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비용, 선택과 집중
기회 비용 (Opportunity cost):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한 것. 즉, 내가 포기한 것의 값
기회비용이라는 말은 경제학에서 나온 말이다. 돈, 시간, 능력 등 주어진 자원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다양한 기회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에서 당신이 지금 한 어떤 기회의 선택은 곧 나머지 기회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20대의 나는 기회비용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살부터 들어온 말은 '그게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경험은 다 네 자산이 될 거야'. 이 말에 따라서 나는 알바, 교환학생, 자격증, 대외활동, 외국어 공부, 페스티벌 참가 등 모든 것을 그저 열심히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하기 싫었던 걸 억지로 열심히 한 건 아니고, 대부분 내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이라서 모든 게 설레고 재미있었기에 신나는 마음으로 했다. 정말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열심히 놀았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여름에는 락 페스티벌, 겨울에는 연말 파티 등 계절별 페스티벌 및 이벤트에도 참가하고, 밤에는 술을 진탕 마시고 친구들과 술집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밤새 놀다가 아침에 몰래 들어가는 중에 엄마한테 등짝을 맞는 경험도 여러번...
'최대한 사람을 많이 만나 봐. 그 경험이 쌓여서 나중엔 좋은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거야' 그 말에 따라서 나는 연애도 많이 해 봤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적게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여기저기 쏘다녔다. 꽤 내성적이어서 몇몇의 친한 친구와만 깊은 관계를 맺었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입학해서부터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려고 하며 고등학교 때보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잘하곤 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그냥 뭐든 나만의 확고한 기준이라는 게 없었다. 확고한 나만의 신념, 기준 따위가 없으니 그냥 친구가 부르면 술자리에 나가서 놀고, 나한테 맞는 사람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경험들을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당연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10대의 나는 '미래의 자유'를 꿈꾸며 '현재의 욕망'를 스스로 억압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고, 그 시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내 멋대로 살아보지 않았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고, 인간관계, 명예, 돈, 이상향, 이루고 싶은 것들, 수많은 가치들 중에 어떤 것이 제일 가치롭다고 여기는 사람인지를 잘 몰랐다. 20대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내 멋대로 살아보는 경험을 인생 처음으로 하면서, 백짓장 같은 내 철학에 그냥 여러가지 물감을 이것저것 부어보는 중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게 보기에 예쁜 색깔이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무리 덧칠해도 밝아지지 않는 검은색이 되었다.
30대에 들어선 지금은 기회비용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20대에는 무한정으로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던 인생의 시간이 조금 더 제한적이라고 느껴진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이 너무 많은 나는, 인생의 제한된 시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20대의 멋대로 살아보는 경험을 통해서 얻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치롭게 여기는 것을 잘 알고, 선택하여, 그것에 집중해야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호주에 온 것이기도 하다. 어쩔 때는 몸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호주 워홀'을 선택함으로써 얻은 것, 잃은 것
난 지금 호주에 있다. 난 '호주 워홀 1년'을 선택함으로써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 내가 호주에 오지 않았다면 가지 못했을 곳에 가 봤고,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해보지 못했을 일들을 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을 함으로써 내가 포기한 것들은 뭘까?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고, 내가 좋아하는 길거리 떡볶이, 붕어빵을 못 먹게 되었고, 퇴근 후에 친구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곤 했던 그런 순간들을 잃어버렸다. 호주에선 나를 온전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새로움과 외로움 속에서 널뛰기하며 혼자인 시간이 많아졌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관계 속에서 안정적이었던 내 삶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호주에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요리를 많이 해보면서 내 입맛을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온전히 혼자 살아보면서 내 몸뚱아리 하나 지키는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잘 먹고, 잘 자고, 나를 부양할 돈도 벌고,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아가며 스스로 나를 지켜내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새삼 온 가족을 돌보며 몇십년을 살아온 아빠 엄마가 생각났다. 아빠 엄마는 스스로 한 몸 잘 살아내기도 벅찼을 텐데, 나와 내 동생까지 잘 키워냈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고 하는데, 난 호주에서 혼자 스스로를 부양하면서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언제나 그래왔듯 예전처럼 똑같이 살아갔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과 생각들이다.
미래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호주에 왔다. 워홀 1년 중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목표한 것들을 대부분 다 이루진 못했다. 돈도, 영어공부도, 미래에 대한 준비도,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 설정도. 모든 게 목표한대로 되지는 않고 있지만, 그래도 힘든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그 목표 가까이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을 기특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