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연습_9

9화. 사적인 연대로 살아가는 방식.

by 김지유

가을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이었다.

회의는 길어졌고, 나는 핸드폰 시계를 다섯 번도 넘게 들여다봤다. 오늘은 엄마 생신이었다.

30대 어른이지만, 엄마에 대한 죄송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선생님, 이거 이렇게 설명하시면 안 돼요. 그전에도 이런 식으로 수업하셨어요?”

선배 선생님들의 지적은 언제나 날카로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멍했고 웅웅대는 소리만 들렸다.


회의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택시를 불렀다.

강남대로를 달리는 와이퍼 소리, 비에 젖은 불빛, 주황색 신호등과 주황색 피로가 겹쳐 보였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기억이 쏟아졌다. 엄마가 오래된 오븐에 갈비찜을 넣으며, "미역국은 새우젓으로 간을 좀 봐야 부드러워" 하던 얼굴.

올해는 꼭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싶었는데… 나는 또 현실에 갇혀 있었다.


“기사님, 죄송한데 좀 빨리 가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기사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무릎 위 가방을 꼭 쥐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은 조용했고 주방 불빛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식탁 위엔 미역국과 갈비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미역국은 아직 따뜻했고, 갈비찜의 간은 딱 맞았다.

‘엄마 생신상 차려드린다더니… 왜 나는 맨날 이 모양일까.’

이웃집 자식들이 부모님 해외여행을 보내드릴 때, 나는 내 앞가림도 버거웠다.

그 죄책감이 식기도 전인데, 핸드폰이 울렸다.


"쌤, 내일 간담회 자료 작업 중인데 쌤 자료가 안 보여요. 혹시 아직 제출 안 하셨으면 드라이브에 올려주셨을까요?"

후배 은혜쌤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책상 위에 출력해 두었는데… 설마, 지난 학기 자료 버릴 때 같이 딸려간 걸까?


나는 미역국이 올라간 수저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늦은 밤 대치동으로 향하는 택시는 더 조용했다.

운전석 위 은은한 조명, 비에 반사되는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타고 흘렀다.

나는 무릎 위에서 양손을 비볐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버렸다면? 다시 작업하려면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마음도 복잡해졌다.

서른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증명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하나도 자랑스러울 만한 게 없었다.


스무 살엔 잘 다니던 학교를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반수를 했다. 더 나은 학벌을 위해.

이후 안정적인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한민국에서 '잘 살기' 위해선 더 높은 학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년 장학금을 받으며 편입을 준비했지만, 내가 지원한 학과는 그 해 편입생을 뽑지 않았다. 시험조차 보지 못한 채 실패.


나는 늘 나를 빛나게 해 줄, 증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야.’ 그렇게 말해주는 뭔가.

그래서 반수, 편입도 모자랐기에 다음엔 유학을 준비했다. 돈은 부족했고, 남들 유학 준비하는 몇 년에 비하면 내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마지막엔 임용고시에 도전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딱 4명 뽑던 해. 나는 붙을 리 없었고, 당연히 떨어졌다. 서울 연고대 사범대생들과 경쟁하겠다고 덤빈 나 자신이 우스웠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실패한 걸까. 누군가의 딸로서, 인간 김지은으로서… 정말 자격이 있는 걸까. 왜 엄마 생신도 못 챙겨 드리고 이 새벽에 다시 직장을 가는 거지.


택시에서 내려 학원으로 향하는 길은 미끄러웠다.

내 신발도, 마음도 축축했다.

컴컴한 학원 건물 보안을 해지하고 강의실에 들어가자, 출력해 놓았던 자료는 쓰레기통에 함께 사라진 듯했다.

컴퓨터를 켜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쌤, 찾으셨어요? 저 아직 퇴근 안 했어요. 도와드릴까요? 저 지금 5층인데 올라갈게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신입 은혜 쌤. 내가 신입 때처럼 맨날 야근하고 있지만 늘, 똑 부러지는 모습에 참 대단하다고 느꼈던 쌤.


"네, 쌤. 자료는 찾았는데 다시 프린트해야 할 것 같아요.

쌤 퇴근하세요. 제가 정리해 놓고 갈게요"


'도와드릴까요?'

강의실에 뿌려진 따뜻한 말 한 줄.

그것만으로 새벽의 건물은 덜 추웠다.


며칠 뒤, 중간고사 프린트 마감 전날.

작업은 모두 끝났고, 출력만 하면 됐다.

모든 선생님이 몇백 장의 인쇄를 하신 덕분에 그날 우리 층 프린터 7대 중 6대가 고장이었다.

남은 한 대는 이미 선배 선생님이 사용 중.


나는 오른 발을 바닥에 탕탕 굴렀다.

“너네보다 내가 더 죽을 지경이야, 진짜… 제발 몇 대라도 돌아가 줘.”

프린터에 용지는 계속 씹혔고, 걸린 용지를 빼내려다 손은 찢어졌다.

손에서 나는 피를 멈추는 것보다, 프린트를 빨리 하는 게 더 급했다.


퇴근하려던 은혜쌤이 복사실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쌤, 아직도 안 돼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오늘 집 가긴 글렀어요. 학원 유서 써야 할 판이에요.”


“어? 쌤 저 지하 교재팀 복사실 키 아직 안 반납했어요. 거기 프린터 써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우리는 A4용지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복사기의 열, 토너 냄새, 쌓이는 종이들.

“쌤, 여기 표지 앞뒤 맞추는거 한 장 더 들어갔어요. 단-양 돌릴 땐 꼭 짝수 페이지로 끝나야 되거든요.”

은혜쌤은 서식도, 페이지 번호도 완벽했다.

‘이 쌤 나중에 진짜 잘 되겠구나.’

“감사해요 쌤, 은혜쌤 없었으면 저 오늘 진짜 울었을 거예요.”

은혜쌤은 웃었다.

그렇게 나는 1차 마감을 잘 넘겼다.



토요일 저녁, 퇴근후 우리의 아지트 와인바에서 민아와의 저녁. 민아는 여전히 예뻤다.

결혼도 안 했고, 남자친구도 없지만 외국계 기업에 다니며 해외 출장을 다닌다.

한 달에 한 번은 여행도 간다.

나는 어깨를 웅크렸다.


“김지은 다 죽어가네, 너 살 그만 빠져야겠다. 많이 힘들어?”

“괜찮아… 라고 말해야겠지?”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애들이나 너무 좋아해 줘. 그걸로 버텨. 근데 요즘 너무 피곤해.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이었나 싶기도 하고.”


민아는 말없이 들어주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넌 진짜… 열심히 살았잖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너처럼 열심히 산 애가 없어.”


“그래서 더 서러워. 20대 땐 뉴욕에서 살고 싶었고… 엄청 성공한 삶은 못 살아도, 적어도 한국에서 한강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서 좋은 남자랑 결혼해서 아이 둘 키울 줄 알았지. 평범하게. 그런데 지금은 컵라면 먹으며 애들 프린트에 화이트 칠하고 제본하고 있어.”


“그게 뭐가 어때서. 너 누구보다 열심히 잘 살고 있어, 지은아.”


잘 나가는 친구들 앞에서면 늘 한없이 작아졌지만, 민아의 진심 어린 위로는 따뜻했다.

나는 와인을 삼키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민아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밖에 비친 내 모습은 흐릿했다.

피곤한 얼굴, 무거운 어깨.

사람들은 주말의 들뜬 기운으로 웃고 떠들었지만, 그 사이에 선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 인턴 지원한 거 또 떨어졌어.”

“야, 요즘 다 그래. 우리 동기 중에 취업한 애 한 명밖에 없잖아. 나도 면접 세 번째야."

"진짜? 너 어디 어디 썼는데?"


"SK어디랑.... 어디랑 어디랑...."

그 대화가 흘러 사라질 때쯤 내 귀에 말 한마디가 꽂혀 날아왔다.


"그래. 또 하면 되지.”


지하철이 정차할 때마다 사람들은 내리고 탔고, 어느새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텅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스무 살부터의 나. 반수, 편입, 유학, 임용고시. 그리고 지금.

그 모든 실패가 나를 규정짓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닌가 보다.

뭔가를 또 하면 되나보다.


학원에서 은혜쌤이 건넨 말, 민아가 건넨 위로.

나는 혼자 살아가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 작고 따뜻한 말들 덕분에 실패하면서 끝난게 아니라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딸~ 집에 오고 있어?"

"응, 엄마. 지금 가는 중이야. 엄마, 딸이 생신도 못챙겨 드리고... 미안해.

대신, 오랜만에 가족 외식 어때? 딸이 쏜다!"


"지은아, 엄마는 지금 네가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게 더 중요해. 그게 최고의 선물이야"

"그래도 가족 외식 할래! 하자! 내가 아빠 꼬셔볼게!"

엄마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따뜻했다. 그 한마디에 마음속 단단한 벽이 조금 녹아내렸다.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완벽함이 아니라 서로가 건네는 사적인 위로와 연대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엄마, 고마워. 엄마가 내 엄마여서 진짜 다행이야.”


전화를 끊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기운 없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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