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를 닮은 시간의 기록

나는 여전하지만, 여전하여서

by 지하경

내게 도전이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열정의 크기에 비례해 비교적 쉽게 시작되는 일이다. 굳이 따로 설계하거나 계산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새롭게 해보고 싶은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러면 겁 없이 시작한 일은 취미가 되거나 경험이 되고, 결국엔 열심히 몰두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반향을 일으키는 자연스러운 굴레인지도 모르겠다.

용감한지 무모한지 모를 태도로, 엉성하게. 때로는 재미로, 때로는 흥미로 시작하는 것. 이건 그냥 호기심 많은 성격 탓인 걸까.


어쨌든 이 장황한 문장 끝에 고백하건대, 오늘 생애 첫 마라톤을 접수했다. 경험도 없으면서 덜컥 10km를. 어쩐지 ‘저질러 버렸다’는 표현이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글로 기록하고, 브런치에 공개함으로써 공식화되었으니 이제 달릴 일만 남았다. 길이 하나라면, 그때는 나아가거나 멈추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달리는 쪽을 선택하련다.

이따금 나는 나로 사는 게 버거울 때가 있었다.
나로 살면서 별다르게 하는 것도 없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습게도 혼자 달리다 고꾸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혼자 달리는 것도, 혼자 달리다 고꾸라지는 것도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별다르게 하는 것’ 또한 분명히 있다는 것도. 아마 누가 시켜서였다면, 애초에 달리기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

달리기 연습은 차곡차곡 쌓아가는 나이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트랙 위를 그려 나가는 동그란 원처럼. 처음 두 바퀴쯤은 몸이 무겁고, 이후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무던히 대여섯 바퀴쯤은 가볍게 달릴 수 있다. 일곱 바퀴쯤에는 ‘이제 못 뛰겠다’는 마음에 조바심이 일고, 무거운 다리가 더디게 디디는 걸음으로 겨우겨우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달리기는 자연스레 이어지고, 어느새 트랙의 반환점에 닿는다. 그렇게 완성되는 하나의 동그라미.


몸 안에 쌓이는, 나이테를 닮은 시간의 기록. 귓가를 스치는 바람, 땅과 발바닥이 맞닿았다 떨어지는 소리, 파랗게 담기는 구름과 눈앞에 펼쳐지는 청량함. 달리는 행위는 힘든 만큼, 그에 정확히 비례해 상쇄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오늘부터 훈련 시작.
저질렀으니, 완성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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