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에서 쓰는 일기
호주에 산지 벌써 215일째. 시티에 사는 나는 보통 자주 걸어 다닌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걸어다닐 때 항상 우측 보행,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우측으로 선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왼쪽으로 서고, 왼쪽으로 걸어다녀야 한다. 평생을 오른쪽으로 걸어왔던 나는, 여기는 호주니까 왼쪽으로 걸어야지, 왼쪽으로 걷다가도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오른쪽에 서 있곤 한다. 내 몸은, 내 생각은 오른쪽으로 걷고, 오른쪽으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호주에서는 내가 의식적으로 왼쪽으로 걷고, 머리를 잘 굴려가며 영어로 문장을 잘 다듬어 말해야 살아갈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이곳의 방법, 왼쪽으로 걷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거나 주변 풍경을 감상하거나 멍을 때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거나 몇몇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서야 내가 오른쪽으로 걷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몇십년 동안 반복적으로 해왔던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데, 그게 200일만에 달라질리가 없다.
나는 사실 왼손잡이다. 태어났을 때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왼손으로 글을 쓰고, 왼손으로 젓가락질 숟가락질을 하고, 왼손으로 공을 잡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오른손으로 글쓰는 연습을 시켰다. 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의 모든 것들은 오른손잡이들을 위한 것들이 많으니까 내가 불편하게 학교에 다니는 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나는 오른손으로는 연필을 쥐고, 그 외의 것들은 왼손으로 한다. 글을 쓰는 일 빼고는 모든 행동들에서 자연스럽게 왼손이 먼저 나온다. 엄마가 오른손으로 글쓰기 연습을 시켰던 그날부터 나는 오른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혔다.
멜버른의 햇살 좋은 11월의 어느 날, 집 밖으로 나가서 잠깐 10분 정도 걸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띵- 울리는 트램 소리와 함께 내 귀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다. 영어, 중국어, 힌디어, 스페인어, 국적을 알 수 없는 처음 들어 보는 언어들이 노래처럼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10분 동안 이렇게 3개 이상 언어를 듣을 수 있는 이 곳에 내가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나 정말 다른 세상에 있구나. 기분 좋은 신기함이었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각자의 신념으로 살아가고, 각자의 패션 스타일과 외모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기준을 하나로 정할 수 없다. 그냥 각자의 방식대로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이곳에서 난 인생 처음으로, 그동안 나 또한 당연하게 여겼던 내 왼손을 오른손으로 교정시켜 주었던, 엄마의 딸을 위한 행동이 정말 한국인다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곳에서 난 왼쪽으로 걷는 게 아직도 익숙하진 않지만 언젠간 왼쪽으로 걷는 일이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오른쪽으로 걷는 일도 난 잘 하고 있을 것이다. 왼손잡이었던 내가 오른손으로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