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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09. 2017

옥자(Okja)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


옥자 / 2017 / 한국


감독 : 봉준호

출연 : 안서현, 틸다 스윈튼, 폴다노, 스티븐 연, 릴리 콜린스 등



 작년 겨울, 소비의 태도에 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의 핵심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 왔는지, 생산과 소비 과정의 연결고리를 인식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옥자>를 보고 나서 더 이상 돼지고기를 못 먹겠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등 불평하는 이유 또한, 영화를 관통

하는 메시지가 ‘생산과 소비’라는 점에 있다. 학대받는 슈퍼돼지들과 더 효율적인 생산과 소비를 하려는 인간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걸까.



* 이하 내용은 영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강원도 산골 자락에서 평화롭게 살던 미자(안서현)에게 큰 시련이 닥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미자는 10년을 함께 했던 친구를 하루아침에 뺏긴다. ‘친환경 생산’을 표방하는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그들의 명목을 이어가기 위해 슈퍼돼지 ‘옥자’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한적한 산골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미자는 옥자를 되찾기 위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복잡한 도시로 달려간다. 




그들은 왜 달리는가 : 달리기를 통해 선사하는 쾌감


 영화에서 인물들이 달리는 행위는 꽤 속도감 있고 유쾌하게 묘사된다. 미자가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산 아래로 달리는 장면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이 계단을 달리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미자가 회사에 갇힌 옥자를 구출해내어 복잡한 지하철 역사 내를 달리는 모습은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훈련된 경호원들이 어린 꼬마와 돼지를 잡지 못하는 장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옥자와 미자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옥자의 똥을 맞으며 이들을 막지 못한다.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둘의 달리기는 세상에 대한 유쾌한 반항이다. 관객에게 익숙한 공간인 지하철 역사를 엉망으로 만들고 계속해서 출구를 찾아 달리는 장면은 물욕으로 가득 찬 세상의 질서를 깨뜨리며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봉준호 감독의 센스는 옥자와 미자가 추적을 피해 다이소 매장에 들어갔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미란도 경호원들이 마취총을 쏘려고 할 때 동물보호 단체 ALF는 다이소의 무지개 우산을 펴 방어한다. 마취총이 형형색색의 우산에 튕기는 모습은 영화에 유쾌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인물들을 억압하려는 사회를 마취총에 비유한다면 무지갯빛 장우산은 그에 대항하는 소재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무지개는 성적 다양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많이 쓰이는데, ALF 단원에 동성애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으로 보아 이 또한 봉 감독이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가격표에 붙여 있지 않은 진실을 보여주다


미자는 옥자를 어렵게 되찾지만 ALF 단원인 케이(스티븐 연)의 거짓말로 옥자를 다시 미란도에게 뺏기고 만다. 결국 옥자는 다른 슈퍼돼지들과 같이 최상급의 소시지로 변하는 공장에까지 끌려간다. 가볍고 유쾌했던 영화 전반부와 달리 옥자가 슈퍼돼지 공장에서 겪는 고통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처참하고 무겁다. 


옥자는 돈에 미쳐버린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에 의해 다른 슈퍼돼지와 강제로 짝짓기를 당하고, 공장의 어마어마한 휠에 휩쓸려 죽음 직전까지 간다. 다행히 옥자는 미자의 합리적인(?) 거래 덕분에 목숨을 건지지만, 다른 슈퍼 돼지들은 여전히 미란도 공장에 갇혀 무자비한 죽음을 기다려야만 한다. 옥자와 미자가 해피 엔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이 찝찝한 이유는 남겨진 돼지들 때문이 아닐까.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보긴 했지만 영화에서 다시 돼지고기의 생산 과정을 마주한 관객들은 당연히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매일 보는 마트 돼지고기의 가격표에는 그저 원산지와 유통기한, 그리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싼 가격만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축을 당하는 가축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합리적인 가격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생산과 소비 체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에 대해서는 크게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것일까?




 보다 나은 생산과정을 위해 우리가 어떤 소비 태도를 가져야 할지는 영화도 말해주지 못한다. 

미자가 ALF 와함께 모든 슈퍼돼지들을 구해내지 못한 것도 명쾌한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자>를 본 이후 우리의 소비가 생산과 뗄 수 없는 연결고리이며, 바꿔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공론화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옥자와 미자가 공장을 나오는 길에 다른 아기 슈퍼돼지를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계속 생산과 소비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 인식을 갖는다면 분명 우리는 또 다른 옥자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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