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멀어진 축제, 독점중계가 남긴 '승자의 저주'

콘텐츠 파편화 시대, 국가적 이벤트의 전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by 김지영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다메초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설상 종목에서의 뜻밖의 쾌거와 쇼트트랙 빙상 위에서 펼쳐진 설전까지. 선수들은 4년간 갈고닦은 기량을 쏟아부었고, 국민들은 그 결과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결과와 달리 올림픽 관련 중계만큼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올림픽이 끝난 지금,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적막감이 감돈다. 2018년 평창과 2022년 베이징의 열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올림픽이 유독 '조용히' 지나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이러한 ‘조용한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몇 년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JTBC의 단독 중계가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올림픽 시즌이 다가오면 지상파 3사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 라디오에선 응원가와 홍보 멘트가 흘러나오고, 광고 사이사이마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담긴 영상이 배치된다. 과거 국민 예능 '무한도전'이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특집을 제작했던 것처럼, 지상파의 화력을 동원한 예능 편성은 올림픽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만들어내곤 했다.


출처: 유튜브 '올끌'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길거리에서도, 익숙한 채널에서도 올림픽의 기운을 느끼기 어려웠다.


'단독'이라는 왕관은 화려해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대중과의 접점이 좁아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숨어 있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2월 6일, 올림픽의 개막식날이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개막식은 경기만큼이나 큰 볼거리다. 밀라노의 세련된 감각과 오페라의 도시다운 예술적 공연, 그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까지 여러 볼거리를 예상하며 JTBC 유튜브 채널을 찾았지만, 정작 풀영상이나 주요 하이라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찾은 건 단편적인 뉴스 보도 영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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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JTBC'


답답한 마음에 이번 올림픽의 인터넷 중계 플랫폼이던 네이버 '치지직'을 뒤져보았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경기 리뷰를 하는 스트리머들의 방송만 있을 뿐, 정식 중계 화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방송사가 개막식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중계권 활용의 한계였는지 의문이 남는다. 시청자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보고 싶은 영상을 찾을 수 없는 올림픽이라니. 접근성이 차단된 축제는 더 이상 모두의 축제라 불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출처: 네이버 치지직

Ch.1 지상파채널의 올림픽 중계, 당연한게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올림픽 중계를 지상파 채널에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리모컨만 누르면 KBS, MBC, SBS 중 입맛에 맞는 해설을 골라 들을 수 있었지만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다메초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그 당연한 풍경은 유물이 되었다. 국민들은 이제 국가적 이벤트의 중계권이 더 이상 공공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IOC의 비즈니스: '축제'를 팔아 '재정'을 사다

우리가 안방에서 편하게 경기를 즐기기까지의 여정은 국가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중계권을 사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IOC는 단순한 스포츠 주관사를 넘어,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미디어 권리(방송, 디지털, 모바일 등)를 독점하고 판매하는 거대 권리자다. 중계권 수입은 IOC 전체 재정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며 올림픽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발판이 된다.


문제는 올림픽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IOC 역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14년 이후 중계권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개최 도시들은 재정 부담을 호소했으며, 젊은 세대는 TV 중계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 모순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올림픽 어젠다 2020'이다. 효율적인 권리 관리와 플랫폼 중심의 확장을 꾀하는 전략적 전환이었다.


출처: IOC


거대 자본의 습격, 유럽이 먼저 겪은 '블랙아웃'

IOC의 전략 수정은 곧바로 시장에 투영되었다. 과거 IOC는 영국의 BBC, 독일의 ARD·ZDF 같은 국가별 공영방송사들과 계약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는 '공공성' 측면에서는 훌륭했지만, 수익 극대화나 디지털 통합 관리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이었다.


결국 변화의 전조는 2020 도쿄올림픽과 2024 파리올림픽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IOC는 유럽 지역 중계권을 공영방송 연합체가 아닌,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미디어 그룹 '디스커버리(Discovery)'에 넘어갔다. 결과는 냉혹했다. 수십 년간 올림픽의 주인 노릇을 했던 영국의 BBC조차 디스커버리가 허가한 일부 경기만을 송출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거대 미디어 자본이 공공성을 삼켜버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출처: cordbusters


한국의 '코리아 풀(Korea Pool)'이 무너진 자리

그리고 이 서늘한 현실은 2026년 대한민국에도 다가왔다. 시작은 2019년이었다. JTBC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의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으로 확보하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이후 지상파 3사(KBS, MBC, SBS)와 중계권 재판매를 위한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지만, 이해관계의 격차를 줄이지 못한 채 난항을 거듭했다.


사실 지상파 3사가 뭉쳐 중계권을 공동 구매하던 '코리아 풀(Korea Pool)'은 법적 강제성이 없는 신뢰 기반의 약속이었다. 그렇기에 이미 균열이 생겼던 과거가 있다.


1. 1996년 AFC 아시안컵(KBS)

2.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MBC)

3. 1999년 나이지리아 세계청소년 축구(SBS)

4. 2001년 메이저리그(MBC)

5. 2010년 동계올림픽, 2010년 월드컵, 2012년 하계 올림픽(SBS)


그럼에도 이 연대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감당하기 어려운 중계권 비용이다. 치솟는 중계권료는 단일 방송사가 짊어지기에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둘째, '보편적 시청권'의 보장이다.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콘텐츠가 아니라 온 국민이 향유해야 할 ‘국가적 대행사’라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 논리가 공공의 가치를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시골 마을의 낡은 TV 앞까지 도달해야 할 올림픽의 함성은 곳곳에서 끊기고 말았다. 지상파 중계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 우리는 축제를 즐길 권리마저 '구독'해야 하는 냉정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출처: MBC, KBS 유튜브 채널


Ch.2 JTBC, 승자의 저주인가


JTBC는 지상파가 아닌 유료 방송 기반의 종합편성채널이다. 인터넷이나 케이블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수천억 원(추정치 5,000억~7,000억 원)을 들여 단독 중계권을 따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영광이 낳은 자신감, 7,000억 원의 베팅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이 있던 시점, 종편과 케이블 방송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뉴스부터 예능과 드라마 모든 부분에서 승승장구했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의 '2017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2017년 JTBC 매출은 3111억원으로 전년도인 2016년 매출(1994억원)보다 56% 증가했다.


이에 JTBC는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올림픽이라는 패에 '올인'했다. 이에 지상파 3사는 '보편적 시청권 훼손'과 '국부 유출'을 근거로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JTBC의 입장은 단호했다. 유료 방송 보급률이 96%를 넘은 시점에서 지상파 여부는 더 이상 시청권 침해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플랫폼 파워가 2026년에도, 2030년에도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JTBC가 마주한 현실은 그들의 장밋빛 전망과는 사뭇 달랐다. 미디어 환경은 급변했고, TV 본방 사수보다는 유튜브와 OTT로 시청층이 완전히 쪼개졌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재정적 부담'이다. 최근 JTBC는 연간 수백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다. 지상파들 역시 광고 시장 침체로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보니, JTBC가 중계권을 되팔고 싶어도 지상파들이 선뜻 구매할 여력이 없다. 결국 '비싼 값에 사왔지만, 나눠 팔 곳도 없고 혼자 생중계를 다 감당하기엔 벅찬'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중계권 낙찰은 성공, 국민 신뢰는 유찰된 아쉬운 중계


만약 JTBC가 초반의 잡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완벽한 중계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면 여론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운영은 '단독'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위태로웠다.


출처: 엑스포츠뉴스, MBC 유튜브


컬링 한일전 중계 도중 일장기가 보여지던 방송사고와 쇼트트랙 편성으로 최가온 선수의 금메달 확보의 결정적인 순간을 방송이 화면이 아닌 자막으로만 보여지던 이슈가 발생했다. JTBC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쇼트트랙 편성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오히려 채널 하나로 모든 종목을 소화할 수 없다는 독점 체제의 한계를 자인한 꼴이 되었다.


JTBC 앞에는 여전히 6번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월드컵 및 동·하계 올림픽)가 남아있다. 이번 올림픽 중계에서 보여준 미숙한 운영과 편성의 한계는 단독 중계의 리스크를 여실히 드러냈다. 수천억 원의 중계권료 본전을 뽑기 위해서는 광고 수익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미 올림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다음 월드컵과 하계 올림픽에서도 지금과 같은 '조용한 중계'와 '수익성 악화'가 반복된다면, JTBC에게 중계권은 영광의 상징이 아닌 떼어내고 싶은 거대한 부채가 될 가능성이 높다.




Ch.3 앞으로의 올림픽, 그리고 방송의 고민


이번 올림픽이 유독 조용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중계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은 TV 앞에 앉아 중계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숏츠와 릴스 등 쏟아지는 K-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올림픽조차도 '바이럴'되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JTBC의 독점으로 그 흔한 양산형 쇼츠나 릴스조차 활발히 생산되지 않았다. 식당이나 공공장소 TV에서 흔히 흐르던 지상파 중계가 사라지니 일상의 접점은 차단되었고, 유튜브는 알고리즘을 타지 않아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진 셈이다. 우리가 올림픽을 찾아봤던 건 대단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어쩌면 눈에 보였기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공유된 경험'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물론 방송사들의 속사정도 복잡하다. JTBC의 재판매 제안가는 지상파가 감당하기엔 너무 비쌌고,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계권을 사야 하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지상파의 존재 이유는 다시 제고되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보편적 시청권을 사수하는 것은 방송사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로 중계권이 독점되고 협상이 결렬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미리 개입해 중재하지 않았다는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흐르며 케이블과 종편의 영향력 또한 커졌고, 유튜브와 OTT는 그 세력을 압도적으로 확장했다. 시청자들은 이제 국가 대항전이라는 거대 서사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더 이상 과거처럼 전국민이 동시에 하나의 이벤트에 열광하지 않는 시대. 이번 올림픽은 방송의 공공성이 자본에 밀려날 때, 한 나라의 축제가 얼마나 쉽고 고요하게 지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씁쓸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2026년 밀라노의 정적은 미디어 산업의 '자본 논리'가 '공공적 가치'를 압도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올림픽은 더 이상 당연하게 주어지는 공공재가 아니며, 누군가의 치밀한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선택적으로 소비되는 유료 콘텐츠로 변모하고 있다. JTBC의 단독 중계 시도와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운영의 한계는, 단일 플랫폼이 국가적 이벤트의 거대 서사를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을 뿐이다.


이제는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수치상의 가구 도달률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전 국민이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하고 축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시급하다. 방송사는 수익성 악화라는 현실 속에서 공적 책무의 범위를 재설정해야 하고, 정부는 시장의 독점적 횡포나 중계권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중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26년의 조용한 종막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6번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 역시 이번처럼 파편화된 관심 속에서 각자의 스크린으로만 흩어져 볼 것인가. 자본의 논리가 공공성을 완전히 대체해버린 미디어 환경에서, 올림픽이라는 '국민적 유대감'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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