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끝나는 곳에서 느끼는 유의미한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두근거림을 알고 있다. 첫사랑, 첫 키스, 첫눈, 첫 경험, 스무 살, 첫 여행, 첫 입사... 살면서 하는 많은 경험들에 ‘첫’이라는 관형사가 들어간 순간, 그 경험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우리에게 특별한 것이 된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는 단지 그 사실만으로 우리 인생의 수많은 사건들 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하지만 내가 28살이 되던 해 경험했던 ‘첫 장례식’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근거림이나 설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나의 ‘첫 장례식장’은 내가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상상해왔던 ‘죽음’을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곳이었다. 28살이 되던 해 겨울,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에게 있어서 외할아버지는 흑백 사진 안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고등학생일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혼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났을 때 잠깐 할아버지를 봤다고는 하는데(1살 때의 기억이 날 리가 없지) 그 뒤로는 할아버지와 만날 기회가 없어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무했다.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큰 딸이었다. 나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기 때문에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그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가슴이 요동칠 만큼 슬픈 일이었다. 엄마와 3일 동안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나는 너무 많이 슬퍼했고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내가 본 엄마의 모습 중에 가장 약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슬픔’이라는 장독대가 가득 차 버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터져 버린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에게 엄마는 항상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엄마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슬픔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난 할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엄마와 이모들로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셨고, 화려한 젊은 날을 보내셨다. 엄마가 보여준 흑백 사진 속 할아버지는 멋진 정장을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 계셨다. 젊은 날의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는 패기와 재력을 가진 무한한 가능성의 청년이었다. 할아버지는 실제로 그 지역에서 제일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주변 지역 사람들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부자로, 성공한 사업가로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그 뒤로 어떻게 사셨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낡은 2G 휴대폰과 전화번호가 쓰인 작은 수첩, 그리고 3벌 정도의 옷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사람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속세의 즐거움을 모두 누렸지만, 세상을 떠날 땐 아무것도 없이 떠났다.
나는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거기에 모인 가족과 추모객들은 그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했고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내가 어려웠을 때 소주를 사주면서 위로해주었지. 항상 부지런해서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사람이었어. 정말 멋진 사람이었어.'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죽음 앞에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소유하며 살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명성을 쌓았는지, 얼마나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장례식장의 사람들은 그 사람과 나누었던 사랑, 진심, 존중, 공감, 웃음, 소소한 추억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주었던 배려, 위로, 관대함, 환한 미소와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 왕자>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람의 장례식장을 지켜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살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깨달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할머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영화 <비포선라이즈>를 보면 성당에서 셀린느가 제시에게 “나는 죽음을 앞둔 노인과 같은 느낌이 자주 들어. 내 인생은 단지 추억의 모음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셀린느의 대사처럼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면 할수록 할머니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어제 내가 미워했던 사람도 오늘 용서할 수 있었고, 내 눈 앞에 펼쳐진 어떠한 풍경에도 감탄할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죽을 텐데 나는 왜 고통스러운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해야 할까?’, ‘왜 돈을 벌고, 왜 나는 (공기 아깝게) 숨을 쉬며, 어차피 늙으면 병들고 아플 텐데 왜 운동을 하고 왜 영양제를 먹어야 하지?’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게 다 허무하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인생은 무의미하기에 사람은 태어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지식과 철학을 만들어냈고, 사랑을 했고, 친구와 가족을 만듦으로써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인생만큼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듯이 우리는 열렬한 사랑을 갈구하고,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며, 우정을 소중히 여긴다.
나의 첫 장례식장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삶이기에 '삶은 고통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삶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어떤 사람이 태어났고, 80년 후에 그 사람은 죽는다. 장례식장에 모인 가족과 추모객들은 그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워하고 눈물을 쏟는다. 이 사실만으로 어떤 사람의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들과 함께 한 내 인생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