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학급 친구를 사귈 목적으로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있었다.
“취미가 뭐야?”
나는 주로 ‘다이어리 꾸미기’라고 답하곤 했다. 본격적인 취미 꾸리기는 성인이 되어 첫 직장을 얻고 독립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선명한 포스터물감을 활용해 한눈에 띄는 메뉴나 게시물을 완성하는 POP가 유행하던 시절, 나는 주말마다 수업을 다니며 자격증을 땄다. 한 번은 치킨집 메뉴판을 만들어 드렸는데, 전국 체인점 중 가장 예쁜 매장으로 뽑혀 인터뷰를 했다는 사장님의 후일담이 전해졌다. 내심 뿌듯했다. 이후 캘리그래피, 실크스크린, 뜨개질 등의 취미가 형태를 바꾸며 계속 이어졌다. 돌아보면,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계속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취미가 생기면 나는 그 즐거움에 꽤나 몰입하는 편이다. 연습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매주 타 지역으로 수업을 들으러 다니면서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도파민이 팡팡 터져 피로나 권태를 지워버리는 모양이다. 다양한 취미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며, 무용함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확신은 더 또렷해졌다.
취미의 특징은 느슨한 빈도를 허용하며, 엄격한 연속성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앞서 나열한 취미들은 빈도나 연속성과 무관하게 여전히 나의 취미 구역 안에 속해 있다. 취미는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되고, 평가나 과제가 없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그럼에도 잘하고 싶어서 연속하게 된다.
여러 취미들 가운데 오늘 소개하고 싶은 것은, 요즘 가장 심취해 있는 숫자 퍼즐 <스도쿠>다.
스도쿠는 9 ×9 칸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채우되, 각 줄과 3 ×3 칸 안에는 같은 숫자가 겹칠 수 없는 퍼즐이다. 난이도에 따라 미리 채워진 숫자의 수가 달라지고, 난이도가 높을수록 푸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틈틈이 스도쿠를 풀다 보니 이따금 대회 준비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찾아보니 실제로 스도쿠 대회가 있었지만, 나는 지금의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작년 여름에, 다섯 단계의 난이도로 이루어진 500장의 스도쿠 패키지를 구매했다. 휴대성이 좋아 매일 가방에 몇 장씩 챙겨 다니며 풀었다. 모두 푼 문제지 500장을 판매처에 보내면 리필지를 반값에 구매할 수 있다는 조건이 은근한 동기가 되었다. 나는 스도쿠를 풀 때 숫자를 적고 지우는 대신, 머릿속으로 가능한 숫자를 떠올린 뒤 꼭 맞는 숫자를 찾아 넣는다. 게임이 시작되면 마지막 숫자를 찾는 순간까지 딴생각을 할 여유란 자연히 소멸된다. 처음에는 스톱워치를 켜고 시간을 기록하며 풀었다. 한 장 한 장 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스스로의 미션으로 삼았다. 하지만 5단계에 이르러서는 시간을 적는 일이 무의미해져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한자리에 앉아 끝내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스도쿠 500장의 마지막장을 풀었다. 그렇게 한 장도 분실하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풀어냈다는 사실에 묘한 충족감을 느꼈다.
이 무용함의 시간들이 내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았다.
스도쿠는 연필로 풀도록 가이드된다. 자리를 잘못 지정했을 경우 수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반드시 들어맞는 자리가 있다는 점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스도쿠를 풀고 있는 동안, 나는 서둘러 아무 숫자나 임의로 넣어보지 않는다. 꼭 들어맞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심하는 시간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고른 자리가 틀렸다면 지우고 다시 풀면 된다. 오늘 모든 칸이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다. 풀지 못한 문제는 내일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호기로움이 가져다준 여유, 아직 닿지 못했을 뿐 꼭 맞는 내 자리가 어딘가에 있으리란 믿음. 머릿속을 비우고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예찬하며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싶다.
무용할수록, 무용하여서 가치 있는 즐거움.
그게 취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