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귤로 태어날 걸 그랬지.

야채단상 : 세상 모든 귀여운 것에 대한 관찰

by 지하경

귤을 까먹다가, <귤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귤글>이라니, 나란히 짝지어진 두 글자가 귀여워 보인다. 토종 과일이나 야채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면, 콩, 무, 파, 감, 배처럼 단음절이거나 당근, 버섯, 양파, 고추처럼 두 음절인 경우가 많다. 오래된 어휘의 특성인데, 내 마음속 '짧은 음절의 귀여운 이름 순위권'에서 귤을 이길 자는 없다. 규울- 하고 길게 늘여 발음하면, 순식간에 모난데 없이 말랑한 기분이 된다.

기억 속 어릴 때 먹던 밀감에는 귤 씨가 들어 있었다. 겨울철 귤 한 바구니를 까먹다 보면 어쩌다 하나의 귤에서 두어 개의 작은 씨앗이 나왔다. 요즘은 품종개량으로 귤의 유실(:작은 주머니 형태의 과육 덩어리)이 더 보드라워지고, 맛도 진해졌으며 무엇보다 씨가 없어졌다. 귤에 씨가 있던 시대에 태어나, 귤에 씨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귤이 함께하는 겨울이라니 몹시 행복하다.

귤이 좋은 이유를 나열하자면, 겨우내 소파 옆에 잔뜩 쌓이는 귤껍질만큼이나 소복하게 많다. 우선은 귀여운 생김이 좋다. 귤은 동그랗고 말랑하고 자그마하다. 다섯 살 꼬마 아이가 꽁꽁 동그랗게 쥔, 작은 주먹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펼쳐 귤의 이쪽 끝인 꽁지 부분과 저쪽 끝인 배꼽 부분을 살짝 집고서 바라보면, 눈 코, 입 따위를 그려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킁킁 동그란 귤을 코 앞에 가져와 향을 맡아본다. 놀랍게도 귤은 향이 없다. 요 동그란 녀석, 제 안에 품은 진한 귤향을 단 한 점도 내어주지 않을 심산인가 보다. 대체 무슨 귤자감 (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일까? 온전히 화려한 색과 귀여운 본새만으로 사랑받으리란 믿음은 어디서 나는 거람.
그렇지만 나로서는, 짙은 귤색에 기인한 귤자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색’을 물으면 내 대답은 언제나, ‘오렌지색 주황이 아닌 귤색 주황’ 이니까. 노란색에 가까운 밝은 채도와는 거리가 멀고, 형광 빛을 띠지도 않는, 골고루 짙은 귤색 주황! 그 주황빛은, 한 겨울 온 세상이 눈밭이 되었을 때 초록잎과 어우러진 귤밭에서 어찌나 탐스럽게 빛나는지 모른다. 그러려고 태어난 겨울태생 귤일까.

손가락 끝으로 귤의 빈틈없는 어느 면을 쓱 하고 누르면, 엄지손톱만큼의 틈 사이에서 귤향이 뿜어져 나온다. 잠시 귤향에 취했다가 군침이 고여, 이내 서둘러 껍질을 벗긴다. 귤껍질이 벗겨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소리에 집중해 귤껍질을 까보길 권한다. 사아악- 하는 소리는 꼭 겨울을 닮았다.

옹기종기 모인 주황 껍질 안 꽉 찬 귤들이 사이좋아 보인다. 서로서로 꼭 붙어 이웃해 있는 귤의 조각들. 작은 조각을 한 번에 두어 개씩 떼어낸다. 입에 쏙 집어넣으면 그야말로 귤맛! 와장창 쏟아 드는 달콤하고 상큼한 맛.

그렇게 하나, 규울, 세엣, 넷.. 까먹다 보면. 귤들은 언제고, 어느 틈엔가 몽땅 사라져 버리지. 그렇기에 귤껍질을 벗겨내며 손 끝에 물든 귤향의 역할이 사뭇 중요하다. 귤을 다 먹은 아쉬움을, 손 끝을 물 드린 귤향이 잠시나마 달래주니 말이다.

조물조물 조심스레 말랑 귤을 만져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귤로 태어날 걸 그랬지. 애호하는 마음을 담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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