캠프를 위해 모였다.
보조교사의 업무는 전반적인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것이다. 시간표 구성, 숙제 검사, 팝송 콘테스트 준비, 식당 인솔, 취침 등. 정해진 업무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변수는 내가 맡은 열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아이들이 방문 앞으로 모인다. 4층 담당 교사가 외친다. "양치도구! 교재! 잠바! 다 챙겼지?" 컨디션이 좋은 아이들은 "네~"하고 답하고 몇몇 아이들은 눈을 비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로 이동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양치도구를 꺼내 이를 닦는데 성혁이가 다가온다. 키가 유난히 작고, 파란 안경을 꼈으며, 사시가 있는 아이였다. "다미쌤. 저 양말이 없어요." 강의실에서 숙소는 다녀오기 힘든 거리였다. 나는 그건 네 탓이라며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성혁이가 알겠다며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성혁이가 사무실로 다시 찾아왔다. "쌤. 저 발에 땀이 너무 찼어요. 따가워요." 신발에 땀이 차서 살이 쓸리나 보다. 나는 신발을 좀 벗고 있으라 했다. 성혁이가 냄새가 날 거라며 페브리즈를 달란다. 나는 사무실에 있는 페브리즈를 갖다 줬다. 그 순간 성혁이가 신발을 벗었다. 훅하고 들어오는 찌린내에 눈물이 줄줄 났다. 숨을 다시 들이쉬는 순간 헛구역질이 났다. 열두 살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어서 뒤를 돌았다. "이제 반으로 돌아가 성혁아~" 성혁이는 칙, 칙하며 페브리즈를 한참 뿌리더니 신발을 신고 돌아갔다.
오후 네시쯤 되었을까. 성혁이가 뒤뚱뒤뚱 걸으며 사무실로 찾아왔다. "발이 너무 아파요." 페브리즈를 뿌려 물기가 가득차 살이 더 쓸렸던 것이다. 나는 일단 강의실 옆에 있는 개인방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성혁이에게 신발을 벗고 쉬고 있어라. 양말을 사다 주겠다고 했다. 성혁이가 신발을 벗었다. "꺄아아아악~!!!!! 쌤 빨리 피해요!!!!" 성혁이가 돌고래 고주파 비명을 지르며 신발을 벗었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눈물이 줄줄줄줄 났다. 헛구역질도 났다. 반 애들이 놀라서 나왔다. "선생님 성혁이 왜 저래요??????" 유리문 안에 있는 성혁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세차게 흔들었다. “아~ 성혁이가 벌레를 봐서 그래. 들어가 있어~” 반 아이들이 강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성혁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편의점으로 뛰어가 양말을 사 왔다. 성혁이에게 잽싸게 양말을 건네고 문을 다시 닫았다. 문 밖에도 냄새가 났다. 성혁이는 유리문 안에서 기도하는 손으로 "선생님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했다. "그냥 반 애들한테 양말 안 신었다고 하지." 하니까 성혁이가 "쌤. 그건 안돼요. 제발요."하고 부탁했다. 이유 없이 냄새나는 것보다 낫지 않나 싶었지만 비밀은 지켜줬다. 그 후로 나는 성혁이를 볼 때마다 웃었다.
캠프 마지막 날 원어민 선생님인 스튜어트가 성혁이에게 수료장을 주며 “I will miss you." 하더니 "집에 가서 신발은 빨아야겠다.”라고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 날 스튜어트의 말처럼 난 그 애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