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연습_1

1장. 세상의 중심에서 쪽팔림을 외치다.

by 김지유

한 달 전,
지은은 구직 사이트에 등록된 학원 리스트를 뒤적거렸다.



교육 회사를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패기 있게 말아먹은 루저여도.
우선, 내 인생 몫은 해야 하니까.


'학원강사' 탭을 눌러 상위권에 올라온 학원들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중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곳이, 이 학원이었다.


안내 받은 대치동 주소로 면접을 보러 갔던 날,
엘리베이터 앞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복도에는 교재를 쌓은 카트가 바퀴 소리를 내며 오갔고,
교무실에서는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이런 곳에 다니게 된다면.'
면접 긴장 때문인지, 예상하지 못한 회사의 스케일 때문이었는지,
지은은 가슴이 쿵 하고 뛰는 걸 느꼈다.
'나도... 뭔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날 1차, 2차 면접을 보고, 합격 전화를 받았다.
3차, 4차 면접까지의 과정에 한 달이라는 교육 기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 달 동안 지은은 입사를 지원한 또래 여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험, 시강, 피드백, 회사 시스템 교육...


회사에서 던져준 과제와 시강을 준비하느라, 그녀의 밤을 새우는 날이 주 5일 중 3일이었다.


10명에서 시작했던 서바이벌은,
4주 차가 되자 중간에 울면서 나간 지원자들과,
'그만 나오셔도 될 것 같아요. 통보를 받은 지원자들을 지우고 나니,
지은을 포함해 고작 4명이 남았다.


그렇게 한 달을 모두 통과하고,


마지막 4차, CEO 면접.
남은 네 명 중, 지은이 첫 번째로 4차 면접을 가게 되었다.


듣기로는 압박 면접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기다리고 기다려서,
밤 11시 30분,
피로가 눈꺼풀을 짓누르던 시간에 면접이 시작됐다.

면접장 안.


처음 보는 면접자들 사이에서, 지은을 혼자만 '한국 토박이' 였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4차 면접자들은 미국 교포이거나 유학생 출신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영어로 막힘 없이 대답했다.


모두가 원어민 수준의 영어로 발음도, 어휘도, 완벽했다.


'내가 지금... 쨉이 안 되네.'
지은은 순간적으로 판단했고,
멘탈은 박살이 났다.


지은은 면접관들의 질문에 점점 정신이 아득해졌다.


대표가 영어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입안에서 혀가 굳는 기분을 느꼈다.


몇 번이고 힘 있는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점점 작아지는 문장들은 계속 희미하게 끊겼다.


***


새벽 두 시 반.
면접이 끝나고 대치동 거리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지은은 학원 입구에 잠시 멈춰 섰다.


구두 속 양말이 젖는 감각이 느껴졌다.

폰 화면을 켜려다 말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망쳤어. 아니, 망했어."

지은은 작게 중얼거렸다.


비에 젖은 목소리였고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은은 허탈했다.

'저 엄청난 사람들 사이에서, 고작 나 따위가 대치동 학원에 입사 좀 해보겠다고
한 달 동안 밤샘 공부하고, 수업 자료 만들고, 그렇게 발버둥 쳤던 거야?
진짜 쪽팔리네... 너무 쪽팔린다.'


서울은 천천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젖어가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인사과 과장님이 면접자들에게 택시비를 줄 때 했던 말이 지은의 마음을 더 속상하게 했다.

"최종면접에서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된 선생님들은 내일 아침 7시에 문자 발송됩니다.
문자 받으신 분들은 9시 출근 안 하셔도 됩니다.
교육 1달 급여는 15일 통장으로 입금될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지은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봉투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3만 원이 들어 있었다.

'우리 집 가는 거리만큼, 정확하게 계산해서 줬네.'


지은은 봉투를 가방에 넣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집에 가야지.
엄마가 기다린다고 했어.'


택시는 부른 지 3분도 안 되어 강남 번화가에서 빠르게 달려왔다.
택시를 타자마자, 지은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이제 면접 끝났어."


"응 딸, 기다리고 있어. 택시 탔어?"


"응... 지금 출발했어... 근데 엄마 나... 떨어진 것 같아... 잘 못했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은의 코끝은 아리고, 눈앞은 뿌예졌다.



************************************



우리 엄마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내가 보이지 않아도, 다 안다.


"딸,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는 어디 갔대?
회사가 거기 하나밖에 없어? 다른 데 가면 되지!
그리고 거긴 뭐 하는 덴데, 면접을 새벽 두 시 반까지 봐?!"


"엄마... 나 여기 진짜 들어가고 싶었는데...
다들 너무 잘났더라... 내가 부족했어... 미안해, 엄마."


나의 눈에선 닭똥보다도 굵은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운전대를 잡은 기사님이 백미러로 지은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엄마 여하튼 나 지금 집 잘 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15분 후에 도착할 거야."


"응, 비와. 엄마가 큰 사거리 신호등에서 기다릴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멈출 수 없는 울음을 참으려 애쓰다,
결국 택시 안에서 훌쩍였다.


눈물은 그렇다 치고, 콧물 닦을 휴지가 없어서 민망하던 찰나.


기사 아저씨가 오른손을 뻗어 크리넥스 한 통을 건넸다.


"아이고 아가씨, 몇 살이여? 딱 봐도 우리 애 또래 같은데."


"흑흑... 저요? 저 88년생이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랑 동갑이네.

근데 왜 울어, 뭐가 잘 안 됐어요?"


"네 아저씨, 오늘 최종 면접을 봤는데요...
저 빼고 다들 너무 잘난 사람들만 있어서,
저 여기 입사 못할 것 같아요."


뿌애애앵 울기 시작한 나를,
택시 기사 아저씨는 따뜻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


"아이고, 대한민국에 회사가 거기 하나요?
예쁘장하니 딱 봐도 똑똑하다고 얼굴에 쓰여있구먼.
그 회사 아니어도, 아가씨 알아봐 줄 회사 천지여~

우리 아들도 취업하느라 엄청 애 먹었어.
그리고 아가씨, 여기서 펑펑 울어도 되는데, 내릴 땐 웃어.
아가씨 어머니 가슴 아파."


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 말대로,
아저씨가 건네주신 크리넥스로 내릴 땐 눈물, 콧물 다 닦고 씩씩하게 내렸다.

내 눈물이 멎자, 신기하게 비도 잦아들었다.


"아저씨 감사해요. 손님 많이 태우세요!"


택시에서 내리자, 접은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우리 엄마가 보였다.

신호등 맞은편에서 나는 번쩍 손을 들어 힘차게 흔들었다.

"엄마!"


충혈된 내 눈을 보자
엄마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씩씩한 목소리를 냈다.


"어떻게 택시 내릴 때 되니까 딱 비가 그치냐.
엄마 안 나와도 됐을걸."


엄마는 잠시 말이 없더니,
조금 쉰 목소리로 말했다.

"씩씩한 우리 딸 어디 갔어!"


나는 코끝이 다시 시큰해지는 걸 꾹 참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나와서 나 기다려주니까 좋다."


화장을 지우고,

새벽 네 시가 다 되어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래서 나는,
내일 출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