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칭찬의 척도를 갖다.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by 지하경

어른으로만 이루어진 집단 안에서는 서로가 칭찬에 목마른 지경임을 잘 알면서도, 서로를 향한 칭찬에 인색해지고 마는 아이러니에 빠지기 쉽다.

이따금 맹목적인 편애나 두둔, 칭찬을 받을 때면 화들짝 경계하게 되는데. 어른이 되고서는, 어쩐지 칭찬에 곧장 기뻐할 수 없게 된 탓이다. 칭찬을 받았다면 우선, 구체적인 이유가 포함되어 있는지 판단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검열을 거치게 된다. 이어서 상대의 진심이 담겼는지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칭찬을 건넨 사람과 받은 사람 사이에서 등가교환이 이루어진다. 때때로 행간의 의미를 곱씹다 텅 빈 허무에 시무룩해지게 되는 일도 잦다.

그러니 우리는 경계해야 할 자만과, 반대로 자신의 성과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심리 상태인 포스트 증후군 사이에서, 스스로가 진심이 담긴 칭찬을 잘 선별하여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비장한 칭찬의 척도를 가진 탓에, 어른이 된 후로는 칭찬에 대한 갈증이 도무지 가시질 않는 것일 테지만.

어른의 칭찬의 척도는 비단, 타인의 기준이 전부가 아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인정점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을 선별하는 기준만큼이나 스스로를 근사하게 여기는 척도를 세우고,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가 그려 놓은 스스로의 규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자신을 지탱하며 안온하게 살아가는 삶의 기준들. 그러니까, 누군가 알아채지 못하는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멋져 보이기' 또한 주요한 칭찬의 척도가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내 식당에서 잔반 남기지 않기, 대기 중에 짝다리 짚고 서지 않기, '맛없컾'하기. 그리고 감사한 일에는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진심으로 감탄하기 등이 있겠다.

어쩌면 칭찬에 대한 이러한 지론에 냉소적 태도를 취하고 싶거나, 제안한 기준 또한 시시하게 여겨질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사사로운 것들은 유지될 때는 표시가 나지 않다가도, 사라지면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 다는 사실을.

어느새 어른이 되어, 비장한 칭찬의 척도를 갖게 됐다면, 어른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 속해 칭찬에 대한 갈증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면, 스스로의 시선을 포함한 사사로운 멋짐으로 칭찬에 대한 갈증을 해갈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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