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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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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23. 2021

단상1

모텔 폐업

사라진 것, 사라질 것들에 대해 자주 애틋한 마음이 든다. 가져본 적 없는 기억과 공간에까지. 얼마 전까지 있었지만 이제 없는 것들.  사라지고 말 것들. 아득한 기분.


길을 걷다 폐업한 모텔을 지났다. 이십 년쯤 전에 호화로웠을 모텔은 촌스러울 정도로 요란. 모텔 주차장, 때가 탄  너머 폐업 팻말이 보였다. 입구는 지면으로부터 몇 계단 올라 있었고, 높이가 높았다. 검은 코팅이 덧대어 있어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았으나 역시 폐업 팻말이 붙어있다. 함께 걷던 연인에게 모텔의 객실이 어떠했을지 물었다.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그 모텔의 객실에 묵었을 것이다. 침대 시트는 낡았어도 누군가 매번 커버를 세탁하고 씌워놓는 수고를 들였을 것이고, 은은한 조명이 사랑하는 자들의 굴곡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들 누군가는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대학생이었을 것이고, 남몰래 일탈을 즐기는 나가는 임원이었을 것이고, 돈을 내고 하룻밤 외로움을 달래려는 허기진 이였을 것이다.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고 한 칸 방에서의 기억을 잠시 공유한 이들은 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고, 모텔의 주인과 침구를 세탁하는 자는 그곳에 남는다. 이제 그들은 또 다른 무엇이 되어 밤을 맞이한다. 그들이 나눴던 마음이 어딘가에 부서진 채 부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분명하게도, 붉은 글씨로 두 번이나 써 있는 것과 같이, 아무튼, 그 모텔은 이제 이 세상에 다.


모텔의 주인은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비용과 줄어드는 수입을 비교해보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폐업이라고 써붙였을 것이다. 그간 모텔을 운영해 꽤 큰 돈을 모았을지 모른다. 한편, 모텔의 방문객들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모텔의 주인과 계약을, 이를 테면 <객실 및 서비스 제공에 대해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적정한 가격을 제공하니, 우리 일행의 일시 체류를 보장하기 바람. 가급적 비밀도 보장하기 바람>과 같은 계약을 하고 그곳에 묵었을 것이다. 반짝이던 그들의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모텔 로맨틱하다고 말하기 어렵겠다. 뜨거울 것도, 슬플 것도, 애틋할 것도 없다.


이상한 것은 시간이다. 모든 순간들은 계약과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것이 기억이 되어 슬기도, 아득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견고해보였던 세계가 결국 시간 앞에 스러진다는 것. 그 괴리를 어떤 괴랄한 유쾌함으로 채우려는 시도를 지속한다는 것. 그런 것도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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