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김삿갓 집으로

영월에 처음 가 본 사람의 여행 에세이

by 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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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은 한국에서 태어나 30여년을 살면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다. 김해에서 기차를 총 4번이나 갈아타서 갈 수 있는 곳이라니. 지하철 환승조차도 한번이라도 할라치면 피곤함에 벌써부터 눈꺼풀이 감기는 나인데, 과연 이 여행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스크롤을 주욱 내리다가 발견한 한 문장에서 잠깐 멈췄다. “무료로 숙박을 제공 받는 대신 글을 한 편 써 내야 합니다!” 무료로 숙박을 제공 받는 대신 글을 한 편 써서 내야 한다고? 태국, 호주, 중국 등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나는 아늑한 잠자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두 발 뻗고 단잠을 잘 수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언제든지 난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글 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영월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지금 나는 매일 집 안에 틀어 박혀서 일만 한 지 벌써 몇 개월이 되었다. 지금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 몇 개월째 굳어버린 내 몸과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여행이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결국 도달한 곳은 제출이라는 종착지. 그렇게 나는 영월 씨의 집으로 떠났다.


영월 씨의 집은 김삿갓의 집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닳도록 읽었던 역사만화책 ‘맹꽁이서당’을 통해서 김삿갓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김삿갓은 평생 전국팔도를 방랑하며 잠자리와 음식을 구걸하고 제공 받았는데, 자신의 행색을 보고 무시하고 천대한 사람에게는 욕하는 내용의 시를 선물로 주었고, 자신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사람에게는 고마움의 표시로 시를 선물해 주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김삿갓은 정말 멋져 보였다. 그의 외조부를 대놓고 욕한 죄책감으로, 그리고 높은 지위에 올라 명예롭게 살 수 없었기에 전국 팔도를 유랑하며 길거리 시인이 되었다. 책상에 고고하게 앉아 깨끗한 종이에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말들로 구구절절 써내려 가는 현학자들보다 땅 위에서 직접 걸으며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개성 있고 재미있게 깨달음을 주는 시를 선물하는 그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김삿갓 자체가 바로 문학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문학이라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영월 씨의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어린 시절 읽었던 책 속의 김삿갓을 떠올렸다. 김삿갓을 처음 알았던 순간에서 벌써 20여년이 흘러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조금이라도 김삿갓처럼 살 수 있는 어른이 되었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껍데기는 가라!”고 외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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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씨의 집에 도착하자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짙은 풀빛을 뿜어내며 높게 우뚝 솟아 있는 산이었다. 높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한국의 여느 집들과는 달랐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파트가 빼곡한 한국의 보통 집들. 영월 씨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멀리서 바라보니 둥글둥글한 바위도 있고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잎사귀들도 있고 한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무들도 있었다. 풀빛을 가득 담고 숙소로 가는 택시를 탔다. 19세기에 김삿갓이 걸었던 그 길을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간다. 문명의 발전에 감사 드립니다! 택시 아저씨는 영월 씨의 집에서 얹혀 사는 걸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시는 듯했다. 동강과 서강이 흘러 남한강이 되어 그 강물은 한강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옛날에는 뗏목을 엮어 영월에서 한양으로 나무를 보내고, 한양에서 쌀을 가지고 왔다고 하셨다. 아저씨가 강원도 사투리로 신나게 영월 자랑을 풀어 놓으시는 걸 한창 듣고 있다가 옆을 보니 광활한 강줄기가 보였다. 마침 노을이 지는 시간이라 푸른 강이 노오란 금빛으로 빛났다.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라는 말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높은 산과 드넓은 강이 깊은 푸른색과 금빛이 섞여 뿜어내는 기운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거대한 자연이 나를 품고 있고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영월 씨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영월 씨가 제공해 준 방은 너무나 포근했다. 푹신하고 깨끗한 이불 속에서 늦잠을 자고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나 김삿갓이 살던 집으로 걷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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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신다’고 말한다. 즉, ‘죽음’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김삿갓이 태어나서 살았고 죽고 나서야 돌아갈 수 있었던 그의 집은 아주 깊은 산 속에 있었다. 나는 하얀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김삿갓처럼 삿갓을 푹 눌러쓰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21세기까지 이어지게 되어 후손들이 길을 잘 닦아 놓고 표지판을 잘 만들어 놓았다. 나는 편하게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그의 집에 당도할 수 있었다.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소리,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만 있을 것 같은 이름 모를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잔잔히 울려 퍼졌다. 삿갓을 쓰니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면 나라가 보이고, 기차를 타면 마을이 보인다. 두 다리로 걷게 되면 자연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내 눈으로 보인다. 걸으면 세상의 움직임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도달할 수 없는 높은 하늘을 보며 이상을 꿈꿀 수 없다면 삿갓을 쓰고 하늘을 가린 채 현재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바로 이 땅에서 내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그의 결심을 알 것 같았다. 걷기 시작한지 30분도 안 되어 숨이 차올랐다. 내가 제일 길게 걸었던 길은 한라산 등반길이었다. 10시간 동안 등반길을 마치고 난 그 다음날 종아리가 터져 나가 걸을 수도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김삿갓은 전국팔도를 걸어 다녔다고 하는데, 나는 고작 그의 집에 가는데 이렇게 숨이 차오르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하루에 만 보도 제대로 걷지 않으면서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에서 뛰고 걸으며 3km를 뛰었다고 자부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유튜브 조회수, 인스타그램 팔로워수가 아닌 걸음수로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면 김삿갓은 벌써 인플루언서 반열에 올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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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아주 작은 초가집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터만 남은 집은 깊은 산 속에 홀로 있었다. 김삿갓이 죽어서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그 집에 200년 후에 태어난 어떤 자가 김삿갓의 흔적을 쫓아서 찾아 왔다. 김삿갓은 돌아가기도 어렵고 우두커니 서있기도 어려워서 방랑하며 살아갔다. 김삿갓이 가는 길마다 그가 지은 시가 흔적으로 남았다. 텅 빈 주머니로 강산을 떠돌며 걸식한 게 1천집이 넘고 후하고 박한 가풍을 모두 맛보았다. 김삿갓의 영원한 집이 되어준 영월 씨는 김삿갓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그를 기억하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다정한 말로 영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따뜻한 집을 제공해 주었다. 영월 씨는 나에게도 따스한 보금자리를 내어 주었고, 곱디고운 밤하늘의 별들도 구경시켜 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여기는 대기업, 사 자 직업, 억대 연봉 등 어느 것 하나 해당되는 것 없는 나지만, 김삿갓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마음만은 단단하다.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진실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살아가요, 우리.


다시 아침이 되었다. 이제 영월 씨의 집을 떠나야 한다. 다정한 영월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를 한 수 지어 선물하고 나는 또 고독하고 외롭지만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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